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치우는 일도 업무의 일부? 오지 근무의 특권 [보그(Vogue) 춘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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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기자]
시루떡에 쌀가루 뿌리듯 눈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린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해발 600고지에 위치한 깊은 산골이다. 서벽이라는 지명은 푸른 옥이 많이 나는 옥석산의 서쪽에 마을이 위치한다 해서 붙었다.
▲ 수목원에서 내려다 본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전경 해발 600고지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서벽리 마을 전경이다. |
ⓒ 김은아 |
늘 민원인의 처지에서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작은 것 하나라도 주머니 뒤집어 세탁하듯 이리저리 살피고 또 살피는 것이 일상이다. 그러다 보니 눈이 내리거나 비가 오면 우리는 정말 바빠진다.
수목원에는 관람하다 비가 내리기라도 하면 우산을 가져달라고 아우성치는 민원인들이 있기에 비가 오면 우산을 배달하는 것도 우리의 일상이다. 때로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민원인들이 좀 더 편안할 수 있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눈이 오는 날은 또 다르다. 근무하는 우리도 또 방문객들도 안전사고에 노출될 수 있으니 건물 앞, 주요 전시원의 눈을 치워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실 집에서도 눈을 치워본 일이 없어 눈 치우는 일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난생 처음 써보는 넉가래라는 넓적한 삽으로 눈을 밀면서 힘을 잔뜩 주니 항상 눈을 치우고 나면 팔과 허리가 뻐근하다. 해보지 않은 일이니 만큼 나의 눈 치우기는 상당히 어설펐다.
아침 출근 중 자신 있게 길을 걷다 보면 보기 좋게 엎어졌다. 눈 덮인 노면 위로 단단한 빙판이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우아하게 엎어진 것이 아니었다. 누가 볼까 부끄러웠다. 그럴 일도 아닌데 말이다. 아픈 것은 뒷전으로 미루고 퍼뜩 자리를 털고 일어나 총총총 걸어 사무실에 도착했다.
오전 9시가 되면 우리 모두는 손바닥이 빨갛게 코팅된 면장갑을 낀 후 넉가래, 삽, 빗자루를 들고 우리의 영역으로 간다. 능수능란하게 눈을 치우는 나의 동료들은 이 겨울을 매우 능숙하게 다루는 듯하다.
▲ 각양각색으로 눈을 치우는 모습들 우리들은 빗자루, 눈삽, 넉가래를 들고 밀고, 깨고, 쓸기를 반복하며 능숙하게 눈을 치운다. |
ⓒ 김은아 |
▲ 넉가래를 이어붙여 눈치우는 동료들 짱구를 잘 굴렸다. 넉가래를 가로로 길게 이어서 밀면 넓은 면적도 금새 치울수 있다. 빙판길만 아니면 즐거운 달리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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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치우는 블로어 최첨단 눈치우는 장비를 들고 나타났다. 손에 든 넉가래가 무색하게 참으로 신기하게도 눈이 없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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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에 살포시 내려앉은 눈 황금측백과 구상나무 등 가지 사이에 쌀가루를 흩어뿌려놓은 듯하다. 꼭 쑥버무리 같다. 눈 치운 뒤에 밀려오는 허기가 그리 보이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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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면 경험하기 어려운 업무 일과 중의 하나다. 오지에서 근무하는 이의 혜택일지도 모른다. 눈이 오면 모두 뛰쳐나가 눈을 쓸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와 일을 한다. 그런 중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오지의 낭만이기도 하다. 우리는 눈도 쓸고 성탄준비도 나름 해본다.
▲ 우리들의 크리스마스트리 눈 치운 뒤 손바닥이 빨간 코팅장갑도 나무에 걸어 놓으니 그럴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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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즐기기 짬을 내어 잠시 눈사람도 만들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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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음식의 생명은 소스이고, 사람의 핵은 생각이라고 하지요? 노동에 번외 업무라고 생각하면 하고 싶지 않겠지만, 도시의 일상에서 경험해보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소소한 삶의 기쁨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어쩌면 특권인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의 발걸음을 편안하게도 하지만 그 길을 준비하는 이의 마음도 같이 평안한다면 더욱 이상적이겠지요? 역시 인생은 누리는 자의 것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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