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린다는데 흥행 주춤 '영웅' 윤제균 "인간 안중근 알리고파"
안중근 의사 마지막 1년 그려
뮤지컬 춤 빼고 노래, 어머니 초점
“안중근(1879~1910)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는 건 알아도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의외로 잘 모르더군요. 그는 대한의병군참모중장, 군인이었죠. 승승장구하던 그의 부대는 회령전투 때 ‘만국공법’이란 대의명분에 의해 풀어준 일본군 포로의 밀고로 큰 패전을 당하기도 했죠. 목숨과도 같은 전우들을 잃은 일이 그가 이토를 사살하기까지 후반 일생의 큰 전환점이 됐습니다. 영화를 통해 안중근의 그런 인간적 면모를 알리고 싶었죠.”
안중근의 마지막 1년을 그린 뮤지컬 영화 ‘영웅’ 개봉(21일) 다음날 만난 윤제균(53) 감독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영웅’은 그간 ‘히말라야’, ‘공조’ 1‧2편 등 제작에 전념해온 '쌍천만 감독'인 그가 8년 만에 연출에 복귀한 작품. 2009년 초연해 최근 9번째 시즌 공연에 돌입한 동명 창작 뮤지컬 원작으로, 14년간 뮤지컬에서 안중근 역을 열연한 배우 정성화가 영화 주연도 맡았다.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후 일본 법정에서 사형판결을 받고 부르는 ‘누가 죄인인가’ 등 원작 뮤지컬 노래를 생생한 시대 고증과 함께 되살려내 음악과 연기에 대한 호평이 많다. 영화 초반부 코믹한 인물 묘사, 뮤지컬 영화 자체에 대한 낯섦 탓에 호불호가 갈리는 대목도 있지만, 멀티플렉스 3사(메가박스‧CGV‧롯데시네마) 실관람평 모두 10점 만점에 9점대를 웃돈다.
'영웅' 초반 부진 "뮤지컬 영화 선입견 작용"
하지만 초반 흥행은 나흘간 54만 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으로 저조한 편이다. 손익분기 350만까지 갈 길이 멀다. 일주일 먼저 개봉한 할리우드 3D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이 12일 만인 25일 5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흥행 기세를 선점한 탓이 크다. 뮤지컬 음악을 제대로 즐길 만한 영상‧사운드 특화 상영관을 ‘아바타: 물의 길’이 장악한 것도 ‘영웅’에겐 타격이다. 윤 감독은 “뮤지컬 영화는 지루하다는 선입견이 작용하는 것 같다”면서 “배우들 연기에 대해서는 다들 잘했다고 하시니까 감독 입장에서 감사하다. 이제 시작이니까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좋은 영화는 관객들이 손을 잡아주실 거라 믿는다. 1~2주 더 지켜보려 한다”고 했다.
그간 한국에서 뮤지컬 영화는 ‘물랑루즈’ ‘라라랜드’ 같은 할리우드 작품을 제외하곤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 흥행사 윤제균에게도 뮤지컬 영화는 도전이었다. 그는 “‘영웅’은 두 가지 목표가 명확했다”고 말했다. “첫째 원작 공연을 본 사람을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다. 둘째 세계 시장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겠다. K콘텐트가 주목받고 있는데 한국 오리지널 창작 뮤지컬로 만든 최초 영화로서 부끄러우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최종후반작업까지 모든 판단의 기준은 완성도였어요. 안중근 의사에 조금이라도 누가 되는 영화가 되면 안 되니까요.”
윤제균 "영웅보다 인간 안중근 그리려 했죠"
나문희가 조마리아 여사로 분해 형장의 아들에게 직접 수의를 지어 보내며 부르는 곡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윤 감독 스스로 ‘국제시장’은 아버지의 영화, ‘영웅’은 어머니의 영화라 표현했을 정도다. 한창 준비 중이던 SF 영화 ‘귀환’을 그만두고 '영웅'을 선택한 것도 2017년 어머니를 여읜 윤 감독이 겪은 심경 변화가 작용했다. 영화에는 뮤지컬에 없던 고향 시골집 장면을 집어넣어,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안중근이 집안 재산을 독립자금에 쏟아붓는 모습과 모자간의 유대감을 한층 부각했다.
뮤지컬 춤 걷어낸 이유? "관객에 낯설어…"
이야기와 시대 묘사의 개연성은 더욱 보강했다. 윤 감독은 “뮤지컬 대본을 시나리오화하는 데만 6개월 이상 걸렸다. 뮤지컬에선 안 나왔던 설희의 정확한 미션도 새로 만들어 넣었다”고 말했다.
원작에 있던 춤을 모두 빼고 노래로만 구성한 건 뮤지컬 영화가 낯선 한국 관객을 고려한 결과였다.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엔 안무가 어느 정도 허용되는데 한국 영화에선 관객을 극에서 튕겨내는 요인 중 하나가 될 것 같았죠. 한국형 뮤지컬 영화의 기준을 잡아보고자 했습니다.”
"상업적 목적만 갖고 만들면 흥행 안 돼"
윤제균표 영화에 대한 대중의 고정관념도 극복해야 할 숙제다. '특유의 코미디로 웃긴 뒤 신파적 요소로 울린다'는 것이다. '영웅'에 앞서 영화화를 검토했던 ‘귀환’은 SF라는 설정이 공개되자마자 네티즌 사이에 윤 감독에 대한 고정관념이 우스개처럼 퍼지며 제작을 잠정 미루기도 했다. 윤 감독은 “이제야 말하지만, ‘귀환’은 당시 네티즌 추측과 다르다. 아예 다른 행성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면서 그런 선입견에 대해 “시기질투라고 생각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제 영화를 봐준 수백만 명 관객이 계시고, 대중의 마음을 얻는 건 쉽지 않습니다. 상업적 목적만 갖고 영화를 만든다고 흥행이 되진 않지요. 욕하는 안티팬도 무관심보단 낫다고 생각해요. 그런 분들이 줄어들고, 없어질 때까지 이야기를 잘 담아낸, 진정성 있는 영화로 증명해 나가려 합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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