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부족한 건 돈뿐만이 아니다 [시간빈곤연구소]
2022년 10월11일 화요일
“너 일어나라고 했지? 엄마 늦어!” 오늘도 어김없이 아이에게 소리쳤다. 아이는 또래보다 발달이 느리다. 초등학교 1학년이지만 인지 능력은 6세 수준이다.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전 남편은 지금껏 한 번도 아이를 보러오지 않았다. 친정은 지방에 있다. 나라에서는 나를 법정 한부모로 인정하지 않는다. 도움이 절실하지만 소득인정액 때문에 지원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아침마다 시간에 쫓긴다. 오전 7시15분. 아무리 깨워도 아이는 좀처럼 깨지 않는다. 억지로 일으켜 본다. 접이식 테이블에 아침 밥을 차려놓는다. 몇 숟갈 먹다 말고 딴 짓을 한다. 7시30분이 지나자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 “빨리 먹어”, “아들, 그만 먹을 거야?”, “안 먹을거면 치운다!” 상냥한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한 번에 한 가지 일은 내게 허락되지 않는다. 아이가 밥을 먹는 동안 최대한 빨리 씻는다. 대충 엎드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한다. 화장은 회사 엘리베이터 거울 앞에서 해결할 때가 많다. 등교 준비도 내 몫이다. 아이를 씻기고 머리를 빗긴 후 옷을 입힌다. 아이가 로션을 바를 동안 나도 옷을 입는다. 옷을 입으면서도 몇 번이나 “제대로 발랐어?”라고 확인한다. 오전 7시50분. 부엌 싱크대에 미처 해치우지 못한 설거짓거리가 수북하다. 하지만 나가야 할 시간이다.
아이 손을 잡고 바쁘게 발걸음을 옮긴다. 이른 등교 탓에 매일 가장 먼저 학교에 도착한다. “엄마, 잘 가” 손을 흔든 아이가 터덜터덜 학교 계단을 오른다. 교실까지 잘 도착했는지 확인하고 싶지만, 출근하려면 갈 길이 멀다. 사람 꽉 찬 버스에 몸을 구겨 넣고 35분을 서서 간다. 가만히 눈을 감고 졸음을 쫓는 것도 잠시, 시계를 확인한다. 오래전부터 생긴 습관이다.
오후 4시40분. 퇴근하자마자 허겁지겁 가방을 챙겼다. 당장 오늘 필요한 저녁 재료를 가방에 쑤셔 넣고 돌봄 센터로 향한다. 방과 후 아이를 맡긴 곳이다. 오후 6시, 아이가 혼자 남아있다. 퇴근해야 하는 선생님에게 죄인이 된 심정이다. “죄송해요, 너무 늦었죠” 사과를 입에 달고 산 지 오래다. 아이 손을 잡고 도망치듯 나왔다.
2022년 10월13일 목요일
외근 있는 날은 유독 초침이 빠르다. 오후 1시30분부터 두 차례나 외근이 잡혔다. 점심은 결국 먹지 못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단팥빵으로 끼니를 때웠다.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마다 운전면허를 따야 하나 고민이 되지만 이 상황에 차를 사는 건 사치다.
오후 8시. 외근을 마치고 아이와 함께 귀가했다. 집에 돌아오면 그저 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아이가 방에 들어가 장난감부터 집어 든다.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잔소리가 시작된다. “다 놀고 나면 치워”, “아들, 코 푼 휴지 아무 데나 버리지 말고”
눈도 붙이고 싶고, 인터넷 검색도 하고 싶다. 아이가 학습지 숙제를 가져와 펼쳐 놓는다. 반은 졸고 있는 상태. 속도가 붙을 리 없다. “빨리 네 쪽만 풀고 자자”라고 했지만, 네 쪽을 푸는 데 30분이 넘게 걸렸다. 오후 10시, 아이를 재운다. 동화책 3권은 읽어야 끝난다. 마지막 장이 남았을 무렵, 아이는 스르르 잠들었다. 나는 아직 겉옷만 벗은 상태다. 화장도 지우지 못했다. 간단히 씻고 나와 아이가 남긴 밥 한 숟갈 떴다. 고개를 들자 집안일이 또 눈에 들어온다.
한부모 가장에겐 뭐든 가속도가 붙는다. 집안일을 하느라 미뤄둔 회사일까지 끝내고 나면 밤 12시30분. 지친 몸을 이끌고 아이 옆에 눕는다. 독서 같은 소소한 즐거움은 사치가 된 지 오래다. 푹 자본 게 언제인지 까먹었다. 매일 새벽에 퇴근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시간이 부족하냐고 물으면 울분이 터진다. 누굴 탓할 새도 없이 잠들면 오전 6시30분. 다시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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