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부족한 건 돈뿐만이 아니다 [시간빈곤연구소]

최은희 2022. 12. 26.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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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4시간, 8만6400초.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어떤 이들의 시간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시간빈곤자 이야기다. 일주일 168시간 중 개인 관리와 가사, 보육 등 가계 생산에 필요한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이 주당 근로시간보다 적으면 시간빈곤자가 된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다양한 시간빈곤자 중 한부모에 주목했다. 생업과 양육, 가사를 모두 짊어진 한부모는 시간을 쪼개가며 1인 3역을 하고 있다. 찰나의 여유도 허락되지 않는 사람들. 시간빈곤에 빠진 한부모의 목소리를 다섯 편의 기사에 담았다. [편집자주]

*지난 10월 일주일 동안 서울에 거주하는 한부모 김연수(여·36·가명)씨의 일과를 살폈다. 3일간의 동행취재 및 인터뷰도 진행했다. 이를 재구성해 김씨의 입장에서 일기 형태로 기사를 작성했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과 단둘이 사는 김연수(여·36·가명)씨. 한부모 가장이자 워킹맘인 그는 아침마다 전쟁을 치른다. 출근 준비와 아이 등교 준비를 동시에 병행하려면 시간이 없다.   사진=최은희 기자

2022년 10월11일 화요일

“너 일어나라고 했지? 엄마 늦어!” 오늘도 어김없이 아이에게 소리쳤다. 아이는 또래보다 발달이 느리다. 초등학교 1학년이지만 인지 능력은 6세 수준이다.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전 남편은 지금껏 한 번도 아이를 보러오지 않았다. 친정은 지방에 있다. 나라에서는 나를 법정 한부모로 인정하지 않는다. 도움이 절실하지만 소득인정액 때문에 지원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김씨가 차린 아이의 아침 밥상. 단골 메뉴는 간장 계란밥, 달걀물 묻힌 토스트, 김에 싼 밥, 주먹밥 등이다. 모두 시간이 없어도 금방 만들 수 있다.   사진=최은희 기자

아침마다 시간에 쫓긴다. 오전 7시15분. 아무리 깨워도 아이는 좀처럼 깨지 않는다. 억지로 일으켜 본다. 접이식 테이블에 아침 밥을 차려놓는다. 몇 숟갈 먹다 말고 딴 짓을 한다. 7시30분이 지나자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 “빨리 먹어”, “아들, 그만 먹을 거야?”, “안 먹을거면 치운다!” 상냥한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오전 7시30분 김씨의 자녀가 눈 뜨자마자 밥을 먹고 있다. 김씨의 출근 시간에 맞춰 등교해야 하기 때문에 또래보다 일찍 일어난다.   사진=최은희 기자

한 번에 한 가지 일은 내게 허락되지 않는다. 아이가 밥을 먹는 동안 최대한 빨리 씻는다. 대충 엎드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한다. 화장은 회사 엘리베이터 거울 앞에서 해결할 때가 많다. 등교 준비도 내 몫이다. 아이를 씻기고 머리를 빗긴 후 옷을 입힌다. 아이가 로션을 바를 동안 나도 옷을 입는다. 옷을 입으면서도 몇 번이나 “제대로 발랐어?”라고 확인한다. 오전 7시50분. 부엌 싱크대에 미처 해치우지 못한 설거짓거리가 수북하다. 하지만 나가야 할 시간이다.

아이 손을 잡고 바쁘게 발걸음을 옮긴다. 이른 등교 탓에 매일 가장 먼저 학교에 도착한다. “엄마, 잘 가” 손을 흔든 아이가 터덜터덜 학교 계단을 오른다. 교실까지 잘 도착했는지 확인하고 싶지만, 출근하려면 갈 길이 멀다. 사람 꽉 찬 버스에 몸을 구겨 넣고 35분을 서서 간다. 가만히 눈을 감고 졸음을 쫓는 것도 잠시, 시계를 확인한다. 오래전부터 생긴 습관이다.

