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톡]반도체 주도권 안 뺏긴다…"기술·인재 지켜라" 대만의 발걸음

정현진 2022. 12. 2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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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脫) 대만화 문제는 없다. TSMC가 미국에 투자해 짓는 공장의 생산능력은 전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TSMC의 대만 공장이 가장 수익성 좋은 공장이 될 것이다."

대만 국가발전위원회(NDC)의 쿵밍신 위원장은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진행된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의 공장 장비 반입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TSMC가 최첨단 기술인 3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을 미국에 도입하고 공장 투자도 확대하겠다고 선언하자 반도체 공급망 핵심이 대만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반박한 발언이었다. 대만 경제부도 곧바로 "TSMC의 가장 중요한 생산기지는 우리"라고 단언했다.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짓고 있는 대만 TSMC의 공장 내부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과 류더인 TSMC 회장(오른쪽), C.C. 웨이 최고경영자(CEO)가 함께 둘러보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기술·인재를 지켜라" 대만 정부의 무기 지키기

‘반도체 최강국’ 대만이 산업 주도권을 사수하기 위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반도체 패권 경쟁을 벌이며 대만 반도체 업체와 기업에 잇단 러브콜을 보내는 미국, 중국, 유럽 등 강대국의 압박 속에서 작은 섬나라 대만은 수십년간 쌓아온 기술력과 인재라는 ‘무기’를 지키는 데 집중한다.

26일 대만 IT전문매체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대만 행정원 정무위원(장관급)인 우정중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 주임위원은 이달 초 기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TSMC의 핵심 기술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특별팀을 구성하겠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TSMC가 미국 투자를 확대하고 첨단 공정을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기술과 영업 비밀을 보호하기 위한 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만 정부는 또 이달 초 정부가 투자한 핵심기술 관련 인력이 중국으로 여행을 가거나 중국에서 환승할 경우 사전에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어 입법 예고했다고 대만 중앙통신사 등은 전했다. 앞서 지난 2월에는 대만 의회가 중국 등 다른 나라에 핵심 기술 넘기는 행위에 대해 최고 징역 12년에 처하는 국가안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또 지난 9월에는 중요 산업의 영업 비밀과 국가 핵심 기밀을 유출할 경우 최고 5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지적재산권 사건 재판법’ 개정안을 만들었다. 모두 자국의 반도체 기술과 인재를 지키기 위한 조치였다.

여기에 지난달에는 대만 정부가 기술 기업의 연구개발(R&D)에 대해 소득세를 최대 25% 줄여주는 등 세금을 감면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첨단 장비 도입에 투자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5%의 추가 세금 감면도 제공한다. 블룸버그는 "대만 정부가 미국 등 다른 국가가 (반도체 산업에) 지원금을 주고 있는 상황에서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분석했다.

◆ 대만, GDP의 20%가 반도체 산업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대만 정부는 반도체 산업이 국가 경제를 책임지는 핵심이라고 보고 있어, 이 같은 조치에 나서게 됐다. 대만은 2016년 ‘기술이 최고의 안보’라는 방침을 세우고 반도체 산업 육성에 나섰다. 핵심 기업인 TSMC를 비롯해 자국 반도체 업체를 적극적으로 밀어주기 위해 규제를 풀고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지원을 쏟아냈다.

현재 대만의 국내총생산(GDP)에서 반도체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이상이다. 파운드리 업계 1위 TSMC의 시장 점유율이 56.1%(3분기·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로 압도적이다. 특히 첨단 공정에 있어서는 2019년 기준 전 세계 10나노 이하의 공정 중 92%가 대만에서 이뤄진다. 기술과 이를 개발, 적용하는 인재가 국가의 핵심 자원일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등 반도체 패권을 원하는 주요국들은 모두 대만에 손을 뻗고 있다. 이 국가들은 TSMC를 비롯한 대만 반도체 업체를 상대로 자국에 제조시설을 짓는 등 투자를 하라고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기술력을 갖춘 인재도 영입하기 위해 설득에 나선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 등은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대만이 핵심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세계 반도체 산업의 중심지로 대만의 몸값이 높아진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이러한 상황이 대만으로서는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미-대만 비즈니스협의회 루퍼트 해먼드 챔버스 회장은 지난 13일 한 주요 외신에 보낸 기고문을 통해 미국과 유럽이 ‘온쇼어링(해외 기업의 자국 유치나 자국 기업의 국내 아웃소싱 확대)’ 요구해 대만의 경제력을 약화하는 것은 대만을 오히려 고립시켜 중국이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을 견제하겠다며 시작된 반도체 패권 경쟁이 오히려 중국을 도울 수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대만 정부의 노력에 반도체 업계는 아직까지 대만의 중요성을 내려놓지 않고 있다. 미 반도체 업체인 엔비디아는 지난달 홍콩에 있던 물류센터를 대만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고 대만 정부가 밝혔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업체 ASML도 지난달 대만 신타이베이에 300억대만달러(약 1조2000억원)를 투자해, 내년 7월부터 공장과 R&D 센터를 짓기로 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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