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 노조에 '메스'…"1000명 이상땐 회계전문가 감사 의무화"
내년부터 노조 회계 감사는 전문 자격을 갖춘 감사원에 의해 1년에 두 차례 이상 실시해야 한다. 회계 감사 결과는 항목별로 정리해 공표된다. 또 조합원 1000명 이상의 대기업 노조와 노총이나 산별노조와 같은 연합단체는 재정 관련 서류를 조합원이 볼 수 있도록 비치해야 한다. 정부도 이를 활용해 재정 운용 상황을 점검한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26일 '노동조합의 재정 투명성 관련' 브리핑을 열고 이런 내용의 대책을 내놨다. 현행법의 테두리 안에서 노조의 자율과 자치를 해치지 않고,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제87조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장)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노조의 책임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정부가 그동안 법에 명시된 노조의 재정 투명성 확보 방안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아 사실상 노조 내부 부패로 이어지도록 방치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다만 현행법에도 미비점은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이런 부분은 법 개정을 통해 보완할 방침이다.
이 장관은 "1987년 이후 양적으로 성장한 노조는 정치와 경제,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조의 재정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지고 있으며 '깜깜이 회계'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장관은 특히 "노조가 그간 기업에 대해서는 투명성을 요구하면서 실상 자기통제에는 인색한 모습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노조가 노사관계의 한 축인 기업을 상대로는 시위 등의 방법을 동원해 위력을 행사하며 압박하면서 정작 노조 스스로에 대해서는 치외법권화해왔다는 질타다.
이 장관은 정부의 무관심과 무책임에 대해서도 반성했다. 그는 "정부도 그간 노조 자치라는 이름으로 법에 정해진 서류 비치, 재정 상황 보고 등 필요한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통감했다.
이런 반성을 토대로 정부는 노조의 재정 투명성 관련 4가지 대책을 내놨다.
우선 조합원 1000명 이상 단위 노조와 연합단체 253개소(잠정)에 대해 재정 관련 서류 비치와 보존의무를 이행하도록 안내하고, 조치 결과를 보고해 재정운용 상황을 확인한다. 단위 노조는 기업별 노조를 일컫고, 연합단체는 한국노총, 민주노총과 같은 총 연합회와 금속노조와 같은 산별노조 등이다. 정부의 이 대책은 노동조합법 제14조에 명시된 사안이다. 그러나 정부는 그동안 이 조항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점검하지 않은 채 사실상 사문화했다.
이 장관은 "조치 결과를 보고하지 않거나 서류 비치를 하지 않은 경우 법률에 따라 시정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 회계 감사도 수술대에 올린다. 이 장관은 "노조 회계감사원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시행령을 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법(노조법 제25조)상 노조는 회계감사원에게 맡겨 6개월에 한 번 이상 회계감사를 하고 그 내용과 결과를 전체 조합원에게 공개해야 한다. 하지만 노조의 회계감사원은 대부분 노조 위원장이 지목하는 노조 내부 간부로 채워졌다. 선진국의 경우 예외 없이 전문 자격을 가진 외부인으로 회계감사를 선임한다. 재정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핵심 고리가 현행법에는 누락돼 있는 셈이다.
이 장관은 "회계감사원의 자격 제한이 없어 전문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고, 결산 결과와 운영상황에 대한 공표도 구체적 사항을 규정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시행령을 고쳐 회계감사원의 자격과 선출방법을 구체화하고, 재정 상황 공표의 방법과 시기를 명시할 방침이다. 이 장관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면서 관계부처와 협의해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또 "노조에 대한 국고 지원 사업이 잘 쓰이고 있는지 면밀히 살피겠다"고 말했다. 노조에 대한 국고 지원은 대부분 정부 사업을 대행 또는 보조하는 용역 형태로 이뤄진다. 이와 관련된 재정 집행 현황은 보조금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점검과 감사가 진행된다. 부정하게 사용되면 회수 절차에 들어간다. 이명박 정부에서 노동단체에 사업보조비로 지원된 돈이 투쟁기금으로 전용되는 사례가 감사 결과 적발돼 회수된 적이 있다.
이 장관은 이런 방안에 덧붙여 "일정 규모 이상의 노조 회계 감사 결과 공표를 검토하고, 조합원의 열람권 보장·확대 등 노조 재정 투명성 제고를 뒷받침할 법 개정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노조법을 위반할 경우 사법처리되는 사용자에 대한 제재와 달리 노조의 경우 재정 투명성 관련 법을 어겨도 시정명령에 그치는데다 이행하지 않아도 과태료 500만원에 처해지는 행정제재뿐이어서 실효성은 의문이다.
정부는 노조의 재정 투명성 확보 방안 이외에 불합리한 노사 관행 개선에도 나설 방침이다. 이를 위해 내년 2월부터 온라인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를 운영한다. 포괄임금 오·남용, 특정노조 가입과 탈퇴 강요, 재정운영 결과의 공개 거부 등 노조와 사용자를 불문하고 위법한 행위 전반을 대상으로 한다. 신고 사항이 사실로 확인되면 회사에 대해서는 근로감독을, 노조에 대해서는 시정명령 등 엄정 대응하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이 장관은 이와 관련 "조합원의 자유로운 의사에 반하여 노조의 가입이나 탈퇴 등을 방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민주노총 금속노조)포스코지회에 대해서는 시정명령 등 행정조치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특히 "폭력 등을 통해 다른 노조의 조합활동을 방해하거나 조합원의 채용을 강요하는 등 현장에서 발생하는 불법행위를 규율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건설현장 등에서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소속 노조가 자기 조합원의 채용을 강요하거나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건설현장을 물리적으로 봉쇄하는 행위가 잦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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