오후 5시. 김씨가 퇴근하자마자 집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다. 돌봄 센터에 맡긴 자녀를 데리러 가는 게 늦을까 봐 일분일초 마음이 급한 상태다.   사진=최은희 기자

오후 4시40분. 퇴근하자마자 허겁지겁 가방을 챙겼다. 당장 오늘 필요한 저녁 재료를 가방에 쑤셔 넣고 돌봄 센터로 향한다. 방과 후 아이를 맡긴 곳이다. 오후 6시, 아이가 혼자 남아있다. 퇴근해야 하는 선생님에게 죄인이 된 심정이다. “죄송해요, 너무 늦었죠” 사과를 입에 달고 산 지 오래다. 아이 손을 잡고 도망치듯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 아이는 이 시간이 즐거운 듯 잠시도 입을 쉬지 않는다. “엄마랑 같이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바쁘지 않고, 오래오래 나랑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 구석 자책감이 커진다. 귀엽게 입을 오물오물 대는 모습을 보고 웃지만, 사실 울고 싶다.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 미안하다. 그렇다고 일을 그만두고 아이만 볼 순 없다. 당장 먹고살아야 한다. 돈 나올 구멍은 없다.
김씨의 회사는 점심식사 시간이 따로 없다. 20분 내에 눈치껏 먹어야 한다. 출장이 많은 달에는 주로 편의점 삼각김밥, 베지밀 한 병으로 때운다. 급하게 먹느라 속이 더부룩할 때가 많다.  사진=최은희 기자

2022년 10월13일 목요일

외근 있는 날은 유독 초침이 빠르다. 오후 1시30분부터 두 차례나 외근이 잡혔다. 점심은 결국 먹지 못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단팥빵으로 끼니를 때웠다.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마다 운전면허를 따야 하나 고민이 되지만 이 상황에 차를 사는 건 사치다.  
교육회사 무기계약직. 월급은 세후 210만원. 우리 가족의 유일한 벌이다. 직장을 옮기며 연봉이 몇 백만원은 깎였지만 후회는 없다. 전에 다니던 직장은 5인 미만 회사였다. 일주일에 세 번, 밤 10시까지 야근해야만 했다. 아이를 위해 딱 하루 연차 내는 일도 어려웠다. “남편이나 친정에 부탁하면 되잖아” 호통치는 상사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하다. 결국 연봉을 낮춰 이직했다. 시간에 쫓기느니 덜 벌고 아끼는 게 낫다. 
김씨는 퇴근을 해도 쉴 수 없다. 아이 저녁을 차려주고, 밀린 집안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정서적으로도 남들보다 취약하다. 여가에 쓸 시간이 적어 우울감·스트레스가 크다. 아이와 함께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사진=최은희 기자

오후 8시. 외근을 마치고 아이와 함께 귀가했다. 집에 돌아오면 그저 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아이가 방에 들어가 장난감부터 집어 든다.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잔소리가 시작된다. “다 놀고 나면 치워”, “아들, 코 푼 휴지 아무 데나 버리지 말고” 
해치워야 할 숙제가 한가득이다. 아침에 먹고 나간 그릇을 씻고, 저녁밥을 차리고, 집 안을 청소하고, 밀린 빨래를 돌려야 한다. 언제까지 슈퍼우먼 흉내를 낼 수 있을까. 몸이 열 개 정도 되고 하루가 48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어느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잠을 자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겼으면 좋겠다. 돌고 도는 쳇바퀴는 언제쯤 멈출까.
가사일을 끝마치고 나면 육아가 김씨를 기다린다. 아이 숙제를 봐주는 것도 자신의 몫이다.   사진=최은희 기자

눈도 붙이고 싶고, 인터넷 검색도 하고 싶다. 아이가 학습지 숙제를 가져와 펼쳐 놓는다. 반은 졸고 있는 상태. 속도가 붙을 리 없다. “빨리 네 쪽만 풀고 자자”라고 했지만, 네 쪽을 푸는 데 30분이 넘게 걸렸다. 오후 10시, 아이를 재운다. 동화책 3권은 읽어야 끝난다. 마지막 장이 남았을 무렵, 아이는 스르르 잠들었다. 나는 아직 겉옷만 벗은 상태다. 화장도 지우지 못했다. 간단히 씻고 나와 아이가 남긴 밥 한 숟갈 떴다. 고개를 들자 집안일이 또 눈에 들어온다. 
아이가 잠들기 직전 동화책을 읽어주는 김씨. 김씨와 같은 한부모 가장은 일어난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쉴 시간이 없다. 일, 양육, 가사노동을 홀로 책임져야 하는 쳇바퀴 같은 하루하루가 반복된다. 줄일 수 있는 건 잠자는 시간,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뿐이다.   사진=최은희 기자

한부모 가장에겐 뭐든 가속도가 붙는다. 집안일을 하느라 미뤄둔 회사일까지 끝내고 나면 밤 12시30분. 지친 몸을 이끌고 아이 옆에 눕는다. 독서 같은 소소한 즐거움은 사치가 된 지 오래다. 푹 자본 게 언제인지 까먹었다. 매일 새벽에 퇴근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시간이 부족하냐고 물으면 울분이 터진다. 누굴 탓할 새도 없이 잠들면 오전 6시30분. 다시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도움 한국언론진흥재단-세명대 기획탐사 디플로마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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