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마리'를 떠나보냈습니다

장애라 2022. 12.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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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동물과 짧은 만남, 긴 이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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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라 기자]

▲ 마리 마리의 지난 이야기
ⓒ 장애라
 
"주말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준비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도대체 뭘 준비하라는 건지, 준비가 되긴 하는 건지, 걱정 가득한 수의사의 말을 메아리처럼 되내며 '마리'(반려견)를 안고 집으로 향한다. 떨리는 내 팔에 기댄 따뜻한 체온, 품 안에서 희미한 몸짓으로나마 바둥대기도 하는, '힘이 조금 없을 뿐' 익숙한 작은 몸은 여전히 '걱정하지 마라' 하는 것 같았다.

가쁜 숨을 내쉬다가 조금 정신이 들면 일어나 늘 하던 '만보 걷기'를 시작했다. 몇 걸음 못 가 쓰러지지만 기운이 닿는 힘껏 움직이려 했다. 안심하라는 건가? '마리야, 괜찮아?' 하는 나를 그 맑은 눈으로 한참 보더니,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극복이 안 되는 두려움 

잠을 설친 지 어언 닷새. 물잔(번민)을 계속 들고 있지는 않겠노라고 여기저기 묻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문자 날리며 스스로 마음을 다져보지만 말 못하고 힘들어하는 마리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깊은 무력감, 절망감으로 일상이 어려웠다. 별 일 없이 그저 반복되던 일상이 이렇게 간절할 줄이야. 

큰 이별을 수 차례 겪고도 이 두려움은 극복이 안 된다. 만남을 전제로 하지만 인생은 이별의 다른 말인 것을 알고도, 그 이별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우리. 헤어질 것은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마리는 안 된다'이다. 영원히 함께 할 거라는 확신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입원하고 폐에 찬 물을 빼고 몇 날을 사투하는 마리. 참다가 터뜨렸다. '마리야, 버텨줘. 지금은 안 되겠어.'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부어있던 심장의 크기가 줄어들고 폐에 물도 빠지고 눈을 동그랗게 뜨기 시작했다. 그 전날 밤엔 아픈 뒤 처음으로 잠도 푹 잔다. 먹을 걸 달라며 매달리는데 울 뻔 했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마리가 아픈 동안, 주의를 돌리려 쓸데없는 짓도 해보고 아무렇지 않은 척도 해보고 그러면서 아무것도 못하는 나를 보았다. 함께한 시간 동안, 마리는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나의 긴 이야기를 함께 한 유일한 반려 생명, 내가 어떤 모습을 해도 내 곁에 있었던 익숙한 그림자였고, 오래 잊었던 동요를 아이처럼 웃으며 노래 부르게 해주었다. 새벽에 숨 못 쉬는 마리를 안고 야간 응급실을 향해 뛰면서 나도 모르게 나오는 기도를 억눌렀다. 절박했으나 기도는 결국 나를 위한 것이라는 걸 알았으니.

이제 한 고비 넘긴 마리. 고마울 뿐이었다. 물론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른다. 이 작고 연약한 생명이 나를 위해 버텨준 시간. 이 세상의 숱한 고마움에 하나 더 보태졌다.

'마리야, 사랑해.' 얼굴을 부비는 나에게 마리는 지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가 알던 마리, 알지 못하던 마리 

핑크 빛으로 꼬물꼬물 세상에 나온 마리는 미숙아였다. 너무 작고, 잘 짖지도 않고, 외모가 푸들인지, 말티즈인지 갸우뚱하게 했던 마리는 동글동글 반짝이는 까만 눈, 까만 코, 새하얀 곱슬 털을 가진 푸들 모습으로 성장하기까지 흔치 않은 과정을 겪었다. 소심하고 겁이 많아 신발 속이나, 소파 밑, 피아노 뒤에 늘 숨어 있고 밥을 잘 안 먹어서 매번 찾아 다녀야만 했다.

움직임이 작아 조용하고 발걸음조차 사뿐사뿐한 마리는 산책을 제외하곤 하루종일 잠만 잤다. 재택 근무하는 나를 따라 방해되지 않게, 일할 때 소리내지 않고 조용히 잠자고, 일 끝나고 쉴 때 쉬라고 잠자고, 내가 잘 때는 일어날 때까지 한번도 안 깨고 잤다. 집을 방문한, 반려동물을 가까이하길 무척 꺼리는 친척, 친구들은 감탄하며 마리 같다면 얼마든지 키워보고 싶다고 했다.

마리에 대한 편견이 깨진 건, 그러니까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봤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마리의 놀라운 능력을 목격한 이후이다. 냇물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냇가에서 자고 있는 마리를 깨워 장난 삼아 물에 살짝 빠트렸다. 그 순간, 전혀 놀라지 않고 한참동안 유유히 수영하며 즐기는 마리!

반려동물 운동장에서 마리 몰래 멀리 달아나 숨었더니 잠시 두리번거리곤 쏜살같이 달려와 찾아냈다. 거의 열 배 가까이 되는 몸집의 개들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다. 본래 자기들은 평화주의자임을 설명하지 않아도 아는 듯하다. 실수하여 혼을 내면 대부분 반려견처럼 도망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혼내는 사람 품으로 달려와, '나, 마리인데?' 하는 자신감.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가장 놀라운 사실은, 저 작은 생명이 드러내지 않는 나의 속감정까지 안다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방식을 다양하게 표현하면서 나를 즐겁게 해 주거나 위로한다는 사실을, 십 수 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하면서 뒤늦게야 알게 된 것이다.

그 즈음이었다. 영국 유명지에서 반려동물이 사람들과 교감한다는 내용을 읽었다. 소통을 넘어 고차원적인 교류가 교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도 어려운 일이다. 반려동물이 얼마나 순수하게 사람 식구를 사랑하는지, 얼마나 무한 노력을 하길래 교감이 가능한지, 그 놀라운 진실을 그들과 처음으로 함께 해본 세월 경험이 말해주고 있다.

'마리야, 엄마야. 엄마 봐. 엄마가 해 줄게...' 늘 그랬다.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안심이 되는 다정한 말, '엄마'.  그러나 정작 위로를 주고 마음 가장 가까운 곳에 한결같이 있었던 존재는 내가 아닌 '마리'였다.

마리가 가파른 숨을 쉬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말했다. '마리야,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알아. 고마워. 오래오래 기억할게!'

2022년 12월, 성탄을 앞둔 어느 날, 마리는 영원히 내곁에 머물렀습니다.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이 빛나는 축복의 시간이었음을 알려주며. 나의 마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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