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재일조선인들의 삶
[박진우 기자]
▲ 이방의 물고기 재일조선인들이 삶을 표현한 이방의 물고기 홍보 전단 |
ⓒ 노뜰 |
국가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거주하는 곳에서도 주체화되지 못하는 경계인(境界人, diaspora)인 재일제주인을 포함해 재일조선인(Korea)들의 아픔을 온몸으로 풀어낸 연극이 추운 겨울날 눈 덮인 강원도의 작은 공연장에 올랐다.
강원도 원주에서 활동하는 극단 노뜰(대표 원영오)의 신작 '이방異邦의 물고기'가 원주(12월23~25일, 제주에서는 29~31일, 비인)의 외곽에 있는 후용공연예술센터에서 공연됐다.
이 작품은 창작을 위해 감독과 기획자는 제주와 오사카(大板)을 오가며 재일조선인(Korea) 1세대와 2세대, 그리고 3세대들을 직접 만나서 그들의 가슴속 깊이 감춰둔 이야기들을 다뤘다.
제주도 조천읍 너븐숭이부터 오사카의 이쿠노쿠(生野區, 구, 이카이노)까지 재일조선인(Korea)들을 만났고, 300여 일의 연구와 토론을 거치면서 창작된 재일동포들의 고통을 이야기한 작품이다.
오사카 재일조선인(Korea)의 집단 거주 지역인 이쿠노구를 가로지르는 강인 '히라노 운하' 주변에서 차별과 혐오를 겪어내며 살아 온 경계인이자 일본인들에게는 이방인으로 살아온 그들이 '물고기가 되어 밤새도록 히라노(平野, ひらの) 운하(정비된 강)를 자유로이 유영한다'는 '연극적 상상력'은 무대 위에서 다양한 형태로 구현된다.
미학적인 상징과 비유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원영오 연출의 섬세한 장면화([mise en scène, 총체적 설계)와 신체훈련에 특화된 노뜰 배우들의 서사가 녹여진 움직임, 특히 오타 나오미 작가의 설치미술은 무대 공간을 다양한 시공간으로 확장 시키며, 관객들을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경계인(diaspora)의 기나긴 여정 속으로 빨아들였다.
▲ 히라노강의 유영 재일조선(한국)인들의 삶의 처철함을 표현하는 배우들 |
ⓒ 노뜰 |
"밀항으로 오사카 이카이노에 터전을 마련한 사람들이 있다.
지역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히라노 운하를 중심으로
닭장 같은 집에 모여 사는 이들은 차별과 저임금, 민족 내부의 갈등 등
한국, 일본, 그 어느 쪽에서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들이다.
그들은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재일한국인이다.
그들은 밤마다 히라노 운하를 서성이다 하루의 고통을 잊을 듯 운하에 몸을 던진다.
그들은 밤새 히라노 운하의 잉어가 되어 어두운 물속을 유영하다가
아침이 되면 다시, 이카이노의 삶을 산다."
▲ 히라노강의 유영 재일조선인들의 삶의 처철함을 온 몸으로 표현하는 배우들 |
ⓒ 노뜰 |
이은아, 현승진, 홍한별, 주동하 4인의 몸으로 ㅛ(U)자형 강바닥을 유영하는 모습은 배우들의 몸뚱아리가 무대 바닥을 처절하리만큼 뒹구는 모습과 어두운 밤으로 설치된 무대 분위기는 관객들의 숨소리도 멈추게 할 정도로 배우들과 하나로 만든다.
이 작품은 국내외-제주 공연예술을 연결하는 제주의 오순희 대표(소극장 간드락)와 공동으로 기획, 진행됐다.
제주4.3항쟁을 비롯해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 작품을 기획해 온 오순희 대표는 "국가가 무능하여 끌려 나간 재일조선인(Korea)들과 국가의 폭력으로부터 탈출한 재일제주인(Korea)들이 한반도를 떠난 이유는 달라도 이국땅에서 조국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지만 한반도의 국가는 그들을 품어 주지도, 치유해 주지도 못하는 현실을 고발하고자 기획했다"고 밝혔다.
올해부터 극단 노뜰(노동자의 정원)이 진행중인 경계인(diaspora)은 전 세계 도처에 흩어져 존재하는 한반도(Korea)인들 난민(難民)의 역사를 분석하는 여정을 따라가는 창작 공연 사업이며, 이방의 물고기를 만들 때처럼 한반도인(Korea)들을 찾아 고령의 생존자들과 2․3세대들을 통해 정착 아닌 정착의 긴 역사를 매년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이방의 물고기'를 통해 재일조선인(Korea)의 삶을 표현했다면, 23년도에는 멕시코의 선인장 농장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인들이 애니깽(용설란, Henequen)을 수확(용설란에서 뽑아낸 섬유질로 노끈과 밧줄 등 생산) 과정에서 노예처럼 강제노역의 고통스런 삶을, 24년도에는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재소고려인(Korea)의 역사를 다룰 예정이다.
원영오 연출감독은 "공화정 국가에서 국가의 본질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 경계인(diaspora)이라는 주제는 우리 사회가 일상에서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사안이지만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주제다. 그들이 난민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조국을 버릴 수 없는 아픔에 대해 국가는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민들에게 고발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원 감독은 이전에도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며 전쟁연작1 '국가', 전쟁연작2 ' 침묵', 전쟁연작3 '당신의 몸-Your Body' 등을 무대에 올렸다.
전쟁과 난민(diaspora)을 주제로한 이 작품의 무대감독은 자연에서 직접 채취한 소재를 중심으로 무대를 설치하는 오타 나오미( 太田 奈緖美) 감독이 맡았다. 호주에서 25년 활동한 오타 나오미 감독은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한다.
▲ 원영오 연출감독과 오타 나오미 미술감독 기획자와 감독들이 작품 창작을 위해 공부한 서적들을 소개하는 두 감독 |
ⓒ 박진우 |
노뜰은 1993년 창단하여 강원도 원주문막의 폐교(구.후용초등학교)를 거점으로 활동하면서도 이탈리아, 멕시코, 페루, 루마니아,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세계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인간의 보편성을 주제로 하여 독창적인 공연으로 시민들과 만나고 있다.
'이방異邦의 물고기'는 제주에서 오는 29일~31일에 제주(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 비인)에서 공연된다. 국가 폭력에서 살아남기 위해 섬을 떠난 재일제주인(Korea)들의 삶을 표현한 작품이라 4.3유가족과 제주민들에게는 또 다른 감동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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