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근육서 백조를 본다…세계적 발레리노도 홀린 사진가의 과거
김윤식 사진작가의 스튜디오 바닥엔 패인 자국이 가득하다. 발레 무용수들이 포즈를 취하며 바닥에 새긴 흔적이다. 통칭 ‘토슈즈’(포앵트 슈즈, pointe shoes)의 딱딱한 앞코에 몸을 싣고 중력을 거슬러 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을 아름다운 영원으로 포착하는 게 김 작가가 평생 업으로 택한 일. 그 역시 소년 시절부터 발레 바(barre)를 잡았고, 성인이 된 후 10년간 한국과 체코의 국립발레단에서 춤을 췄다.
그래서일까. 무용수들은 그 앞에서 마음껏 날아오른다. 무용수의 몸과 마음을 잘 아는 작가라는 믿은 덕이다. 세계적 발레리노인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프리드먼 포겔 역시 그랬다. 김 작가가 촬영한 포겔의 사진은 이탈리아 로마의 마르구따 갤러리 단체전에 선정돼 지난 12일부터 전시 중이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유수의 무용수 사진의 단체전으로, 내년 3월 21일까지 이어진다. 김 작가를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김 작가가 무대에서 내려와 시작한 윤식스 포토 스튜디오는 무용인들의 성지(聖地) 같은 곳이다. 발레리노에 이어 사진작가로서의 인생 2막은 그러나 거저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처음엔 조리갯값 계산하는 것도 어려웠다”며 “그래도 열심히 연구했고, 지금은 감각적으로 찍으려고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무대의 순간은 화려하게 빛나지만, 그 순간엔 끝이 있다. 그 순간을 영원으로 남기는 게 사진과 영상이다. 그 순간 속에 있었던 김 작가가 그 순간의 포착을 잘 하는 까닭이다. 그는 “무용수의 무대 경력은 길 수가 없고, 그 반짝이는 순간들이 사라지는 게 아까웠다”며 “공연 무대나 백스테이지 등 다양한 순간을 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유독 좋아하는 건 뒷모습이다. 왜일까. 그의 답은 이랬다. “무대에서 활짝 웃으며 춤을 추던 무용수들이 막이 내려간 뒤 땀과, 때론 피가 묻은 포앵트 슈즈를 들고 대기실로 들어가는 뒷모습이 짠하더라고요. 매일의 연습과 무대 공연을 통해 자리잡은 자연스러운 등 근육도 멋지고요. 그런 뒷모습이 진실을 더 말해준다고 생각해요.”
김 작가가 사진과 본격 마주하게 된 건 체코 국립발레단에 무용수 겸 사진작가로 채용되면서였다. 그는 “춤도, 사진도 많이 하니 좋았는데 어느 순간 하나에 집중을 하고 싶더라”며 “다음날 공연인데 사진 작업이 재미있어서 밤을 새운 것도 여러 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프로로 춤을 춘 건 딱 10년”이라며 “후회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가 이날 본인도 모르게 수차례 한 말이 있다. “100%를 쏟는 게 좋다”라는 말이다. 무대에 온전히 에너지를 쏟은 뒤 이젠 사진 작업에 전력투구를 하고 있는 셈. 무대와 헤어질 결심이 쉽진 않았지만, 그의 성정 상 선택과 집중을 한 결과다.
‘사진작가 김윤식’의 삶은 여전히 치열하다. 자정에 퇴근하는 일도 잦다. 모든 컷에 정성을 쏟기 위해서다. 그의 정성은 이미 입소문이 자자하다. 그와 절친한 사이이면서 각각 한국과 러시아를 대표하는 김기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와 김기민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 역시 촬영을 위해 그의 스튜디오를 찾는다. 내년 초까지 스튜디오 예약은 이미 완료. 전문 및 전공 무용수들은 물론 취미로 배우는 이들 사이에서도 윤식스 포토 발레 프로필 사진이 로망인 까닭이다. 100%를 중시하는 그의 특성 상, 하루에 두 팀만 받아 여러 시간을 공들여 계속 촬영을 하는 게 원칙이다. 그는 “예쁜 사진 하나 건져가자는 마음으로 오시는 분은 없다”며 “포즈를 위한 동작 관련 조언을 해드리면 어느새 촬영이 아니라 개인레슨이 되곤 한다”며 웃었다.
그가 지난해 촬영했던 취미발레인 이정현 씨는 프로 못지않은 등 근육과 ‘백조의 호수’를 연상시키는 컷으로 큰 화제가 됐다. 이정현 씨는 통화에서 “뒷모습은 원래 촬영 예정에 없었는데, 준비 과정에서 작가님이 ‘등이 말을 하는 것 같다’며 순간 포착을 해주셨다”며 “원하시는 컷을 위해 끈기 있게, 그러면서도 젠틀하게 에너지를 쏟아주셨디”고 말했다. 그 결과가 아래의 사진들이다.
김 작가는 2023년은 ‘확장의 해’로 만들어갈 꿈을 꾸고 있다. 스튜디오 촬영을 넘어 무대 및 무용수와 자연의 공존 등 다양한 테마의 작업을 해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체코에서 작업했던 문화 관련 명소에서 무용수를 촬영해 달력을 만들었던 프로젝트처럼 한국과 전 세계를 다니며 작업하고 싶은 꿈을 꾼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을 물었더니 그가 서슴없이 이렇게 답했다. “형(김경식 전 국립발레단 무용수, 현 영상 전문 작가) 자랑이요. 형제 중에서 형이 재능을 다 가져갔다고 투정부리고 싶을 정도로 멋진 형이에요. 형도 저도 서로 계속 응원하면서 함께 성장해나가고 싶습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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