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 흑두루미 분산 작전... 수문 열고 들판 보존해야
[정수근 기자]
▲ 감천 합수부 바로 상공에서 북쪽으로 날아가는 재두루미. 어디로 가는 것인가?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지난 24일 낙동강 감천 합수부는 황량했다. 겨울 찬 바람이 불어오는 강변은 매서웠고, 망원경 너머 모래톱에선 생명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마침 재두루미 11마리가 머리 위를 통과해 북쪽을 향해 날아갔지만, 기다리던 흑두루미는 전혀 소식이 없다.
3년 연속 낙동강 해평습지 찾지 않는 흑두루미
멸종위기종 흑두루미는 매년 시베리아 등지에서 번식하고 겨울 추위를 피해서 남쪽으로 날아가 일본 이즈미에서 월동한다. 일본 이즈미시로 가는 길목으로 낙동강 루트를 타고 남하하면서 이곳 낙동강 감천 합수부에 내려앉아 지친 날개를 쉬어간다. 말하자면 이곳 감천 합수부가 흑두루미들의 중간 기착지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흑두루미들은 지난 2020년부터 더 이상 이곳 감천 합수부를 찾지 않고 있다. 많을 때는 3천 마리 이상 도래하던 흑두루미가 한 마리도 찾지 않았다. 뭔가 심각한 교란이 일어난 것이다.
▲ 낙동강과 감천이 만나는 합수부에 모래톱 삼각주가 만들어졌다. 이곳에 흑두루미들이 도래했는데, 지난 2020년부터 오지 않고 있다. 올해 생명의 흔적이 없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 흑두루미 도래 현황. 2020년부터 흑두루미가 낙동강 해평습지를 찾지 않고 있다. |
ⓒ 구미시 |
과거 이곳 해평습지(숭선대교에서 해평취수장까지) 일대는 드넓은 모래톱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래서 흑두루미를 비롯해 큰기러기, 쇠기러기, 고니, 청둥오리 등 수만 마리의 겨울 철새들이 군집하며 겨울을 났다. 그런 해평습지에 심각한 물리적 변화를 일으킨 것이 4대강사업이다.
▲ 거대한 호수가 돼버린 해평습지. 그러나 4대강사업 전만 해도 이곳은 드넓은 모래톱이 발달해 겨울이면 수만 마리의 철새들이 겨울을 나던 곳이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그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이 흑두루미다. 수만 년 전부터 유전자에 박힌 그들의 집단 거주지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녀석들이 궁여지책으로 찾은 것이 해평습지 5킬로미터 상류의 감천 합수부다.
이곳 역시 4대강사업 당시 준설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천에서 들어온 모래톱이 쌓여서(재퇴적되어서) 드넓은 삼각주의 모래톱이 형성되자 흑두루미들이 지난 2013년부터 이곳을 비상 서식처로 삼아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 수는 매년 줄어들었다. 안정적인 서식처 기능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래톱의 면적이 녀석들이 안정적으로 느낄 만큼 넓지 않았다. 시야가 확 트인 개활지로서의 모래톱으로는 부족한 것일 터이다. 그래서 매년 도래하는 수가 줄어들더니 지난 2020년부터 발길을 완전히 끊었다.
▲ 흑두루미들이 4대강사업 후 해평습지에서 감천 합수부로 이동해서 도래했다. |
ⓒ 다음지도 캡쳐 |
이렇게 되면 흑두루미들에겐 향후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중간기착지나 월동지가 점점 줄어들면 한두 곳으로 몰릴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한정된 먹이를 놓고 경쟁을 해야 하고 만약 그곳에 질병이라도 돌라치면 전멸의 위험을 맞을 수도 있다. 국제적 보호종인 흑두루미가 전멸해버린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그 조짐이 올해 일본 이즈미에서 나타났다. 이즈미에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한 것이다. 흑두루미가 매일 죽었다. 수십 마리가 매일 죽어나가는 심각한 비상 상황에 빠졌다. 조류 독감의 백신이 없으니 달리 손을 쓸 수도 없는 상황. 이 위기의 상황을 육감적으로 포착한 것은 흑두루미들이었다.
