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척스럽게 산 93세 우리 엄마, '눈이 부시게' 찰칵

최미향 2022. 12. 25.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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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 93세 곽곽분 어르신과 딸 65세 문지선씨 '내 생애 봄날' 프로젝트

[최미향 기자]

 
 왼쪽부터 손자 문수협, 할머니 곽곽분(93세), 딸 문지선(65세) .
ⓒ 문수협
 
"저희 할머니께서는 14살에 지금은 무인도가 된 충남 보령 갈산도로 시집오셨습니다. 8남매의 어머니로 한 사람의 아내로 80여 년간을 오직 남편과 자식만을 위한 삶을 살고 계셨지요. 그러다 몇 년 전 할아버지께서는 먼저 하늘나라로 가시고 지금은 넷째 딸과 함께 안면도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세찬 바다에서 조개를 캐고 굴을 따서 8남매를 키우셨던 저희 할머니셨지요. 허리 한 번 올곧게 펴는 날 없이 말에요. 힘든 와중에서도 혹여나 어느 자식 하나라도 다칠세라 아플세라 걱정을 비워내지 못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런 할머니에게 눈부신 날을 선물해주고 싶었어요. 사시면서 아팠던 모든 날들 있었다면 다 잊으시고 오늘만이라도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습니다. 기분 좋은 오늘의 기운을 가슴 깊이 담아두시면서 아프신 곳 없이 남은 시간 즐겁고 행복한 시간되시길 빌어요. 할머니 사랑합니다."

93세 곽곽분 어르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손자 문수협씨의 말에 습기가 가득 묻어 있었다.
 
 할머니 곽곽분(93세), 딸 문지선(65세) .
ⓒ 문수협
 
지난 18일 뻔한 장수 사진 대신 생애 봄날을 찾기 위한 '내생애봄날 눈이부시게' 팀 사진 봉사자들은 그날의 주인공 93세 곽곽분 어르신의 발목이 눈에 갇힌 줄도 모르고 이른 아침부터 카페에 대기 중이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였던 주말, 바람을 맞으며 표정 하나 없으신 93세 노모 곽곽분 어르신과 농촌으로 가가호호 다니며 두부 판매를 하고 계시는 따님 65세 문지선씨가 손을 꼭 잡은 채 카페 문을 밀고 들어왔다.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내신 어르신 얼굴에는 어떤 바람에도 흔들릴 것 같지 않은 초월함이 묻어나 있었다. 자신 키보다 몇 배 높이의 허들을 다 넘은 초연한 모습의 어르신을 보는데 갑자기 가슴에서 물소리가 났다.

'꼭, 껴안아 주세요. 꼭, 행복해지세요'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는그동안 속울음을 삼키며 살아내던 따님 문지선씨의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이 드러났다. 

화장은 언제 해보셨냐고 물으니 어르신은 "시집올 때 살짝 하고는 처음"이라고 했고 65세 따님 문씨는 "자주 하지 않는데 이렇게 진하게 하는 것은 아마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직접 두부를 만들어 가가호호 방문판매를 했던 문씨 역시 이제는 몸이 힘들어 공장에서 두부를 떼다 연로한 어르신들이 있는 농촌으로 두부 주문배달을 하고 있다.

"여전히 고운 우리 엄마"  
 “우리 엄마도 화장하니 너무 곱네요”라고 문지선씨가 말했다.
ⓒ 문수협
 
"우리 엄마도 화장하니 너무 곱네요. 2남 6녀를 낳아 키우며 억척스럽게 사는 엄마를 보며 저는 그냥 엄마라고만 생각했는데 엄마도 여자였다는 걸 속눈썹 붙이는 모습 보고 알았네요. 왜 여태 알지 못했는지...오늘 엄마의 모습이 너무 고와서 정말 기분 좋네요."
문씨는 "엄마와의 마지막 모습을 평생 간직하고 싶어 이번 사진 촬영을 하게 됐다"면서 "엄마와 함께 평생 남을 추억을 만들려고 일주일간 다이어트를 했다"고 웃어 보였다.
 
