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통·명문 갈린 MB시절로 회귀... 이주호 정책에 흔들리는 공교육
[서부원 기자]
▲ 인터뷰 하는 이주호 사회부총리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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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했는데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MB 시절'로 완벽하게 회귀할 모양이다. 며칠 전 교육부는 자율형 사립고(자사고)의 존치를 포함한 고교 체제 개편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2025학년도까지 자사고를 일반고등학교로 일괄 전환하겠다는 지난 정부의 정책을 공식적으로 폐기한 것이다. 덩달아 외국어고와 국제고까지 반색하고 있다.
지난달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임명됐을 때 어느 정도 예견된 바다. 그는 10여 년 전 이명박 정부의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 장관으로서, 사교육비 절감을 목표로 이른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당사자다. 이후 우리나라 고등학교 체제는 국제고, 외고, 특목고, 자사고, 자율형 공립고, 일반고,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등으로 세분화했다.
야심 차게 추진했지만, 성과는커녕 '게도 구럭도 모두 잃는'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애초의 목표도, 아이들의 적성과 흥미를 반영하겠다는 진로의 다양화도 모두 실패한 채 우려됐던 부작용만 남아 우리 공교육을 더욱 황폐화시켰다. 다양화는 기실 학교 간 서열화였고, 어느 고등학교에 다니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신분'이 갈렸다.
명문과 똥통으로 갈리는 야만적 사회의 도래
알다시피, 이후 고등학교는 빠르게 대학교를 닮아갔다. 'SKY, 서성한, 중경외시'라는 학벌 서열이 고스란히 고등학교에도 이식됐다. 명문 학교와 '똥통 학교'가 갈렸고, 자사고에 다니는 부유층 아이들은 특성화고를 '소년원'이라며 대놓고 비아냥거렸다. 바야흐로 고등학교 시절조차 학교의 이름이 곧 '신분증' 역할을 하는 야만적인 사회가 도래했다.
다양화라는 미명 아래에 서열화의 빗장이 풀리자, 같은 종류의 학교 내에서조차 등수가 매겨지기 시작했다. 자사고 내에서도 엄연히 서열이 존재하고, 진학을 희망하는 중3 아이들은 대개 학교별 순위도 잘 알고 있다. 전국 단위에서 신입생을 선발하고 서울과 인접한 거리에 자리한 학교일수록 상위 서열에 든다.
도토리 키 재기일지언정 같은 지역의 일반고 안에서도 서열이 정해졌다. 학교마다 명문대 진학 실적에 목매달고 합격을 경축하는 현수막을 앞다퉈 내거는 건 한두 계단이라도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한 몸부림이다. 대개 학부모들의 치맛바람과 입소문을 통해 순위가 매겨지는데, 그들의 목소리는 지역 사회의 여론이라고 눙쳐진다.
내신 성적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입 수시 전형이 자리를 잡으면서, 특히 지역의 자사고는 최근 빠르게 일반고로 전환되는 추세였다. 내신 성적에서 불리한 까닭이다. 학생부교과전형은 물론, 비교과 영역을 반영한다는 학생부종합전형에서도 사실상 내신 성적이 당락을 결정한다. 현재 광주광역시와 경상남도, 충청북도에는 자사고가 단 한 곳도 없다.
이번 교육부의 발표로 정원 미달을 우려하던 자사고는 옛 영화를 다시 찾아올 기세다. 존치 결정에다 다른 선물까지 한꺼번에 받아 든 형국이다. 2025년 고교학점제의 전면 시행을 앞두고 교육부는 고등학교 내신을 절대평가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내신 성적을 절대평가로 산출하게 되면 자사고가 일반고에 견줘 불리할 게 전혀 없다.
더욱이 이과생의 '문과 침공'이 나날이 심각해지는 문·이과 통합 수능 체제도 자사고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현재 자사고 대부분이 이과 중심 교육과정으로 운영되고 있어, 심지어 수능에서조차 재수생과 겨뤄도 해볼 만하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있는 상황이다. 하물며 일반고는 수학에 관한 한 결코 자사고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새삼스러울 것 하나 없지만 씁쓸한 통계가 있다. 지역별로 전국 단위로 치러지는 수능 모의평가 점수를 비교해보면, 서울과 경기도, 광역시가 대체로 높고, 소도시와 농어촌 지역이 낮다는 것. 그런데,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게 있다. 농어촌 지역에 있는 자사고의 성적을 제외하고 보면, 둘 사이의 격차가 극단적이라고 할 만큼 크다는 점이다.
수시든 정시든 일반고가 자사고와의 대학입시 경쟁에서 더는 이기기 힘들게 됐다. 이쯤 되니 이번 고교 체제 개편안은 자사고의 부활을 염원하는 교육부의 '종합 선물 세트'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 놓고선 일반고의 수준을 높이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이 장관의 발언은 생뚱맞다 못해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자사고가 일반고 황폐화의 주범이라는 걸 그가 모를 리 없다.
▲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가 배부된 9일 대구 중구 경북여자고등학교에서 고3 수험생들이 자신의 수능 점수를 확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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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제 대책이랍시고 아무거나 마구 던지는 느낌이다. 지난 정부의 정시 확대 방침에 참담하다고 했다가, 수능을 폐지하자고 할 순 없다며 몸을 사렸다. 또 지난 정부가 2025년 전면 시행을 목표로 추진했던 고교학점제도 수업 개선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며 폄훼하더니, 좋은 취지의 정책이니 도입은 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한마디로, 'Anything But Moon'(문재인 정부가 하던 것 빼고는 뭐든지)이다.
일반고를 살리기 위해 IB(국제 바칼로레아)의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방안도 실효성은 고사하고 둘 사이에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IB는 국제고와 외고를 중심으로 도입된 뒤, 대구 등지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IB는 스위스의 비영리 교육재단에서 개발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교육과정으로, 학생이 주도하는 토론식 수업과 논술형 평가 방식으로 운영된다.
IB 도입 방안은 여전히 대학입시가 수능과 학생부종합전형 사이에서 혼란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의 즉흥성마저 느껴진다. 교육격차를 해소하겠다며 뜬금없이 'AI(인공지능) 교사'를 들고나오는가 하면, 'AI 평가'로 수능을 대체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등 당최 방향을 종잡을 수조차 없다. 그의 발상을 럭비공에 비유하는 이가 한둘 아니다.
하나 분명한 건, 경쟁만이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고 서열화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확고하다는 점이다. 자사고와 일반고의 경쟁, 수능과 IB의 경쟁, 심지어 교사와 'AI 교사'의 경쟁에 이르기까지, 학교, 제도, 사람 등 모든 분야에서 경쟁만이 교육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며 부르대고 있다. MB 시절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의 '시즌 2'가 본격 시작된 셈이다.
자사고 존치 소식을 접한 아이들의 표정은 의외로 평온했다. 자사고를 없애든 그대로 두든 지옥 같은 경쟁이 사라질 리 없다는 냉소다. 이미 경쟁의식이 마치 본성인 양 내면화된 상태에서 자사고 존치 여부는 그들에겐 관심 밖이다. 무임승차를 조장한다며 모둠활동조차 마뜩잖게 여기는 마당이다. MB 시절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의 후유증이라면 과연 억측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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