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몰래 판 담보 車, 배임 아니다"…33년만에 뒤집었다 왜 [그법알]

신혜연, 오효정, 임장혁 2022. 12. 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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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보로 잡힌 차를 몰래 팔아버린 사람에게 배임죄가 적용될 수 있을까요? 1989년에 나와 지금까지 유지된 판례는 “그렇다”였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판례를 뒤집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지난 22일 나왔습니다.
중고차매매단지에 중고차들이 주차돼 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뉴스1


[그법알 사건번호 122] 담보 잡힌 차, 몰래 팔아버렸다면 배임?

2016년 6월 서울 금천구에서 멀티탭 도소매 사업장 A를 운영하던 B씨. B씨는 동업자들과 문제가 생기자 기존 사업장이던 A를 폐업하고 같은 업종의 새로운 회사 C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기존에 거래하던 멀티탭 제조업체인 D에 “새로 만든 C회사와 거래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기존 A업체의 채무에 대한 담보로 자동차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합니다. D업체는 이를 받아들였고 둘은 공정증서를 작성했습니다. 기존 A업체가 D업체에 지고 있던 빚을 갚겠다고 약속하면서, 만약 갚지 못할 경우 차량 처분권을 D에게 넘긴다는 내용의 계약을 한 겁니다.

그러나 B씨는 자동차를 D업체 명의로 변경하지 않았습니다. B씨는 이 차를 2017년 3월에 제 3자에게 245만원에 팔아버렸습니다. 그러자 검찰은 “B씨가 자동차 명의를 이전하지 않은 채 재산상 이득을 취하고 회사에 손해를 가했으므로 배임죄를 저질렀다”며 B씨에게 배임죄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습니다.


관련 법령은?

형법 제355조에 따르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를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 3자가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 배임죄가 성립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합니다.


법원 판단은?

대법원은 1989년 “권리이전에 등기·등록을 필요로 하는 동산인 자동차를 양도담보로 제공한 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하여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함을 전제로, 채무자가 담보목적물을 처분한 경우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1심과 2심에서는 B씨가 배임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벌금 3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B씨가 자동차 명의를 변경하는 일을 타인의 사무가 아닌 본인의 사무로 봤습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 회사와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피해자 회사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인을 피해자 회사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며 해당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파기 환송했습니다.

이번 판례는 배임죄 적용 범위를 좁혀온 대법원 판례 흐름과 일치하는 방향입니다. 대법원은 2011년 11월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개인 간의 계약 관계를 민사소송이 아닌 형법으로까지 끌고 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의 배임죄는 (중략) 그 내용상 개인의 사적 자치를 보장하는 사법(私法)의 영역에 국가 형벌권의 개입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 어느 형법 조문보다 시민사회의 자율적 영역의 핵심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배임죄라는 범죄유형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 점에 있다. (중략) 법령상이나 사법상의 계약에 위반하는 자를 모두 배임죄로 처벌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하게 된다면, 이는 민사사건의 전면적인 형사화를 촉진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2011.1.20. 선고 대법원 2008도10479 전합 판결)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라 배임죄 구성요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를 엄격하게 해석한 판결”이라며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것이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아닌 통상의 계약관계에서, 민사적 채무불이행 행위를 형사법상 범죄로 확대해석하는 것을 제한하는 취지의 판결”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동성 법무법인 장한 대표변호사는 “기존에 대법원은 차량이 아닌 일반 동산을 양도담보로 제공한 자가 이를 임의처분한 경우에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했는데, 이번엔 자동차에 대해서도 배임죄가 안된다고 본 것”이라며 “대법원이 형사상 배임죄 성립요건인 ‘타인사무를 처리하는 지위’를 엄격히 해석하는 방식을 통해, 민사상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책임이 형사상 책임으로 쉽게 확대되는 것을 제한하는 법리 해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 그법알

「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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