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심신단련] 겨울 수영, 하기 싫은 마음이 찾아왔을 때
바쁘게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어느새 40대. 무너진 몸과 마음을 부여잡고 살기 위해 운동에 나선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이영실 기자]
다섯 번째 기사다. 슬슬 요령이 피어오른다. 바쁘다는 핑계로 글쓰기가 싫어지면 글감이 떠오르지 않고 글도 잘 안 풀린다. 이 글을 쓰려고 벌써 일주일째 끙끙대고 있다. 대단한 글도 아니건만 머리가 딱딱하다 못해 완전히 멈춰버린 것 같다.
글의 주제를 몇 번이나 바꿨는지 모른다. 급기야 마감을 넘겼다. '이번엔 못 쓴다고 할까?' 나오라는 글은 안 나오고 도망갈 궁리만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한 번 주제를 바꿔 글쓰기를 시도한다. 기어이 써내고야 말리라는 다짐을 하며!
마감이 훨씬 지난 글쓰기를 포기 못하는 이유는 환경이다. 이 기사는 그룹 기사로 묶인 시리즈물이다. 네 명의 기자가 운동을 소재로 글을 쓰는데 내가 못 쓰면 이번 회차 시리즈물에 구멍이 생긴다. 도망 갈 수가 없다. 혼자였으면 진작 포기 했을 글이지만 완벽하게 마감을 지킨 동료들을 생각하며 밤을 지킨다. 환경 설정의 힘은 생각보다 세다.
하기 싫은 마음 넘으니 생긴 일
▲ 정말 수영하기 싫은 날에도, 수영장 냄새가 나면 물에 들어가고 싶어진다. |
ⓒ 이영실 |
세상 가장 먼 거리는 내 방에서 현관까지라고 했던가. 수영 시간이 다가올수록 머릿속은 바빠졌다. '오늘 내 컨디션은 괜찮은가? 몸이 으슬으슬한 것 같은데, 이런 날은 쉬어야 할 것 같다.' 한쪽에선 멀쩡한 몸을 두고 아픈 것 같다 했고, 또 한쪽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나의 선택은 언제나 수영장이었다. 강한 의지 탓은 아니다. 아이들을 수영장에 보내야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아이들이 강습을 받는 동안 옆 레인에서 자유 수영을 했다. 수영하는 '나' 이전에 수영장에 데려다 주는 '엄마 역할'에는 충실해야 했기에 선택지가 없었다.
수영장에 도착하면 본전(?) 생각이 났다. '여기까지 왔으니 샤워는 하고 갈까?' 이왕 온 김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나를 샤워장으로 데려갔다. 뜨거운 물 아래서 한참 몸을 데우고 나면 마음도 데워졌다. '이렇게 된거 수영복이라도 입어야겠다'를 거쳐, '한 바퀴만 돌고 나오자'를 지나면, 결국 '열심히 운동해서 뿌듯하다'까지! 움직이는 마음을 따라 몸도 움직였다.
▲ 겨울 수영 필수템. 목도리 모자 장갑 덕분에 겨울 수영을 지킬 수 있다. |
ⓒ 이영실 |
고비는 반복적으로 찾아왔다. 이번엔 겨울이었다. 포근한 이불을 제치고 집을 나서야 하는 겨울은 어느 때 보다 하기 싫음이 충만한 계절이었다. 특히 추운 날씨를 싫어하는 나에게 겨울 수영은 빅 챌린지였다.
'따뜻한 이불을 걷어낸다. 한기가 도는 가운데 옷을 갈아 입는다. 찬바람이 달려드는 문 밖으로 나선다. 꽁꽁 언 핸들에 손을 올린다.'
생각만으로도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응…? 그렇다! 이 생각이 나를 움츠러들게 하는 거였어!!'
수영장에 가기 싫은 나를 관찰하다 보니 나를 망설이게 하는 건 겨울 수영이 아닌 이불과 수영장 사이의 추위였음을 발견하게 됐다. 진짜 추위 속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그 장면을 상상하며, 이불을 나가기 싫다고 되뇌는 내가 보였다.
즉시 목도리, 장갑, 모자를 준비했다. 문을 열자 마자 파고 드는 바람은 목도리와 모자가, 핸들의 한기는 장갑이 막아 줄 터였다. 이 생각만으로도 겨울 수영의 괴로움이 사라졌다. 든든했다.
차를 타면 수영장까지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그대로 직진해서 수영장 물 속에 들어가면 되니까. 행동 트랙이라는 환경에 몸을 올려 놓으면 다음부터는 자동이다. 나의 행동에 걸림돌이 되는 그 무언가를 찾는 일이 어려울 뿐. 걸림돌을 제거한 후의 겨울 수영은 어느 때 보다 신나는 운동이 되었다(겨울 수영장은 한적해서 좋다!).
버티면서 알게 된 것
감정은 날씨와 같다. 맑았다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잠잠해진다. 문제는 몸이 감정을 따른다는 거다. 작심삼일의 대명사였던 나는 쉽게 감정에 휩쓸리는 사람이었다. 쉽게 시작했고, 쉽게 끝을 냈다. 나를 똑같이 따라하는 두 아이를 얻은 후 정신이 들었다. 내 아이들이 작심삼일의 대명사가 되는 건 엄마인 내게 큰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었다. 무언가 해내고 싶은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내가 원하는 걸 선언 하고 공개 기록을 이어가거나, 직접 프로젝트를 만들어 사람을 모으고 앞장섰다. 의지가 약하고 감정에 쉽게 주저 앉는 나를 믿지 않았기에 적극적으로 되는 환경으로 들어갔다.
▲ 2022년 1월 1일 아이들과 새해 계획을 세웠다. 많은 일이 현실이 되었다. |
ⓒ 이영실 |
그간 나는 새벽기상, 매일책읽기, 영어공부, 블로그, 글쓰기, 새벽수영 등 나를 위한 습관을 하나씩 세우고 지켜왔다. 뭐 하나 순탄했던 일은 없다. 초기의 열정은 금세 사그라 들었고 그만 둬야 할 이유는 너무 많았다. 다행히도 나는 되는 환경 안에 있었고, 때때로 버티면서 알게 됐다.
'하기 싫음은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감정이다. 감정이 드나드는 동안 나는 내 자리를 지키면 될 뿐이다. 환경은 거센 감정의 바람 속에서도 나를 단단히 붙들어 주는 닻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새해에도 하기 싫은 마음은 계속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처럼 내 자리를 지키고 있겠지. 어느 때 보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신년이지만, 어느 때보다 종이에 옮기는 일을 망설이고 있다. 말하면 다 이룰 것을 알기에, 속도조절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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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영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successmate) 및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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