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다이어리]팁의 나라, 얼마면 돼?
[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지난주 우편함을 열었다가 웬 크리스마스카드를 발견했다. 잘못 온 것이겠거니 했지만, 내게 온 것이 맞았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카드가 아니었다. "해피 할리데이, 해피 뉴이어"라는 의례적인 연하장 문구 아래 적혀 있는 것은 내가 거주 중인 빌딩에 근무하는 관리인과 도어맨들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순간 미국에서는 연말이면 ‘연휴 팁(holiday tip)’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다음 해 눈칫밥을 먹고 싶지 않다면 알아두라는 경고성(?) 조언이었다. 크리스마스카드처럼 꾸며진 이 카드는 사실 연말 팁 청구서였던 셈이다.
미국의 팁 문화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한국인들이 많다. 나 또한 팁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때때로 한참을 고민하곤 한다.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줘야 하는지, 준다면 얼마가 적당한지. 뉴욕에 온 초창기, 우버 기사에겐 팁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매번 그냥 하차했더니 불과 두달여 만에 내 별점은 확 깎여 있었다. 낮은 별점을 알아챈 후 팁을 주기 시작했더니 다시 별점은 높아졌다. 현지에서는 데이트 상대의 ‘후한(generous)’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우버 별점을 체크한다는 농담도 있다고 한다.
40년 만에 최고 수준이라는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팁에도 적용이 되는지, 요즘엔 금액 기준마저 높아져 은근 부담이기도 하다. 식당이나 카페에서 계산서에 표시되는 팁 옵션의 숫자가 25~30%까지 껑충 뛰었다. 어쨌든 그럭저럭 지난 1년간 ‘자본주의의 나라’ 아니, ‘팁의 나라’ 미국에 적응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연말에 받은 팁 청구서는 또다시 날 고민에 빠뜨렸다. 통성명도 하지 않은 이들까지 챙겨야 하나, 인당 얼마를 줘야 하나.
연휴 팁은 현지인들에게도 매해 논란거리인 듯하다. 매년 이 시기면 광범위한 기준 탓(예를 들자면 인당 10달러~1000달러)에 크게 도움도 되지 않는 ‘연휴 팁 가이드’ 기사가 쏟아질 정도니 말이다. 연휴 팁 자체를 ‘부담’으로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아 보인다. 뉴욕 퀸즈에 거주 중인 라틴계 미국인 대니얼씨는 "나 또한 팁을 받는 직종이지만, 연말에 한 번에 막대한 금액이 나가는 게 큰 부담"이라고 토로했다. 아시아 출신인 한 유학생은 "서로 이름을 알고 평소 날 도와준 직원은 두어명 정도인데 리스트엔 열명이나 있다"며 "주지 않으면 앞으로 대우가 나빠질까 봐 모두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감사를 표하기 위한 연휴 팁이 ‘울며 겨자 먹기’식이 된 한쪽 풍경이다.
미국인들이라고 팁 문화들을 당연히 여기는 것도 아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팁 문화에 대한 반감도 확산하는 추세다. 최근 다수의 연구에선 베이비붐 세대와 비교해 밀레니얼세대, Z세대가 팁을 덜 주는 경향이라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지난달 공개된 플레이USA의 설문조사에서도 항상 팁을 준다고 답변한 베이비붐 세대는 95%였던 반면, 밀레니얼세대는 84%, Z세대는 74%였다. 또한 전체 조사 대상의 60%는 팁 문화를 없애고 싶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팁 문화에 대한 반감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우선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직원들이 팁으로 수입을 유지해야 하는 부당한 시스템이 첫 손에 꼽힌다. 일상에서 팁이 인종차별적, 성차별적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여기에 팁이 미국 사회에 자리 잡게 된 배경에 ‘노예제’가 존재한다는 점도 최근 팁 문화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칼럼니스트 미셸 알렉산더는 "팁은 오늘도 인종차별, 성차별을 계속해서 영속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팁을 선택사항으로 간주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팁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또 미국의 문화이며 서비스에 대한 감사를 표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들은 모두 팁 찬반 글에 빠지지 않고 달리는 댓글 내용이다. 미국에서 팁 논쟁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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