▲ 일본 이즈미의 조류 인플루엔자를 피해 섬진강 하구 갈사만으로 이동한 흑두루미들 |
ⓒ 사유수 |
한국물새네트워크 이기섭 박사에 의하면, 12월 10일 ~ 11일 환경부 겨울철새 동시센서스 결과 흑두루미 6738수가 곳곳에서 분산됐다. 순천만 4437, 여차만 685, 갈사만 285, 고흥만 105, 곰소만 78, 천수만 1059, 새만금 48, 그 외 3곳 40수가 목격됐다.
물론 이곳에서도 죽어나는 개체는 생겨났다. 그러나 최소한 전멸은 막을 수 있는 방안을 흑두루미가 스스로 찾아낸 셈이다.
그러나 더 분산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낙동강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번 이들 분산 서식처들에서도 해평습지는 빠져버렸다. 해평습지를 비롯해 낙동강을 완전히 외면해버렸다. 주요 이동 경로인 낙동강 루트를 완전히 포기했을까?
그렇지 않다. 지난 2021년에도 해평습지 상공을 지나쳐가는 흑두루미를 목격했고, 올해도 낙동강 달성습지 상공을 지나쳐가는 흑두루미 무리를 목격한 사람이 있다. 지금은 흑두루미들이 낙동강 루트를 타고 남하하면서 힘들더라고 중간에 해평습지를 찾지 않고 바로 일본 이즈미까지 날아가 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조류 연구자들은 중간기착지나 서식처가 더 분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이들이 안정적으로 먹이활동도 하고, 질병으로부터도 몰살의 위험을 막을 수 있다.
▲ 2021년 가을 낙동강 해평습지 상공을 날아가는 흑두루미를 목격했다. 흑두루미들이 낙동강 루트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그런 의미에서 낙동강 달성습지와 해평습지가 과거 명성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과거 80년 후반까지 달성습지는 흑두루미 월동지였다. 그러던 것이 강 좌안에는 성서공단이 조성되고, 우안의 고령 다산 들판은 비닐하우스로 뒤덮이면서 이들의 먹이터가 사라져버렸다. 흑두루미들은 이곳을 떠났다.
그래서 지금의 감천 합수부와 해평습지를 다시 되살려야 한다. 더 넓은 모래톱을 만들어주면 된다. 이를 위해선 칠곡보 수문개방이 선행되어야 한다. 칠곡보의 수위를 더 내려야 한다.
올해 환경부는 낙동강 겨울철 모니터링을 위해서 칠곡보 수위를 지난 11월부터 1미터 내렸다. 그 영향으로 해평습지와 감천 합수부에 모래톱이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수위를 더 떨어트려야 한다. 칠곡보의 관리수위가 해발 25.5미터다. 올겨울 1미터 내려 현재 24.5미터로 유지하고 있다. 겨울철새들을 위해서는 이를 더 내려야 한다. 수문 개방 기간도 흑두루미 도래 시작점인 10월 말에 맞춰야 한다. 지금 수위를 19.1미터까지 내릴 수 있다. 이렇게 내려도 취수는 가능하다. 즉 지금보다 5미터는 더 내릴 수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만 되면 감천 합수부나 해평습지에 더 넓은 모래톱이 드러날 것이다. 안정적 개활지로 기능을 하게 되면 흑두루미가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최소한 흑두루미가 겨울을 나는 겨울 동안만이라도 수위를 떨어트려야 한다.
단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멸종위기종 흑두루미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녀석들이 해평습지 일대에서 월동까지 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안정적인 먹이터까지 있어야 한다. 해평면의 넓은 들판이 그대로 있어 줘야 한다.
최근 이곳에도 비닐하우스와 축사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이렇게 되면 안 된다. 이럴 때 행정이 나서야 한다. 구미시가 무분별한 축사의 난립을 막아야 한다.
▲ 해평습지 옆 해평면 들판에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는 비닐하우스와 축사들. 구미시가 더이상 축사 허가를 내주면 안된다. |
ⓒ 데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 2014년 10월말 감천 합수부를 찾은 흑두루미. 다시 흑두루미가 낙동강에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라도 낙동강 보 수문을 열어야 한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
▲ 4대강 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인 2010년 초 해평습지 넓은 모래톱 위에 겨울철새들이 쉬고 있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 해평습지를 찾은 겨울철새인 쇠기러이와 고니들이 꽝꽝 언 얼음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수는 4대강사업 전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다. |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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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로 지난 15년간 낙동강을 모니터링하면서 낙동강 회생의 길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과 뭇 생명들이 낙동강에서 다시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낙동강 보는 하루빨리 열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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