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지금은 연금개혁의 시간이다

2022. 12. 26.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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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숙 전 국회의원


1998년 12월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의료보험통합 법안을 통과시켰다. 2000년부터 의료보험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1977년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된 이래 1988년 농어촌 지역, 그다음 해에 도시 자영업자들까지 전 국민의 94.2%가 보험 적용 대상이 됐지만, 직장·지역·공무원 등 조합별로 운영되어 재정 격차가 크고 보장성에도 차이가 있었다. 적자인 조합과 적립금이 남아도는 직장조합을 하나로 통합하면 직장인들의 부담이 늘어날 것은 분명했고, 그만큼 반발도 격렬했다. 이런 저항을 넘어 새로운 건강보험 체계가 출범했고, 실질적인 전 국민 의료보험 시대가 열렸다. 정부가 앞장서고 국회에서 여야가 협력한 결과였다.

새 정부 들어 개혁의 화두가 된 연금개혁도 의료보험 통합과 같은 길을 갈 수 있다. 이미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내년 4월까지 개혁안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15일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노동·교육·연금의 3대 개혁 과제를 제시했다. 그런데 연금개혁에 관해서는 “이번 정부 말기나 다음 정부 초기에 연금개혁 완성판이 나오도록 지금부터 시동을 걸어야 한다”며 그 시기를 2027년까지 미뤘다.

사실 윤 대통령이 제기한 3대 개혁 중 노동개혁이나 교육개혁은 입장차가 극에서 극으로 갈릴 수 있는 그야말로 논쟁적 과제이다. 이념적, 정파적으로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해 쉽게 합의점을 도출하기 어렵고 자칫 성급하게 밀어붙였다간 나라를 두 쪽 낼 수도 있는 예민한 사안이다. 그만큼 더 깊은 논의와 더 많은 숙성이 필요한 과제다.

반면 연금개혁은 어떤 의미에선 답이 이미 나온 숙제다. 이대로 가다가는 2039년에는 연금 재정이 적자가 나고 2055년이면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2020, 국회 예산정책처). 더 늦기 전에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안을 만들어 이해관계자와 국민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윤 대통령 말처럼 2027년까지 미룰 일이 아니다.

물론 20여년 전 의료보험 통합도 결코 쉽게 진행되진 않았다. 어렵사리 법이 개정됐지만 막상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지역 가입자의 복잡한 보험료 부과체계를 시한 내에 만들기 어렵다는 한계가 드러났다. 결국 시행 시기를 6개월 늦추기 위해 정부·여당은 야당에 법의 재개정을 읍소해야 했다.

그런 어려운 과정이 바로 개혁이고, 그걸 이뤄내는 것이 바로 정치다. 정부는 의제를 주도했고 여소야대의 국회는 팽팽한 정치적 대립 속에서도 입법 절차를 마무리했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시점이었음에도 여야는 이해 당사자들의 격렬한 반대라는 짐을 나눠서 졌다. 그건 심각한 의료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의료보험 통합이 필요하다는데 국민 다수의 동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연금개혁도 마찬가지다. 갈 길도 정해져 있고, 더 늦출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분명히 형성돼 있다. 그것이 개혁의 동력이다. 내년 4월까지 개혁안을 마련하겠다는 국회 연금개혁특위 일정에 맞춰 이제는 윤석열정부가 서둘러 개혁안을 만들어 국회로 보낼 차례다. 국회 특위는 민간자문위원회가 제출할 초안과 함께 정부안을 토대로 연금개혁 법안을 마련하고, 다수당인 민주당의 협력 아래 총선 전 통과를 이뤄낼 수 있다. 의료보험 통합이 그랬듯 선거를 앞둔 시점이지만 여야가 짐을 나눠서 지면 큰 고개를 넘을 수 있다.

정부는 노동개혁을 앞세우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 파업을 두고 “북핵 위협과 마찬가지”라거나 마치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듯 “노조 적폐 척결”을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과연 광범위한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까. 여야의 공감대 속에 속도를 낼 수 있는 연금개혁을 뒤로 미루고, 노동개혁을 앞세우는 것은 혹 이념적, 계층적 갈등 전선을 만들어 지지층을 결집시키겠다는 계산이 깔린 건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낳는다. 노동·교육 개혁은 시간이 걸려도 이해당사자들의 참여 속에 동의를 구하고, 고통분담을 설득해내야 한다. 그것이 진정 정치를 복원하는 길이고 연금개혁은 그 선제적 모델이 될 수 있다.

대통령 스스로 “개혁은 인기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고 반드시 해내겠다”고 말했듯, 연금개혁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숙제다. 여야 정치권만 내후년 총선 걱정에 매몰되지 않는다면 지금이야말로 더는 머뭇거릴 수 없는 연금개혁의 시간이다.

박선숙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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