▲ 모녀를 위해 연주하는 플룻리스트 정광수씨와 강보화씨 .
ⓒ 문수협
 
멀리서 두 분 사람을 위한 '인연'이라는 연주가 흘러나왔다. 문씨가 노모를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스태프들도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며 눈물을 훔쳤다.

노래가 멈췄고 그녀가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곡을 신청했다. 충남 서산시 석남동 대청말길 74 하얀커피꽃 카페에는 그렇게 음악이 흘렀고, 눈물이 흘렀고, 커피향 내음이 스멀스멀 그리움을 동반하고 흘러내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의 죽음을 차마 알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안건 조금 후였다. 혹여 93세의 노모가 충격받을까 멀리 외국에 치료받으러 갔다고 둘러댔다는 가족들. 차마 떠났다는 말하지 못한 가족들의 속내가 어떨지 감히 짐작해 볼 수도 없다.

곽곽분 어르신의 손자이기도 하지만 눈부시게 팀에서 사진 봉사를 전담하고 있는 문수협씨는 "작은아버지의 죽음을 할머니에게 알리지 못해 고모님이 더 많은 눈물을 쏟고 계신지도 모르겠다"면서 "연세가 많으셔서 혹시라도 잘못되실까 봐 본의 아니게 숨기고 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촬영을 도와준 스텝
ⓒ 문수협
 
'내생애봄날 눈이부시게' 팀도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느낀 점을 공유했다.

김은혜 대표는 "내생애봄날 4회와 내생애봄날 눈이부시게 3회로 벌써 7번째 재능기부 촬영을 했다. 앞으로도 또 하나의 가족으로서 서로에게 너무 따뜻한 존재가 되어 행복의 전도사 역할에 충실할 겁니다. 또 하나의 가족. 사랑한다"고 말했다.

김년옥 더큼 대표는 "친정엄마 생각에 촬영 내내 몇 번을 울컥했는지 모른다. 살갑지 못하고 무뚝뚝한 막내딸인 내게 오늘 촬영은  다른 날보다 더 많은 깨달음은 얻은 소중한 시간"이라며 "조금 생뚱맞더라도 용기 내서 친정엄마 손 한 번 꼭 잡아드려 보려 한다"며 미소 지었다. 

강보화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직도 한컷 한컷 멜로디와 함께 전해졌던 하루였다. 좋은 프로젝트로 깊은 여운을 남기고, 삶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고 비보이 박훈 영상감독은 "매회 촬영이 감동적인 순간의 연속"이라고 전했다.

한선미 리안헤어 원장은 "행복·감사·사랑 이 모든 단어를 합친다면 '봉사'가 아닐까한다"고 장소협찬을 한 유경옥 대표는 "코로나와 함께 오픈한 이후 카페 하얀커피꽃 사상 가장 화사한 날이었다"고 감상을 밝혔다. 

또 이경하 응급구조사는 "오늘 어머님과 따님 두 분께 혈압과 당뇨 체크를 해드리면서 보이지는 않지만 두 분의 체온을 통해 많은 정을 느꼈다"고 했으며, 이밖에도 의상·소품 협찬·코디네이터 더라라 김혜륜 대표, 점심 제공을 해주시는 실내포장마차 한은량 사장님, 직접 촬영 주제와 콘셉트로 멋진 홍보문구를 만들어주신 이근모님, 한복협찬 수한복 서은옥 대표가 이번 프로젝트를 함께했다.       
 내생애봄날 눈이부시게 현장 사진.
ⓒ 최미향
   
 할머니 곽곽분(93세), 딸 문지선(65세) .
ⓒ 문수협
   
 할머니 곽곽분(93세).
ⓒ 문수협
   
 할머니 곽곽분(93세).
ⓒ 문수협
 
 할머니 곽곽분(93세), 딸 문지선(65세).
ⓒ 문수협
 
 할머니 곽곽분(93세), 딸 문지선(65세).
ⓒ 문수협
 
 할머니 곽곽분(93세).
ⓒ 문수협
 
 
'내생애봄날 눈이부시게' 어르신 장수사진 찍어드리기. ⓒ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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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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