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사면, 그 복잡한 정치 함수

2022. 12. 2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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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의 정치 읽기]
댓글 여론조작 혐의로 2년 실형이 확정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수감 전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창원교도소 앞에서 발언하는 모습. (연합뉴스
연말은 다가오는데, 연말 기분이 잘 나지 않는다. 거리에서도, 방송에서도 크리스마스 캐럴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지만 연말 기분이 나지 않는 이유는, 어려운 경제와 어지러운 정치 때문일 것이다. 정치와 경제가 이런 지경이면, 그 여파는 당연히 사회로 미치기 마련이다. 추위가 한창이던 주말에도 “이재명 구속”과 “윤석열 퇴진”을 외치는 진보와 보수의 목소리가 거리를 덮었던 것을 봐도, 정치의 사회에 대한 영향력과 파급력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현상은 여러 문제를 함축하고 있어 걱정이다. 이재명 대표를 구속하라는 외침도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모두 법치를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다.

법치적 관점에서 문제가 되는 시각과 주장이 난무하게 된 데는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정치권이 자신들의 시각에 따라 사법부의 판단을 자의적으로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듯한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난 사건에 대해서도, 정당이 나서서 사건 당사자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 사건 당사자는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다. 실제로 정치 관련 사건뿐 아니라, 일반 형사 사건의 경우도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당 혹은 국회의원은 그래서는 안 된다. 자칫하다가는 진영별로 ‘진실’이 달라지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황을 만들었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정치인 혹은 정당이 책임지는 것을 본 적은 없다. 이래서는 법치가 제대로 이뤄질 수가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면 복권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사면, 복권 문제도 구체적이고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현재 민주당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범죄 사실을 들어 김경수 전 지사와 같은 수준에서 사면 복권 문제를 거론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은 김경수 전 지사의 사면 거부를 비난하면서도 이명박 전 대통령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은 진영에 따라 주장의 초점이 다르고, 그들이 주장하는 ‘진실’도 달라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김경수 전 지사를 사면만 할 것이 아니라, 복권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김경수 전 지사는 사면을 거부하며 앞으로 5개월여 남은 잔여 형기를 마저 복역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김경수 전 지사가 사면을 거부해 5개월 후에 출소하든 아니면 지금 사면을 통해 출소하든 그의 출소는 우리나라 정치판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이다. 김경수 전 지사는 사면 혹은 만기 출소하더라도 복권되지 않는 한 5년 동안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그렇기 때문에 김경수 전 지사가 직접 선거에 출마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김경수 전 지사가 정치권에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의 출소가 현재 민주당의 역학 구도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민주당에서는 친(親)명과 비(非)명 간의 갈등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갈등이 드러난다는 사실은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이 그리 확고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만일 이 대표의 리더십이 확고하다면, 이런 식의 계파 간 다른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이유는 그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 때문이다. 그나마 갈등이 지금 정도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비명 측의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통 친노, 친문 적자가 등장할 경우 그가 직접 선거에 출마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 만일 김경수 지사가 석방되면 복권과 상관없이 비명계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경수 전 지사의 출소는 친명계의 입장에서는 긴장할 수 있는 사안이고, 비명계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사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김경수 전 지사의 등장이 비명, 친명 간의 갈등의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면 국민의힘은 오히려 김경수 전 지사의 사면 복권을 강력히 밀어붙여야 맞다. 하지만 그렇게 못하는 이유는, 새로운 구심점의 등장이 장기적으로 여당에 상당한 위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단기적으로 보자면 야권의 갈등이 심화될 수 있어 반짝하는 단기적 이익을 볼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강력한 야당의 등장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마냥 반길 만한 사안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당으로서는 이래저래 김경수 전 지사의 행보를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김경수 전 지사가 정부의 사면 시도를 거부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사면을 거부했다는 것은 김경수 전 지사를 야권의 구심점으로 더욱 부각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면 거부는 김 전 지사의 ‘정치적 근육’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친명계는 김경수 전 지사의 등장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봐야만 할까? 반드시 그렇다고 보기도 어렵다. 정치적 상징성이 큰 인물이 등장하면 이재명 대표에게 집중된 여론의 관심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권의 공격을 방어해줄 수 있는 무게감 있는 정치인이 한 명이라도 더 존재하는 것이 이재명 대표의 입장에서는 이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의 민주당 복당도 같은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강해 복당이 성사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대표가 이렇듯 박 전 원장의 복당을 성사시킨 이유는 박 전 원장은 야당의 스피커 노릇을 할 수 있고, 사법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에서는 당의 몸집을 키우는 것이 절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발표한 12월 3주 전국지표조사(NBS 조사: 12월 12일부터 14일 사흘간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 응답률은 20%,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면 복권에 반대한 응답자는 53%, 김경수 전 지사의 사면에 반대하는 응답자는 51%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상당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김경수 전 지사 모두 법적으로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여야 정당들은 법치와 ‘무관한’ 주장을 하며 자신들 관련 정치인들에 대한 여론을 ‘만들려고’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이런 주장에 동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법치는 민주주의의 근간이자 기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정치권이 법치에 어긋나는 주장을 하면 결국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정작 행동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방치할 수는 없다. 올해보다 나은 내년을 바란다면 지금이라도 우리는 이런 정치권을 냉정하고 준엄하게 꾸짖어야 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0호·신년호 (2022.12.28~2023.01.0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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