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아바타2에 맞서는 '영웅'…윤제균 도전
영화 '영웅' 개봉…'아바타2' 맞대결
데뷔작 '두사부일체'와 평행이론
차기작은 美 할리우드 K팝 영화
쌍천만 감독. 윤제균(53)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다. 하늘이 내려준다는 1000만 영화를 무려 두 편이나 만들어낸 그는 '해운대'(2009)로 1132만명, '국제시장'(2014)으로 1426만명, 도합 2558만명을 모으며 한국영화사를 새로 썼다.
차기작에 대한 부담은 컸다. 익숙한 작법을 택했다면 흥행은 얼추 보장됐건만, 윤 감독은 지름길 대신 어려운 길을 택했다. 2009년 초연된 동명의 창작 뮤지컬을 각색해 스크린에 옮긴 '영웅'이 지난 21일 개봉했다.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윤제균 감독은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 열정이 느껴지고 동기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창작자로서 어쩔 수 없는 나의 성향"이라며 눈을 반짝였다.
무려 8년 만에 내놓은 연출작. 뜻밖에 그의 선택은 뮤지컬 영화였다. 매 순간이 도전이었다. 14년간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의 숱한 평가를 감당해야 하는 탓에 손이 많이 갔다. 영화로 옮기면서 설희의 개연성을 추가하는 등 각색에도 집중했다. 대사와 넘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현장 동시녹음을 고집하느라 한파에 그 흔한 패딩 점퍼 한번 입지 못했다.
바람 효과를 위해 작동시킨 강풍기 소리 때문에 100미터 밖에서 큰 튜브를 연결하는 수고도 감수했다. 롱테이크 라이브 촬영에 완곡을 적게는 3~4번, 때론 수십번 가창하느라 배우들이 탈진하기도 했다. 배우 얼굴에 연결된 인이어, 마이크를 컴퓨터그래픽(CG) 효과로 지우는 후반작업을 거쳐서야 영화가 세상에 나왔다.
'영웅'은 안중근 의사가 의거를 준비하고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후 순국하기까지 마지막 1년을 그린다. 알려진 역사를 토대로 애국주의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는 숙제도 안았다. 영화는 더 엄격해서다. 최근에는 신파가 유독 터부시되는 분위기. 영화를 만지고 또 만지며 고민을 반복한 윤제균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묻어있는 영화 '영웅'이다.
"뮤지컬을 영화로 만들 때 두 가지 목표를 세웠어요. 첫째, 공연을 본 관객들을 실망하게 하지 말자. 둘째, 전 세계 시장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뮤지컬 영화를 만들겠다고요. 원작 공연에서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을 수정하면서 원작자인 에이콤 윤호진 대표를 진심으로 설득했어요. 윤 대표가 영화 '영웅'을 보고 전화로 격려해줘서 기뻤어요."
'아바타: 물의 길'과 대결…21년전 흥행 재현할까
윤제균 감독의 얼굴은 밝았다. 그는 개봉을 앞두고 68개 언론사와 일일이 만나 열흘간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장 테이블에 놓인 카페인 음료병과 손도 대지 않은 채 식어있는 빵이 피로를 짐작게 했다. 힘들지 않냐고 묻자 감독은 "간절하면 이뤄진다는 말을 믿는다. 한 글자에도 마음이 전달되길 바란다"고 답했다. 그는 "절실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웃었다.
