[미션톡] 쿠르드 난민 술레이만씨의 환대는 극진했다
함께 신앙 얘기 나누며 위로·격려…“진정한 환대는 하나의 마음 나누는 것”
성탄 전야인 24일 밤, 레바논 베카 주의 선교현장 일대를 탐방하던 중 쿠르드 난민 술레이만(42)씨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됐습니다. 선교단체인 앗쌀람선교회(대표 레이먼드 김 목사)가 마련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가장인 술레이만의 이름은 성경에 등장하는 솔로몬의 이슬람식 명칭입니다. ‘평화가 깃든’이란 뜻을 지니고 있지만 ‘난민’이라는 수식어 앞에서 평화는커녕 솔로몬이 누린 부귀와 명예를 언급하는 것 조차 그에겐 사치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술레이만 가족은 부부와 4남매 등 총 6명이었습니다. 그런데 4명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손님이 온다고 하자 2명은 다른 집에 보낸 터였는데 충분히 이해할 만 했습니다. 부엌 공간을 빼고 거실과 안방을 겸한 공간이 하나 있었습니다. 허름한 상가 창고 같은 실내 중앙엔 난로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길다란 메트리스가 ‘ㄷ자’ 형태로 놓여 있었습니다. 예상과 달리 집안엔 TV와 냉장고 같은 가전 제품도 보였습니다. 하나같이 허름한 중고 제품 같아 보였습니다. 그뿐이었습니다. 화장실 변기엔 좌석 깔개가 없고, 손바닥만한 손거울이 비누곽에 기대어 있었습니다.
술레이만 가족은 시리아 전쟁이 터진 뒤 2년쯤 지난 2013년 국경을 넘었습니다. 레바논 베카 주의 한 농장에서 일하며 농장 옆 창고를 얻어 살다가 농장주의 요구로 거처를 비워야했습니다. 난민촌 내 난민캠프는 들어가기에는 여건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 즈음 에반젤리컬 커뮤니티 센터(ECC) 김성국 선교사를 만나 교회 옆에 있는 지금의 거처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손님을 맞이하는 술레이만 부부의 표정과 태도는 밝고 온화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마음이 깊이 와 닿았습니다. 거처가 궁궐이든 움막이든, 손님이 자신의 집을 찾아주는 걸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이 지역 문화를 눈으로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짙은 아랍커피가 나오고 얘기가 시작됐습니다. 구릿빛 얼굴에 머리가 훌러덩 벗겨진 술레이만은 분명 환갑이 넘어 보였습니다. 그가 마흔 두살이라는 얘기에 다들 웃음보가 터졌는데 곧바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6남매 중 막내인 그는 형과 누나들은 결혼해 집을 떠나면서 부모를 혼자서 모시다시피 했습니다. 군 입대 전후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이어 갑자기 찾아온 상실감과 공허함에 많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15년 전 결혼을 했는데, 아내인 야스민의 지금 나이가 서른 살이었습니다. 따져보니 아내는 열 다섯살에 ‘띠동갑’ 술레이만과 결혼한 것입니다. 일행은 술레이만을 향해 “한국에서는 당신 같은 사람을 ‘도둑놈’이라고 한다”고 농담을 던지자 폭소가 터졌습니다. 한국식 농담도 통했던 것입니다
대화 주제는 신앙 얘기로 이어졌습니다. 이들 가족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교회인 ECC(담임 김성국 선교사)에 출석하는 성도들이었습니다. 무슬림이었던 술레이만 부부는 ECC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3년쯤 지나 세례를 받았습니다. 공식적으로 종교를 바꾼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봉사도 하고 있고, 전도도 열심히 한다고 ECC 담임인 김성국 선교사가 귀띔했습니다.
이들은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아무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고백을 스스럼 없이 꺼냈습니다. 그러면서 고민도 나눴습니다. 술레이만은 “나는 가끔씩 화를 못참는다. 고치고 싶은데 잘 안된다”고 털어놨습니다. 야스민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걸 깊이 느끼면서도, 종종 과거에 고통스럽던 일들이 떠올라 힘들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방문객들은 이들 얘기를 함께 들어주고 술레이만 가정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준비해간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시 42:3)는 메시지가 담긴 성경말씀 족자였습니다. 김 선교사는 “내년에는 술레이만 가정에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 둔 소망을 잃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밤이 깊어지고, 일행은 술레이만 부부와 함께 한 공간에 이부자리를 깔았습니다. 한쪽엔 야스민이 누웠고 그 옆엔 막내딸이, 야스민 머리 위로는 둘째 딸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야스민의 발 밑에는 남편 술레이만이 누웠습니다. 저와 일행에게는 난로에서 가까운 자리가 주어졌습니다. 손님의 특권 같았습니다. 불이 꺼지고 다들 숨소리가 잦아들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부스스한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며 “메리 크리스마스”로 아침 인사를 나눴습니다. 너무나 낯설것 같았던 이 만남이, 이상하게 하나도 낯설지 않았습니다. 환대란 무엇일까요.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밥상이 아니라 마음 문을 열고 하나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나의 마음은 복음으로 충분했습니다. 2022년 성탄절, 쿠르드족 난민 술레이만 부부의 환대는 극진했습니다.
베카(레바논)=글.사진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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