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 칼럼]종부세, 이번 정부가 못하면 영원히 못 없앤다

이정재 2022. 12. 2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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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정재 경제미디어스쿨원장 겸 논설고문]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자유, 공정과 전혀 맞지 않는 세금이 있다. 종합부동산세다. 당장 폐기해도 시원찮을 세금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정부ㆍ여당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기껏해야 부과 기준을 12억원으로 하느니, 다주택자 중과는 완화해야 한다느니를 놓고 야당과 드잡이질을 하는 게 고작이다. 그러니 내년 예산안을 놓고 이재명 예산인지 윤석열 예산인지 헷갈린다든지, 더불어민주당이 '집권 야당'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번 예산안 논쟁을 보며 내내 불편했던 이유다.

종부세는 야당과 좌파 진영이 십수 년에 걸쳐 구축한 이념의 세금이다. 그 종부세를 놓고 완화 논쟁을 벌이는 것 자체가 이미 야당이 만들어놓은 부동산 정치의 프레임, 이념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얘기다. 그나마 협상 자체도 엉터리였다. 가장 센 것으로 압박해야 중간 지점에서 타협할 텐데, 폐지안은커녕 최소한의 완화안을 구걸하듯 내밀었다. 야당이 선심 쓰듯 슬쩍 물러서는 시늉내기에 딱 좋은 수준이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벌써 종부세가 얼마나 질 나쁜 세금인지 잊어버린 듯하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간략하면, 첫째 종부세는 편 가르기 세금이다. 처음엔 강남과 비강남을, 다음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갈라쳤다. 둘째, 초심을 잃었다. 노무현 정부의 종부세는 부유세였다. 0.5%의 부유층이 목표였다. 문재인 정부는 한술 더 떴다. 초(超) 부자에게만 세금을 걷겠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읽혔다. 그런데 일이 어찌 사람 뜻대로 되나. 딱 한 잔으로 끝나지 않는 술자리 꼴이 났다.

올해 종부세 대상은 131만명, 서울은 주택 보유자의 8%나 됐다. 셋째, 조세의 원칙인 예측 가능성, 공정성을 잃었다. 세금이 옆집 다르고 어디 사느냐에 따라 다르고 부부간 누구 명의냐에 따라 다르다. 세제가 누더기가 된 건 물론이요, 내년 집값이 얼마나 오를지 떨어질지 모르니, 내 세금도 얼마가 될지 종잡을 수 없다. 탈세범이 안 되려면 연금까지 한 푼 못 쓰고 모아야 한다는 어느 노부부의 한숨이 남의 얘기가 아니다.

이쯤 해서 원점을 되돌아볼 때가 됐다. 보수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종부세는 없다. 이명박 정부는 종부세 폐지에 총력을 쏟았다.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총대를 멨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정도 났다. 하지만 완전 폐지에는 실패했다. 야당이 끝까지 반발하며 명맥을 지켰기 때문이다. 좌파 진영은 "인공호흡기를 달고라도 살아있어야 한다, 살아남으면 기회가 온다"며 버텼다. 노무현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의 종부세 설계자인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2008년 당시 한 언론 대담에서 "종부세의 인공호흡기를 떼어 낼 필요는 없다. 종부세를 지켜내는 게 마지막 안전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10년 뒤 그의 말대로 기회가 왔다. 깊은 땅속에서 숨만 쉬던 종부세를 꺼내 들고 세상을 다시 뒤집었다.

돌아온 종부세는 노무현 정부 때보다 훨씬 큰 폐해와 부작용을 남겼다. 그런데 웬일인가. 종부세 폐지를 말하는 현 정부ㆍ여당 인사를 찾기 어렵다. 되레 종부세를 받아들이고 손질해서 쓰자고 한다. 종부세에 길들여진 것이다. 국민 다수의 반응도 비슷하다. "종부세가 왜 이렇게 많이 나왔냐, 깎아 달라" 항의할 뿐 폐지를 말하는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진영 정치는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렇다고 종부세가 야당의 보물단지인 것도 아니다. 야당과 좌파 진영도 원점을 돌아봐야 한다. 종부세는 부유세로 설계됐다. 설계 의도를 무시하고 편 가르기와 국민 징벌세로 폭주했다가 두 차례나 정권을 잃었다. 김수현의 말마따나 "부동산은 정치"라는 눈으로 봐도 종부세 폐지에 앞장서야 할 진영은 오히려 야당이라는 얘기다.

윤석열 정부는 통합을 말해왔다. 통합의 시작은 편 가르기의 제도화, 상습화, 보편화, 일상화를 막는 것이다. 종부세는 이미 편 가르기의 제도화, 상습화, 보편화, 일상화의 상징이 됐다. 이번 정부가 없애지 못하면 종부세는 오래도록 살아남아 수시로 나라를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종부세 폐지가 바로 통합의 시작이다. 좌파 진영과 야당의 반발이 문제라면 걱정할 것 없다. 아무리 머리가 나쁜들 종부세 때문에 두 번 정권을 내준 기억을 잊겠나.

이정재 경제미디어스쿨원장 겸 논설고문 yijungj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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