윤 감독은 홍보에 열을 올렸다. 스크린 경쟁작은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 물의 길'(이하 '아바타2')이다. 외화 최고 흥행작 '아바타'의 속편 등판에 한국영화들은 동시기 개봉을 피하기 급급했지만, '영웅'은 담담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기시감이 들었다. 윤 감독의 데뷔작 '두사부일체'(2001)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과 같은 날 개봉했고, 한주 뒤에는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와 맞붙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개봉 당시 165개관에서 출발한 '두사부일체'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도 350만명을 모으며 대박을 터뜨렸다. 얄궂게도 '색즉시공'(2002) 마저 같은 길을 걸었다. 189개 스크린으로 시작한 영화는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반지의 제왕-두 개의 탑'과 동시기 개봉해 누적 관객 수 420만명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윤 감독은 "팔자 같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두려움 없이, 간절하게
시사회 이후 '영웅'을 향한 호평이 이어졌다. 특히 언론시사회 반응이 좋았다. 실관람객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다면 장기전을 통한 '쌍끌이 흥행'을 기대해 볼 만하다. 그는 "'아바타2'가 시각적 즐거움에 중점을 뒀다면, '영웅'은 시각적으로 볼 만하고 청각적 즐거움도 담은 영화"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사람 일은 몰라요. 기회는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알 수 없죠. 또 인간관계를 맺을 때 가치관이 딱 하나 있어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사람이 잘나봤자 얼마나 잘났겠어요. 저는 샐러리맨에서 영화감독이 됐지만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인생은 몰라요. 데뷔작 '두사부일체' 할 때까지만 해도 20년 뒤에 제가 쌍천만 감독이 돼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윤제균 감독은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도 약한 '강약 약약' 스타일이라고 했다. 그는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내 성격은 안 변한다고 한다. 일관성이 있다. 항상 약하다"라며 호방하게 웃었다.
"열심히 안 하는 사람은 없어요. 누가 더 운이 좋았느냐죠. 소위 잘나가든 못 나가든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어요. 1~2년 뒤 상황은 예측할 수 있어도 10년 후에는 어떤 상황에 놓일지 모르는 법이죠."
평범한 회사원, 영화감독 되다
33살 샐러리맨 윤제균은 우연한 기회에 영화감독이 됐다. 1998년 광고회사 LG애드에서 근무하다 이듬해 대출금을 갚기 위해 도전한 태창흥업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신혼여행)을 받으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후 두 번째 시나리오는 투자사와 계약을 맺었지만, 한 달이 넘도록 감독을 선정하지 못했고 결국 직접 연출까지 맡게 됐다. 그 영화가 바로 데뷔작 '두사부일체'(2001)다.
'두사부일체'로 시작해 '색즉시공'까지 승승장구하며 흥행 감독이 됐지만, '낭만자객'(2003)으로 실패의 쓴맛도 봤다. 야심차게 제작한 '7광구'(2011)는 혹평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정말 인생은 모르는 것. 한국형 재난물의 지평을 넓힌 '해운대'가 큰 흥행을 거뒀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만든 '국제시장'이 연이어 1000만 관객을 모았다.
"세월이 흘러 언젠가, 평범한 샐러리맨이 쌍천만 감독이 되는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요. 10평 반지하 방에 사는 평범한 샐러리맨이 영화감독이 되는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어요. 제목을 붙인다면 '샐러리맨, 영화감독 되다.'"
차기작은 미국 할리우드에서
1919억7575만원. 윤제균의 천만 영화 두 편이 벌어들인 매출액이다. 돈은 극장에 모이고, 다시 현장에 돌고 돌면서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수많은 관객을 극장에 불러 모은 윤 감독은 이를 통해 영화시장을 확장하고 많은 영화인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영화계 발전을 이끌면서 입지전적 인물이 된 것이다. 이는 해외에 K무비, K콘텐츠를 알리는 초석이 됐다.
윤제균에게 올해 직함이 하나 더 생겼다. CJ ENM은 지난 4월 설립한 CJ ENM 스튜디오스의 신임 대표이사로 그를 임명했다. CJ ENM이 2016년 윤 대표가 이끄는 제작사 JK필름을 인수하면서 CJ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CJ ENM은 JK필름의 지분 51%를 확보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게 좌우명이다. 감독을 하고, 제작할 때도 있고, 스튜디오 콘텐츠 회사 대표로도 있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상황만 달라질 뿐이다. 100을 기대할 때 200을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늘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윤제균 감독은 미국으로 향한다. 차기작으로 글로벌 프로젝트 'K팝: 로스트 인 아메리카'를 연출할 예정이다. CJ ENM과 '인터스텔라' 등 글로벌 대작을 성공시킨 프로듀서 린다 옵스트 등이 공동 제작에 나선다. '얼굴 천재'라 불리는 가수 겸 배우 차은우가 주연을 맡는다. 그는 "미국 작가가 시나리오를 수정·각색하고 있다. 언제부터 촬영에 들어갈지는 모르겠다. 할리우드 시스템이 어떨지 들어가 봐야 분명히 알 것 같다"고 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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