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의 미래를 묻다] 반도체 패권 시대 열렸는데, 한국은 임란 앞둔 조선 꼴
반도체의 지정학
반도체 둘러싼 해양과 대륙의 충돌
이런 대륙세력과 해양세력과의 충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바로 2023년을 곧 맞이하는 이 순간에도 ‘반도체 패권 전쟁’의 형태로 재현되고 있다. 지금 전개되는 시대를 디지털 혁명(Digital Transformation) 시대라고 부른다. 그동안 인간이 수행해온 육체 및 정신 노동을 컴퓨터가 대신한다. 인간이 독점해온 노동·생산·창조의 개념과 역할이 바뀐다. 특히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정신 노동을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이라고 불리는 수학 알고리즘이 대신한다. 기계학습은 물리적인 공간과 메타버스 가상공간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통해서 이뤄진다.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인간보다 더 똑똑하고, 더 정확하고 현명하게 된다. 전기만 공급하면 되고, 잠도 없고, 쉬는 시간도 없고,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도 없다. 그 결과 기계학습 인공지능을 독점한 개인·기업 또는 국가가 세계 지배 패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
「 21세기 ‘반도체 애치슨 라인’ 형성
초격차 기술 없인 변방국가 전락
반도체특별법 원안에서 후퇴 유감
국회와 정부는 위기 의식 가져야
」
그러나 인공지능 기계학습의 학습 및 판단 과정에는 필수적으로 초대형 컴퓨터와 데이터 저장장치가 필요하다. 이를 한 곳에 집적한 시설을 ‘초거대 데이터 센터’라고 부른다. 여기에 가장 필수적인 핵심 부품이 바로 고성능 반도체이다. 인공지능의 성능이 바로 반도체의 성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경쟁력이 있는 반도체 기술 확보 없이는 세계 패권을 가질 수 없게 됐다.
1950년 1월 10일 미국이 애치슨 라인(Acheson Line)을 발표했다. 이 경계선은 미국이 소련과 중국의 영토적 야욕을 저지하며 태평양을 지키기 위한 극동 방위선이었다. 그 결과 대한민국과 대만·인도차이나 반도가 미국의 방위선에서 사실상 제외됐다. 2022년 지금 새로운 가상의 ‘반도체 애치슨 라인’이 형성되고 있다. 태평양 세력의 중심인 미국을 중심으로 반도체 동맹국들이 반도체 기술 및 산업을 대륙세력으로부터 차단하려는 가상의 방어선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 경계선이 바로 한반도 심장을 지난다. 반도체 공장이 있는 경기도 이천과 평택의 머리 위를 지나가고, 대만의 TSMC 위를 지나간다. 일본의 구마모토현 기쿠요마치 공장은 그 아래쪽에서 보호된다.
미·일·대만의 대 중국 포위 전선
이런 배경 아래 각국은 전략적 동맹을 맺고, 동시에 차별적이며 독자적인 반도체 경쟁력 강화 전략을 쓰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제조 능력을 철저히 억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반도체 제조 장비의 수출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미래에는 반도체 설계 기술도 통제하기 위해 EDA(설계자동화 소프트웨어)에 대한 수출 제한도 예상된다. 추가적으로 반도체 설계 인력에 대한 통제도 예측된다. 여기에 더해 현재 동아시아 지역에 집중된 파운드리와 메모리 생산의 지정학적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서 삼성전자와 TSMC 공장의 미국 이전과 신축을 독려하고 있다. 이를 위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총 2800억 달러(약 365조6800억 원) 규모의 반도체 산업 지원용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에 서명했다.
한편 대만은 태평양 세력과의 반도체 동맹 및 연대를 강화하고, 동시에 자국의 안전 보호를 위해 미국과 일본에 반도체 공장을 신축하고 있다. 지난 6일 TSMC는 120억 달러(15조9000억원)를 들여 미 애리조나에 건설하는 반도체 공장의 기공식을 했다. TMCS는 86억 달러(약 11조2000억원)를 투입해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요마치 공장도 착공했다. 일본도 미국 IBM과 대만의 TSMC와 연대하여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을 바탕으로 반도체 산업을 부활하기 위해서 과감하고 지속적인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금지로 중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은 상당한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중국이 반도체 경쟁력을 다시 확보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된다. 당분간은 낮은 성능의 프로세서와 메모리를 중심으로 중국 내수 수요에 의존할 것으로 본다. 자국 내 반도체 시장과 강력한 정부의 투자로 버티기 작전에 들어간 것이다. 중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에 5년간 1조 위안(약 185조원) 이상을 투입한다고 알려졌다.
