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과 상생 코드 품었다…진화하는 스타벅스의 공간 마케팅 [비크닉]
안녕하세요. 브랜드 미식가 박이담 기자입니다. 여러분 ‘커피가 아니라 공간을 판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스타벅스의 철학으로 널리 알려진 말이죠. 고객들이 오랫동안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의미예요. 스타벅스는 일찍이 자리마다 콘센트가 있고, 와이파이도 잘 터져서 인기가 많았잖아요. 그 덕에 카페 시장 초창기에 수많은 경쟁사를 제치고 독보적인 위치에 오를 수 있었죠.
그런데 스타벅스가 한 단계 더 진화한 행보를 보여요. 단순히 아늑한 공간에서 한발 나아가 해당 지역의 역사와 문화까지 담은 공간을 선보이며 주변 지역까지 살리는 도전을 하고 있어요. 오늘 비크닉에선 스타벅스가 시도하고 있는 공간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1960년, 시간을 담은 공간
서울 동대문구의 경동시장은 1960년에 조성된 재래시장이에요. 시장 한가운데엔 시장의 이름을 딴 ‘경동극장’이 있었습니다. 30년 넘게 수많은 영화를 상영했어요. 하지만 90년대 복합상영관 시대가 열리면서 경쟁에 밀리기 시작합니다. 결국 94년 폐업하고 30년 가까이 방치됐습니다.
최근 스타벅스가 버려진 이곳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지난 17일 경동극장을 리모델링해 스타벅스 ‘경동 1960점’을 개점했어요. 스타벅스 지점 이름은 보통 지명이나 랜드마크가 들어가잖아요. 그런데 여기엔 숫자가 들어갔어요. 매장에 ‘1960년’이라는 시간을 담겠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매장엔 시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매장에 들어오려면 극장 복도를 지나 옛날 문을 열어야 해요. 천장과 벽도 옛 건물 그대로입니다. 고객들이 앉을 소파와 의자는 층층이 놓여있어요. 기존 상영관 좌석이 놓여있던 계단을 그대로 살렸기 때문이죠.
소파에 앉으면 내려다보이는 곳. 바로 옛 극장 스크린이 있던 무대입니다. 현재 이곳에선 바리스타들이 맛있는 음료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음료 만드는 과정이 유독 환하게 보입니다. 무대처럼 보이기 위해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사용했다고 해요. 스타벅스 관계자는 “바리스타들이 무대에 올라 커피를 만드는 것처럼 연출해 고객들이 공연처럼 즐길 수 있도록 연출했다”고 설명했어요. 실제로 커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보이더라고요.
영사실과 영사기도 부활했어요. 매장에 앉아 고개를 뒤로 돌리면 계단 맨 위에 있는 영사실이 있어요. 이곳은 현재 직원들의 공간으로 변신했어요. 영사기는 어디 있냐고요? 원래 스타벅스에선 주문한 음료가 나오면 닉네임을 불러주잖아요? 이곳에선 영사기가 그 역할을 대신 해요. 주문한 음료가 나오면, 주문번호를 영화 크레딧처럼 벽에 띄워줍니다.
지역 문화를 콘텐트로
대구광역시가 음악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거 알고 계셨나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시기 수많은 예술가가 전란을 피해 대구로 모여들었다고 해요. 이들이 어두운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 함께 모여 음악을 들으면서, 음악감상실이 여기저기서 생겨났어요.
스타벅스는 이런 대구의 역사와 문화에 주목합니다. 지난 10월 1919년에 지어진 고급 한옥을 새롭게 단장해 ‘대구종로고택점’을 개점합니다. 지붕 서까래, 대들보, 기둥, 마루 등 기존 건축 자재를 최대한 보존했어요.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매장 한쪽에 음악감상 공간을 마련했어요. 전자동 턴테이블까지 함께 전시해서 과거 고전 음악감상실 분위기를 재현했죠. 매장 곳곳에도 고품질의 스피커를 두고, 모든 고객에게 더 좋은 음악을 선사합니다. 매장 설계 단계에선 명품 오디오 브랜드인 뱅앤올룹슨과 협업까지 했다고 해요.
비슷한 시도는 옆 나라 일본에서도 이뤄져요. 천년고도인 교토에선 100년 이상 된 가옥을 개조한 매장을 선보인 적이 있어요. 이곳의 외부는 물론 내부 공간까지 과거 모습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스타벅스는 커피가 주력이잖아요? 그런데, 이곳엔 일본 전통차를 마시는 다실까지 마련했어요. 카페에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지만, 실험은 성공적이었어요. 다실에서 커피를 마시는 경험은 색다르잖아요. 스타벅스가 새롭게 해석한 전통을 즐기려는 국내 고객은 물론, 외국 관광객까지 찾아오는 명소로 변모하는 데 성공합니다.
상생의 발판을 만들다
특색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면서, 스타벅스가 주변 지역에 끼치는 선한 영향력도 커지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사람을 끌어모으는 명소가 되면서 주변 상권이 살아나게 하고요.
더 나아가 지역과 상생하기 위한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냈어요. 경동1960점에는 작은 공연 무대가 마련돼 있는데, 지역 예술가들이 정기적으로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지역 예술가들이 설 자리를 만들어주는 거예요. 그뿐만 아니라 시장 관계자에게는 바리스타로 채용되는 기회까지 주고 있어요.
이곳은 이익공유형 매장인데, 판매하는 모든 품목당 300원씩 적립해 경동시장의 지역 상생 기금으로 조성됩니다. 이런 곳을 커뮤니티 스토어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5개가 개점했어요. 스타벅스는 이런 매장을 앞으로 더욱 확대한다는 방침이에요.
이제 스타벅스의 경영철학이 바뀌어야 할 거 같아요. 문화가 담긴 공간을 팔아 지역을 살린다고요.
박이담 기자 park.id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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