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침공에 中 제로 코로나까지…'대혼돈' 에너지 시장 어디로

김형구 2022. 12. 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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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일 새벽 독일 니데라우셈에 있는 풍력 발전 터빈 근처 화력발전소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화석 연료를 대체하는 청정에너지 전환 정책을 펴 왔던 독일은 최근 직면한 단기 전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석탄과 석유 사용을 다시 늘리고 있다. AP=연합뉴스

‘국제 정세와 지정학’.

영국 일간 파이낸셜 타임스(FT)가 20일(현지시간) 올 한 해 세계 에너지 시장을 지배한 요소로 꼽은 두 가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그리고 11월 8일 치른 미국의 중간선거 등이 에너지 수급과 가격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다.

FT는 “2022년 한 해는 에너지 안보에 대한 우려와 치솟는 연료비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서 그간 기후변화에 맞서 싸워 왔던 각국의 노력이 후퇴하기도 했다”고 평했다. 유럽은 석탄 화력발전소 가동을 재개했고, “석유 의존 탈피(Transition away from oil)”를 약속하며 지난해 들어선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월스트리트가 더 많은 셰일 시추를 위한 자금 지원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상황이 됐다.

이 같은 대혼돈 속에 다가오는 2023년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어떤 흐름일까. FT가 각국 정부의 개입주의와 석유 시장 혼란 등 5가지 테마를 통해 내년 에너지 시장을 전망했다.


①에너지 시장에 대한 정부 지배력 강화


2022년 세계 에너지 시장의 특징은 ‘정부의 개입주의’로 요약된다. 미국은 치솟는 유가 안정을 위해 전략 석유 비축분을 풀었고, 러시아는 유럽에 에너지 수출을 무기화했으며, 서방의 에너지 소비국들은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로 맞섰다.
최근 통과된 EU의 탄소국경세는 역내 동맹국들 사이에서도 격렬한 경쟁을 촉발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중앙포토
FT는 “2023년에도 각국의 정부는 결정적 행위자가 될 것이다. 에너지의 미래는 정부의 손에 달려 있다”고 예상했다. 청정에너지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미 정부의 시도와 최근 새롭게 통과된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세는 동맹국들 사이에서조차 격렬한 경쟁을 촉발시킬 것이라면서다. FT는 중국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정책은 2023년 석유 수요량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봤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두고는 “내년에 와일드 카드가 될 것”이라고 했다.

②석유 시장의 혼란


FT는 선진국들의 경기 침체와 중국에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 감염세가 국제 유가를 계속 짓누를 것이라고 봤다. 우크라이나에서 평화의 시그널이 보이면 원유 선물은 급격한 매도세를 보일 것이라고 했다.
노르웨이 스타방에르 인근 해상에서 작업중인 석유-가스 회사 스타토일의 석유 시추선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FT는 그러면서도 ‘중국의 경기 둔화와 유럽의 에너지 위기에도 불구하고 2023년 하루 평균 1억200만 배럴에 달하는 원유에 대한 전 세계적 갈증이 있다’는 국제에너지기구(IEA) 최근 보고서를 인용해 “석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내년도 석유 공급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은 러시아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우크라이나에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는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추가 제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다.

③청정에너지를 향한 험난한 여정


올 한 해는 풍력 터빈, 태양전지, 배터리 등 청정 에너지 시장에 큰 돈이 쏟아졌다. 미국에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통과돼 청정에너지용 예산 3690억 달러가 투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FT는 “녹색에너지로 가는 길에 대한 도전이 어느 때보다 분명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엉터리 같은 규제 허용 때문에 청정에너지 구축에 필요한 대형 프로젝트 진행 속도가 탄소배출 목표보다 훨씬 느리게 진행될 것”이라면서다.
제니퍼 그랜홈 미국 에너지부 장관이 지난 9월 21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열린 ‘글로벌 청정 에너지 행동 포럼’ 개막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FT는 또 “업계를 괴롭혀온 공급망 정체는 더욱 악화될 것”이라며 “리튬(핵심 청정에너지 기술로 꼽히는 배터리의 원료)에서부터 터빈 블레이드(풍력 발전 회전 날개)까지 청정에너지 전환에 필요한 모든 물량의 공급은 급증하는 수요를 맞추지 못하고 뒤처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④수익에 더욱 초점 맞추는 투자자들


FT는 “투자자들에게 이타주의가 실제로 있었다면 2023년에는 냉엄한 수익률에 뒷전으로 밀릴 것”이라고 했다. 올해 각국의 ESG(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 추진은 벽에 부딪혔고, 기후변화에 대한 투자자들의 지지도 크게 약화됐다. 최근 몇 년동안 급속히 관심을 끌었던 에너지그룹의 기후변화 해결책 역시 올해 힘을 잃었다는 게 FT의 진단이다.

다만 FT는 “2023년에 에너지 가격이 낮아지면 에너지 투자자들은 ESG 등의 방식으로 조금 더 숨통을 틀 것”이라고 했다.


⑤암울한 데이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탄소 배출량이 감소한 것은 기후변화 이슈의 호재였다. 이에 따라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파리기후협정 목표가 달성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다.
FT 그래픽 ‘2021년 다시 증가한 각국의 탄소배출량’ (자료 : 로듐 그룹)
FT는 “하지만 그런 낙관론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했다. 미국 리서치ㆍ컨설팅 업체 로듐 그룹이 지난 19일 지난해 말까지 추정치를 담은 연간 탄소 배출량 변화 자료를 발표했는데 2021년 탄소 배출량이 다시 큰 폭으로 반등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FT는 “팬데믹 이후는 이전보다 더 기후 친화적인 시기가 될 거라는 희망을 꺾는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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