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잠깐 멈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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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을 사흘 앞둔 지난 22일(현지시간) 백악관 크로스홀에 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시작하면서 전한 인사말은 성탄 찬송가 '오 베들레헴 작은 골(O Little Town of Bethlehem)' 가사 한 구절이었다.
한국어 찬송에선 '오 놀라우신 하나님 큰 선물 주시니'로 번역됐지만, 원곡자는 하나님이 아기 예수 탄생이라는 선물을 '얼마나 고요하게' 보내셨는지 힘주어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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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silently, how silently, the wondrous Gift is given[얼마나 고요하게, 얼마나 고요하게, 놀라운 선물(아기 예수)이 주어졌나(오셨나)]”
성탄절을 사흘 앞둔 지난 22일(현지시간) 백악관 크로스홀에 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시작하면서 전한 인사말은 성탄 찬송가 ‘오 베들레헴 작은 골(O Little Town of Bethlehem)’ 가사 한 구절이었다. 한국어 찬송에선 ‘오 놀라우신 하나님 큰 선물 주시니’로 번역됐지만, 원곡자는 하나님이 아기 예수 탄생이라는 선물을 ‘얼마나 고요하게’ 보내셨는지 힘주어 말하고 있었다.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전 세계 누구든 흥얼거릴 수 있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독일어 원곡 Stille Nacht)은 곡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탄생일의 고요와 평화를 노래하고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은 “성탄절에 온 세상이 고요해지고, 세상의 모든 화려함뿐 아니라 모든 소음, 우리를 갈라놓고 대립하게 만드는 모든 것, 너무 중요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 그 고요함 속에 사라진다”는 메시지로 이어졌다. ‘메리 크리스마스’ 같은 환호 대신 ‘고요’를 선택한 이유가 마음에 와닿았다. 언제 어디서든 손안의 작은 기계를 켜면 확인되는 너무 많은 환호와 너무 빠른 반응,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혐오와 비방의 말들이 한번에 음소거되는 순간을 떠올려봤다. 잠시나마 평화로웠다.
올해 하반기 내내 매달린 작업 중 하나가 포털 뉴스 댓글 속의 혐오 실태를 분석하는 일이었다. 혐오의 말들이 ‘내 편’이 아닌 ‘그들’을 향해 거침없이 쏟아졌다. 그 거친 말이 끔찍한 이태원 참사로 자식과 친구를 한순간에 잃은 사람들을 향하게 될 때도 예외는 없었다. 결국 참사에서 친구를 잃고 살아남았던 고등학생이 지난 13일 세상을 등지는 일로 이어졌다. 이제 겨우 10대인 아이는 자신의 죄가 아닌 일에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도와주고 지켜줬어야 할 아이를 몰아세운 건 모진 말들이었다. 그런 말이 문제라는 기사에도 또다시 같은 혐오가 달렸다. 기획 기사를 준비하는 동안 나를 향하는 게 아님에도 그 말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아팠다. 그런 가운데 찾은 키워드는 ‘잠깐 멈춤’이었다. 누군가에 대해 말하거나 반응하기 전에 ‘그들의 이야기가 나나 내 친구의 이야기라면 어떨까’ 생각해볼 잠깐의 멈춤 말이다. 네덜란드 동물행동학자인 프란스 드 발의 책 ‘공감의 시대’를 보면 태어난 후 어미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동물로서 우리는 공감의 유전자를 타고 태어난다. 공감하지 못하고 쉽게 혐오하는 건, 공감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잊거나 무뎌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동영상을 보다가 멈춤이 발생하며 버벅거릴 때 우리는 ‘버퍼링(buffering) 걸렸다’며 불편해한다. 그런데 이 버퍼링의 사전적 의미는 충격을 완화해주는 완충장치다. IT 용어로는 동영상 파일을 구현할 때 네트워크 상태가 좋지 않아 끊어질 위험이 있을 때 일시적으로 정보를 저장해서 다음 데이터와 연결해주는 기능을 뜻한다. 우리는 멈칫하며 느려지는 현상에 더 집중해 이 단어를 썼지만, 진짜 뜻은 충돌이나 충격의 여파를 줄여서 실제 동영상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 혐오의 원천을 하루아침에 멈출 길은 없다. 하지만 내가 아닌 ‘그들’을 향한 미움을 쉽게 쏟아내기 전 잠시 멈춰 보면 어떨까. 소음을 멈추고 잠시 고요했을 때 우리는 상대를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혐오가 우리 사는 세상을 함부로 지배하지 않게 할 버퍼(buffer)가 되어줄 것이다.
조민영 온라인뉴스부 차장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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