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K팝의 이상한 정산
마이너스 417만2461원.
걸그룹 멤버는 아니지만, ‘이달의 소녀’ 소속사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의 정산 공식을 내게 적용해 본 결과다. 지난해 기준, 중앙일보에서 받을 돈은 없고 오히려 회사에 빚을 지게 된다. 전체 매출액의 30%를 받지만 제작비의 50%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원 수대로 가져갈 몫을 정리하면 모두 공평하게 빚을 지게 된다. 이 이상한 계약대로 할 경우 어지간한 매출을 올리는 기업에선 집으로 돈을 가져가는 직원이 나오긴 힘들다.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는 이런 조건의 계약서를 10대 후반의 멤버 12명에게 사인하게 했다. 2018년 완전체로 데뷔한 이달의 소녀는 그동안 단체 음반 4개, 개인 음반 12개 등을 내면서 끊임없이 활동해왔다. 이제서야 불만이 터져 나온 게 신기할 정도다. 문제를 제기하고 탈퇴한 멤버 츄(김지우)가 그나마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대중적 인기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나머지 11명에겐 어떤 겨울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당장 다음 달로 예정됐던 컴백 계획은 무기한 연기됐다. 활동이 중단되면 연쇄적으로 매출이 줄고 이들의 정산 통장이 플러스로 돌아서는 날도 점점 멀어져 간다는 의미다.
K팝 산업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바로 이런 불투명한 시스템이다. 혹자는 데뷔 이후 몇 년간 ‘열정페이’를 견디는 것을 근성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맑은 음악과 완벽한 군무, 아름다운 뮤직비디오를 보다가도 마음이 불편해질 때가 생긴다. 일부 기획사의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음악 이면에 누군가의 고통이 있을 수도 있다는 잠재적 불안이 존재한다.
18년차 베테랑 방송인이자 가수인 이승기와 전 소속사의 분쟁에서도 주먹구구식 정산 시스템의 민낯을 볼 수 있다. 자신이 일할 때 어떤 대가를 받는지, 비용이 왜 발생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구조다. 그와 갈등을 빚은 전 소속사 후크엔터테인먼트는 2002년 설립 이래 꾸준히 영업이익을 내 온 대표적인 매니지먼트사다. 지난해 말엔 코스닥 상장사인 초록뱀미디어가 거액(440억원)을 투자해 100% 자회사로 편입되기도 했다. 이 정도 규모의 기업에서조차 기초적인 투명성을 기대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고의이건 미숙함이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문제다.
전영선 K엔터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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