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61시간 일하고 뇌출혈'... 경제부총리는 이거 꼭 아셔야 합니다

최민 2022. 12. 26.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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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환경의학 전문의가 본 30인 미만 '주60시간 연장 촉구 담화문'

[최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배석한 가운데 추가연장근로 일몰연장 입법 촉구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건강하던 50대 남성이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2년가량, 시장의 큰 마트에서 수산물 판매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저녁 8시까지, 주 6일 일을 했습니다. 종종 30분가량 일찍 출근해 물건을 정리하거나, 청소와 매장 정리를 마치고 30분가량 늦게 출근한 시간까지 합쳐 지난 3개월간 매주 평균 61시간씩 근무했습니다. 주 12시간 연장 노동 상한이 시행된 것이 2018년부터라고 하지만, 2021년에는 '포괄임금제'와 유사한 형식으로 주 52시간 이상 일하겠다는 근무 합의서를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이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 제한 규정에 의한 보호를 전혀 받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노동자가 일했던 사업장이 30인 미만 사업장이었기 때문입니다. 2018년부터 주 12시간 연장근로 상한이 시행되고 있지만, 사업체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되고 특히 30인 미만 사업장은 여전히 주 60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노동자의 뇌출혈은 산업재해로 쉽게 인정될 것입니다. 고용노동부에서 고시하고 있는 12주간 주당 평균 노동 60시간을 넘게 일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노동자는 건강을 크게 잃었고, 가족들도 매우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병 주고 약 주는 대한민국 

과로에 의한 뇌심혈관질환 사례를 듣다 보면 이런 사연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작은 유통업체에서 사장과 단 둘이 일하느라, 주 6일 하루 12시간씩 근무하다 쓰러진 30대 노동자도 있습니다. 건물 관리를 위해 교대근무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평균 노동시간이 주 52시간을 넘기는 건 너무나도 흔한 일입니다. 이런 노동자 대다수가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합니다. 

2018년 뇌심혈관질환 산재 승인 696명 중 445명, 2019년 957명 중 591명, 2020년 704명 중 431명, 2021년 659명 중 442 명이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습니다. 과로에 의한 뇌심혈관질환으로 산재 인정받은 재해자의 60% 이상이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2021년에는 그 비율이 2/3를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근로기준법에서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주 60시간까지 일할 수 있도록 해놓고, 산재보험에서는 주 60시간 동안 일하다 쓰러지면 과로사로 보상하는 것이 '병주고 약주는' 것으로 느껴지는 건 저만의 생각인가요?

과로사가 발생할 수 있을 정도로 긴 시간 일할 수 있도록 법을 열어두고, 과로사가 발생하면 유족 연금 지원하고, 뇌졸중·심근경색이 발생하면 치료비 지원하면 되는 걸까요? 눈에 보이는 위험을 그대로 두고, 일하다 다치면 보상해주는 것이 산재보험의 존재 이유일까요? 

경제부총리가 해야할 일   

지난 20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 이영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은 '추가 연장 근로 일몰 연장 입법 촉구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관련기사 : 30인 미만 사업장 '주 60시간' 일하라는 윤석열 정부 http://omn.kr/221z8)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올해 말까지로 예정돼 있던 30명 미만 영세 사업장의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를 연장하자고 '호소'했습니다. 장관들이 생각하는 '어려움'에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어려움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하루 8시간 노동이 전세계 노동자들의 구호가 된 지 100년이 넘고, 주 40시간제가 도입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주 60시간씩 과로하다 사망하는 노동자가 1년에 500여 명이나 되는 대한민국 현실은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어려움' 아닐까요? 

소규모, 영세사업장의 어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경영하는 사업주만 힘든 것이 아닙니다. 소규모 사업장 많은 노동자들이 낮은 임금 때문에 장시간 노동을 자처합니다.

며칠 전엔 노동자가 100명도 넘는, 대기업의 2차 하청업체를 만났습니다. 조사를 위해 석 달간의 노동시간을 물었는데, 최근 한 달은 주 52시간 넘게 일한 사람이 16%나 됐습니다. 이 노동자들은 연차도 잘 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불법임을 알고, 장시간 노동이라고 생각하지만, 무엇보다 연차수당을 기본적인 급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를 포기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연차 수당이 너무 소중하고, 불법적인 장시간 노동을 자처하는 노동자들도 노동법상 노동시간 제한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이 바라는 것은 자유롭게 장시간 노동하는 '노동지옥'이 아니라, 실질 임금이 인상돼, 연차를 마음껏 쓰고, 주 40시간 일하고도 여유있게 생활할 수 있는 사회입니다.

노동자들은 그러기 위해 원하청 간의 거래가 공정해지고, 사장에게 돌아가는 몫보다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더 커지기를 바랍니다. 경제부총리, 고용노동부장관,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이 해야 할 일은, 이미 장시간 노동인 52시간보다 더 길게 일하라고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그래서 작은 사업장 노동자나 사업주, 큰 기업 노동자나 사업주가 '통합'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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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최민씨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이자 직업환경의학전문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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