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예배서 이태원 유족 눈물 "폴란드서 눈사람 만들자 했잖아"
“올해는 이렇게 눈이 많이 쌓인 화이트 크리스마스야. 우리 지금쯤이면 폴란드에서 눈사람 만들고 있어야 하잖아…”
이태원 참사 유족 성탄절 연합 성찬례(대한성공회 나눔의집 협의회 등 주최)가 열린 25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광장. 참사 희생자 고 진세은(사망 당시 20세)씨의 언니가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이 세상은 넓고 아름다운 것들이 참 많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순식간에 무너져버릴 줄 몰랐어.” 헌법 제34조 제6항(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등을 언급하며 “국가는 재해를 예방했냐”고 반문하던 진씨는 동생에게 “어제 꿈에 나와줘서, 언니한테 재잘재잘 수다 떨어줘서 고마워”라며 끝내 울먹였다.
이날 영하 6도의 추위에도 100여명의 시민들은 이태원 참사 유족들과 함께 성탄절 예배를 드리기 위해 광장에 모여들었다. 흰 사제복을 입은 10명의 대한성공회 신부들이 종을 울리자 시민들이 침묵 속에 고개를 숙였다. “강민지 님, 김단이 님, 김도은 님, 김동규 님….” 시민들은 실명이 공개된 희생자 79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평안히 쉬게 하시며, 영원한 빛으로 비춰주소서.” 기도문이 암송되는 사이, 광장에 설치된 시민분향소에선 한 중년 남성이 영정들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날 민김종훈(자캐오) 용산 나눔의집 사제는 “이태원 한 골목에서 국가와 사회의 역할은 잠시 자취를 감췄다”며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시스템과 엉성한 프로세스들로 인해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간절히 필요했던 국가와 사회의 도움을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충격과 슬픔, 비극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결코 해결해 주지 않는다”며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한다”고 했다.
크리스마스에도 추모 시민 발걸음
이날도 분향소에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안개꽃을 분향소에 바친 A씨(64)는 “주위에서 돌아가신 분이 있어도 와 보지 않냐. 와 봐야 할 것 같아 왔다”며 “지난주에도 오래 망설이다 왔는데, 흰 국화밖에 없길래 다른 꽃을 샀다”고 말했다. 이날 처음 남편과 함께 이날 처음으로 분향소를 찾았다는 권모(62)씨는 “누구든지 겪을 수 있는 일이고, 어이없는 이유로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들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와봤다”며 “(영정을 보니) 생각보다 더 어리고 더 예쁜 아이들이었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한편 크리스마스에도 이태원 광장에서는 극우 단체의 맞불 집회가 이어졌다. 예배 도중 일부 보수단체 지지자가 고성을 지르며 난입해 일부 시민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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