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살기 무서워 월세로" '빌라왕' 사태에 떠는 세입자들
[류승연 기자]
▲ 지난 23일 오후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한 것으로 알려진 인천시 미추홀구 모 아파트 창문에 구제 방안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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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살기가 무섭다"
서울시 성북구에 위치한 한 빌라에 전세로 살고 있는 신현아(가명, 31)씨는 다가오는 재계약 시기 때 아예 월세로 바꿀지 고민 중이다. 신씨는 정책자금으로 저리 대출을 받아 고금리 상황 속에서도 '전세살이'가 이득인 상황이다.
하지만 언론 보도를 통해 최근 수도권에서 벌어진 소위 '빌라왕·건축왕' 사건 피해자들을 접할 때마다 남 일 같지가 않다. 신씨는 "사회 초년생 등 피해자들이 비슷한 나이대라고 알고 있는데 (나는) 운이 좋아 피했다"며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었던 것 아니냐"며 우려를 전했다.
이처럼 빌라나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전세 세입자들의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1139채의 빌라·오피스텔을 보유하고 있다가 숨져 수백명대 피해자를 양산한 일명 '빌라왕' 사건. 다른 이의 이름을 빌려 주택 2700여 채를 보유하면서 260억원대 전세 보증금을 가로챈 '건축왕' 사건 등 최근 전세사기 사건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모인 세입자들은 "사기 피의자들이 조직적으로 달려드는데 피해자가 당해낼 재간이 없지 않냐"고 자조하면서도, 전세사기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줄일 방법을 찾고 있다.
지난 16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1월 전국에서 발생한 전세 보증 사고 금액은 1862억20만원을 기록했다. 10월(1526억2455만원)보다 22% 늘어난 수치다. 같은 기간 사고 건수도 704건에서 852건으로 늘었다.
'전세 사기' 위험 줄일 방법 있을까
최근 논란이 된 전세 사기 사건에선 신축 부동산 세입자가 타깃이 됐다. 가령 '빌라왕' 김아무개(42)씨는 실제 빌라 가격보다 전세 가격을 높게 받았다. 세입자로선 처음부터 '깡통 매물(매매가보다 전세가가 높은 부동산)'로 김씨와 계약을 맺게 된 셈이다. 신축인 만큼 세입자가 계약 당시 매물의 정확한 시세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허점을 노렸다.
그런 만큼 앞으로 신축 부동산 입주를 원하는 세입자라면 사전에 주변 부동산의 매매·전세가 등 시세를 파악해둘 필요가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이나 네이버 부동산·직방·다방 등 각종 시세 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 사이트를 참고할 수 있다. 매물이 위치한 지역의 여러 부동산을 통해 시세를 알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부동산 계약 후에는 반드시 전입신고를 하고 확정일자를 받아야 한다. 대항력을 갖추는 셈이라 임대인의 사정에 따라 집이 경매로 넘어가도 후순위로 담보를 설정한 이들에 앞서 보증금을 챙길 수 있다.
내년부턴 임차인이 보증금을 받지 못한 상태로 집이 경·공매로 넘어갔을 때, 임차인이 세금에 앞서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 지난 23일 국회가 국세징수법 개정안 등을 처리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진 세금우선변제 원칙에 따라 경·공매 낙찰금에서 세금을 뺀 나머지 금액에 한해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빌라왕 사건에서도 김씨가 종합부동산세 62억 원을 체납한 채 숨지면서 피해자들의 고통은 가중됐다.
또 이번 법 개정으로, 세입자가 집주인 동의 없이도 그의 세금 체납액을 살펴볼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진 집주인 동의 없이 세입자가 임대인의 체납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
▲ 지난 18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청에서 열린 전세사기 피해 근절을 위한 관계 기관 간담회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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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세입자라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주택금융공사 등을 통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을 가입하는 게 좋다. 전세 가격이 하락하는 등 이유로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때, 보증 기관이 임차인에게 대신 보증금을 지급하는 대위변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HUG 기준으로, 현재 수도권에선 최대 7억원, 비수도권에선 최대 5억원에 한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을 가입할 수 있다.
이번 빌라왕 사건의 피해자 상당수인 440명이 HUG 보증에 이미 가입했는데도 대위변제를 받지 못했다. 변제를 받으려면 집주인인 김씨에게 세입자가 계약 해지를 통보해야 하는데 김씨가 이미 숨진 데다, 그의 가족조차 상속을 꺼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약 해지를 통보할 대상이 없는 셈이다.
한편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의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국회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허종식 의원은 최근 공인중개사법·부동산등기법·주택임대차보호법 등을 개정한 '전세피해방지 3법'을 발의했다.
각각 공인중개사가 임대인에게 확정일자나 담보대출, 선순위 관계 등 정보제공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임대인의 연체 사실을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기재하고 정부와 시·도지사가 전세 사기 피해 방지를 위한 행정, 재정 지원을 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허종식 의원은 "깡통전세, 전세사기 등 전세피해가 다수 발생하고 있으나 정부 정책만으로는 이를 막기에 한계가 있다"며 "전세사기 예방과 피해지원 등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전세피해방지 3법'을 대표발의한 만큼 앞으로도 서민 주거안정과 주거복지 강화를 위해 힘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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