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빚은 만두, 옆구리 터지면 뭐 어때? [보그(Vogue) 춘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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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기자]
세 해에 거친 긴 코로나 탓인지 아니면 소스라치게 매서운 추위 때문인지 크리스마스트리도 캐럴도 보고 듣기 어렵다. 할매들은 이 강추위를 호랑이라도 보듯 무서워 밖에 한 발짝도 나가지 않으시고 따신 방에 칩거한다. 골목은 조용하고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만이 추위와 한 짝으로 짝짜꿍한다.
요리책을 보고 소고기 탕수육을 만들어 마을 할매들과 나눠 먹으려 윗집, 아랫집에 냉큼 간다. 허탕을 쳤다. 알고 보니 95세 할매집에 모여 계신다는 할배의 말씀이다. 우리 95세 꽃할매 집에 가보니 내가 찾던 두 분이 계셨다. 붉은 동양화가 바닥에 펼쳐져 있었다. 10원짜리 민화투를 진지하게 하고 계신다. 시간도 보내고 뇌 운동도 하니 일거양득이다.
▲ 95세 꽃할매, 윗집 그리고 아랫집 할매들이 10원띠기 동양화를 치신다. 체크무늬 화투판에 십원짜리 몇 닢이 놓여있다. |
ⓒ 김은아 |
"묵은지가 많아서 만두를 빚어야 하는데 언제 하노. 귀찮시러서 말이야."
윗집 서희 할매 말씀이시다.
"웬 만두요?"
"날이 이렇게 추워지면 밖에 활동을 못 하고, 가족들이 성탄절이라고 모이잖아. 그러면 가족들이 두런두런 모여앉아 만두를 빚어 먹어. 그게 또 하나의 큰 재미라. 근데 하긴 해야 하는데 귀찮시럽다."
그럴법하다. 여든이 훌쩍 넘으신 우리 할매가 만두를 빚기엔 당연히 그렇고 그러하다. 나는 만두를 빚어본 적도 없고, 친정엄마가 명절이나 성탄에 만두 빚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 나로선 크리스마스에 만두라는 것이 익숙지 않다.
이제 갓 농한기가 되어 조금 쉴만한데 또 만두를 빚을 할매를 생각하니 좀 거들어드리고 싶은 마음이 동한다.
"제가 도와드릴 테니 후딱 해치우시죠? 100개만."
"참말로? 나야 좋지!"
얼어 터진 보일러로 집주인과 옥신각신하느라 일주일 동안 내 심정이 옆구리 터진 만두에서 삐져나온 잡채만 같았다. 심란하고 생각이 깊어지는 시간이었다.
▲ 묵은 김치를 '쫑쫑' 잘게 썰어 두부, 돼지고기, 잡채를 넣어 섞어버무려 놓았다. 6-70년대엔 고기가 귀해 무우, 콩나물, 김치를 넣어 속을 만드셨다고 한다. |
ⓒ 김은아 |
▲ 처음 빚어본 만두치곤 썩 나쁘진 않다. 한두개는 익히기도 전에 이미 옆구리가 터져있다. 그래도 속이 밖으로 튀어나오지만 않는다면 괜찮지 않겠나 해본다. |
ⓒ 김은아 |
▲ 그렇다. 만두속이 그만이야 터지고 말았다. 아이고....그래도 어찌하리. 이래도 저래도 만두인 것을 말이다. 꽁꽁 속으로 앓다 어딘가 틈을 비집고 훅 터져버렸다. 인생사 다 그렇지...그래도 맛이 좋은 만두! 인생은 그래도 살만한 것이다. 이래도 저래도 누가 뭐라해도 말이다. |
ⓒ 김은아 |
그렇다. 내가 만든 못생긴 만두다.
그런데 말이다. 입속에 들어가면 못생겼는지 잘생겼는지 배가 터졌는지 옆구리가 찢어졌는지 알 수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 빚은 만두가 아무리 이뻐도 그 미가 영원하지도 않고 그래 봐야 만두는 만두다.
옆구리 찢어진 만두라도 그 못생김이 영원하지도 않다. 만두의 생은 사람의 입속에 들어감과 동시에 양분으로 부활한다. 그러니 재고 따지고 할 것도 없다. 만두는 그냥 만두일 뿐인데 말이다.