치열하게 가속화하는 반도체 패권 전쟁을 맞아 한국은 전략을 더 신중하고 확실하게 추진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핵심 의존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경쟁국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차별적 기술과 제품을 확보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고성능 반도체 메모리의 초격차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 중국·일본·미국 기업보다 기술적 우위에 있으면 된다.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에는 메모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발 앞서가는 초미세 그리고 초고층 구조의 메모리를 개발해야 한다.
다음으로 파운드리 산업을 TSMC의 턱 밑까지 추격한다. 3nm(나노미터) GAA 구조가 답이 될 수 있다. 차별화한 기술·성능과 서비스, 그리고 글로벌 기업 간 연대로 시장을 확대한다. 여기에 고급 패키징( (Advanced Packaging) 기술이 무기가 된다. 고급 패키징의 소재·부품·장비 분야가 새로운 산업의 기회다.
시스템 설계할 ‘컴퓨터 건축가’ 필요
마지막으로 장기적으로 시스템 반도체 산업을 육성한다. 시스템 반도체 산업 육성에는 알고리즘과 소프트웨어·하드웨어를 통합해 시스템 전체를 설계할 수 있는 컴퓨터 건축가가 필요하다. 또한 전기 자동차 산업 생존을 결정할 전력 반도체와 차량용 반도체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이들 제품들은 우주 개척과 국방에서도 필요한 반도체들이다. 반도체 패권은 우주로 확대 중이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정부는 기초 과학기술 발전을 지원하고, 친(親) 기업 투자환경을 조성하며, 동시에 우수 반도체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 이를 위한 법률을 제정하고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정부는 지원하고 기업이 산업을 일으킨다. 이 중 기업 입장에서 가장 필요한 조건이 최우수 반도체 인재 확보다. 특히 미국·중국·대만·일본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메모리·파운드리·시스템반도체, 소재·부품·장비 분야에 각각 최소 1만 명 이상의 석·박사 전문 인재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 당장 전국 대학에 최소 10개 이상의 신규 반도체 학과와 최소 10개 이상의 신규 반도체 대학원을 설립해야 한다. 이들이 매년 1000 명씩 배출된다고 하더라도 필요한 인력 수요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다. 반도체 우수 인재의 양성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동아시아의 대륙 끝에 붙은 우리 땅은 지정학적 측면에서 반도(半島)이지만, 태평양으로 뻗어나가는 천혜의 해양기지(海洋基地)다.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땅이다. 하지만 지난 주 일명 ‘K-칩스법(반도체특별법)’ 법이 원안보다 크게 후퇴해 국회를 통과한 것을 지켜 보면서 우리의 모습에 임진왜란을 앞둔 조선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안타깝게도 국회와 정부에서는 반도체 산업의 중대성과 시급성, 그리고 역사성에 대한 의식이 없다.
◆김정호=서울대 전기공학과 학·석사를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대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삼성전자 수석연구원을 거쳐 1996년 KAIST 전기및전자공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KAIST 3차원반도체연구센터장·연구처장, 글로벌전략연구소장 겸 과학기술전략센터장,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미국 전자공학회 석학회원이다.
김정호 KAIST 전기및전자공학과 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 한 곡으로 929억 벌었다…매년 '캐럴 연금' 받는 이 가수 | 중앙일보
- 노무현 "우린 끝까지 올라오노? 대통령이라 봐주는 게 없네" | 중앙일보
- 여고생 3명 탄 킥보드, 시내버스와 충돌...알고보니 음주 무면허 | 중앙일보
- 새벽마다 잠깨는 이유 이것이었다…겨울철 건강 비결 3가지 | 중앙일보
- "남친 아파트 옷장에 죽은사람"…6일째 실종된 택시기사 나왔다 | 중앙일보
- [단독] '중국 비밀경찰서' 논란 중식당, 국회 코앞서 사무실 운영 | 중앙일보
- 텐트 친 외국인 몰렸다…관광지 아닌데 매출 1200% 뛴 백화점 | 중앙일보
- 마지막 희생자는 7살이었다…31명 숨진 말레이 캠핑장 산사태 | 중앙일보
- 책 보지 말라던 성철 스님도, 이 책은 꼭 읽어보라고 했다 | 중앙일보
- 조선때부터 먹었다는 '이 국밥'…경기도 최고 겨울 소울푸드는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