한편으론 욕심이 족제비같이 속을 몽신 집어넣거나 제대로 피를 봉하지 않아서 속이 터져 나오기도 하니 '만두는 만두야!'라고만 도매금으로 여길 수도 없다. 인생사도 그러하다. 사람은 그저 사람일 뿐 간판도 계급장도 떼고 나면 그저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만이 남을 뿐이다. 사는 기술과 처세가 좀 필요할 뿐 본질은 누구나 두 개도 아닌 하나의 인생을 살다 가는 것뿐이다. 그런데 왜 그리들 살아가는 것인지...
서희할매는 성탄절이 되면 해마다 만두를 빚으신단다. 만두가 찜통에서 익어갈 무렵 자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만두 빚기를 잘한 것 같다.
"나는 이렇게 모여서 만들고 먹는 것이 재미있어. 다른 게 있냐?"
만두 속에 있어서 각각의 만두별로 속의 비율이 균일할 수는 없다 해도 김치, 두부, 고기, 잡채가 각각 버물러진 그 맛은 크게 변함없다. 만두는 만두니까 말이다. 두부가 좀 더 많이 들어가고 고기가 좀 부족하면 어떠하리! 이 만두에서 부족한 고기는 저 만두에서 채울 수도 있는 것을 말이다.
인생사 참 만두 같다. 깊은 밤 봉창 뚫는 소리 같을지도 모르지만 정말 그렇다.
서너 시간 만두를 빚고 쪄서 먹는 시간 동안 나는 인생을 생각해본다. 얼어 터진 보일러로 옥신각신 애간장 태운 시간을 곰곰 되짚어보며 인생사 꼭 그렇게 궁시렁 으르렁 아옹해야 하는지 절로 한숨이 나온다.
"와 그래 한숨을 푹 쉬나?"
"지혜롭다는 것이 뭔가 싶어서요. 좀 더 현명하게 좀 더 세련되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여기서 부족한 것은 저기서 채워주면 되는 것인데 내 뜻대로 만 되지 않는다.
요즘 마음고생한 것을 아시는 서희할매는 이래 말씀하신다.
"할 말은 하고 사는 것이지.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있다. 마음 쓰지 마라. 별거 아니다."
그렇다. 그래도 사랑과 평화의 성탄과 연말에 내 마음은 탱탱 불어 터진 만두 옆구리를 비집고 기어 나온 만두 속만 같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면 죽고 사는 대단한 일도 아니다. 순간에는 뚜껑이 열릴 것처럼 분노할 일도 조금 지나면 사그라진다. 생김새가 각각인 만두, 결국 입속에 들어가면 그저 음식일 뿐이다. 이 만두에서 부족한 고기, 저 만두에서 채우면 되지... 그리 내 마음을 혼자 다독여본다.
심란했던 마음들도 잦아드는 성탄 전야의 밤이다. 사랑과 평화의 크리스마스! '사랑하라! 사랑하라!' 예수님의 이 말씀이 오늘따라 더 깊이 마음에 스며든다.
서희할매도, 우리 꽃할매도 아랫집 할매도 옆구리 터진 만두같이 속끓인 세월이 많으셨으리라. 그리 견디고 나니 바람이 불어도 그저 모든 인생사 일에 이제는 웃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웃음에는 단맛, 쓴맛, 짠맛, 그리고 아리고 시린 맛 등이 모두 녹아있다. 만두 속처럼 말이다.
사랑하라! 사랑하라!
깊은 밤, 고요한 밤, 봉창 뚫는 나의 밤... 사랑과 평화의 성탄 그리고 2022년 꽁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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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22년 한 해가 정말 꽁닥지에 왔습니다. 만두속터질것같은 일들이 한 두번이었겠습니까? 그래도 잘 인내하며 살아온 모든 님들께 위로와 잘했다는 칭찬을 드리고 싶습니다. 올 한해도 참 애쓰셨고 잘하셨습니다. 우리네 인생사, 결국 하나의 인생을 살고가는 것인데요. 보듬어주고 위로하며 '토닥토닥' 한 해 잘 마무리해볼까요? 터진만두라도 함께하면 마음은 날아오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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