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주의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김삼웅 2022. 12. 2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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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72] 그의 많은 자료집과 저술의 성과는 바로 기록을 출발지점으로 한다

[김삼웅 기자]

 한승헌 변호사
ⓒ 정대희
 
그는 기록성이 강하다. 기록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식하고 실천하였다. 그의 많은 자료집과 저술의 성과는 바로 기록을 출발지점으로 한다. 기록과 관련한 그의 발언이다.

우리 민족은 서구인들에 비해 기록성이 약합니다. 예로부터 기록을 남기면 화를 초래했기 때문에 되도록 기록하지 않았던 거지요.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잊혀지게 되고 결국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버립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나중에 귀중한 역사의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모으고 기록한 것이지요. (주석 7)

이렇게 하여 모으고 정리한 책이 2018년 5월에 펴낸 <법치주의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삼인)>이다. 

1장 한국의 법치주의와 국가권력, 2장 압제에 대한 기억과 지식인, 3장 법을 통한 정의 실현의 문제, 4장 법조인생의 뒤안길로 나뉘어 총 40편의 논저, 포럼 주제발표 요지, 연수원 특강, 언론인터뷰, 출판기념회 답사, 기념강연, 추도사, 대학특강, 인권강좌, 축사, 재심공판 최후진술, 인권상 수상인사, 학생들에게 들려준 인생 이야기 등 형식과 방식이 다양하다. 그럼에도 전편에 흐르는 맥락은 '법치주의에 대한 오해와 염원'이다. 책의 머리말 제목이고 오늘 한국의 현실적 과제이기도 하다. 

가장 큰 문제는 법치주의의 본질 내지 지향점에 대한 오해에 있습니다. 적어도 근대적 의미의 법치주의라면, 그것은 국민에 대한 치자(治者)의 하향적 준법 명령보다는 치자도 법의 제약을 받아야 한다는 상향적 견제를 본질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위와 같은 상향성과 하향성이 뒤바뀌어 마땅히 선행되어야 할 치자 준법의 일탈은 제쳐놓고 피치자의 준법만 강요되는 전도(轉倒)현상을 드러냈습니다.

이처럼 이 나라의 법치가 정의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도(正道)를 상습적으로 벗어나는 현실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치주의인가?"라는 강한 의문과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법치주의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이 책의 제호도 그런 개탄과 맥을 같이하는 절실한 염원에서 나온 작명입니다. (주석 8)

그가 이 책을 펴낼 때는 법조생활 60년 차였다. 그럼에도 지배자들의 바뀌지 않는 '법치'를 비판한 것이다.

저는 올해로 정확히 60년 동안을 법조인으로 살아오면서 이 나라의 법치주의의 명암을 최전방에서 체험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적지 않은 발언도 하고 글도 써 왔지만, 그 밑천은 대부분 법조계의 야전군으로서 터득한 체험에서 나온 것들이었습니다. 거기에서 보고 듣고 체험한 한국의 법치주의는 상처투성이의 안쓰러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요즘 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자 청산되어야 할 '적폐'가 거기에도 있었습니다. (주석 9)

그는 서울대학교 2014년 로스쿨 입학생 강연(2월 28일) <새 시대에  합당한 법조인, 입신에서 헌신으로>에서 미래의 법조인들에게 당부한다. 지적 역량과 인성, 대접받기보다 존경을 받도록, 씻어야 할 부정적 이미지, 법치주의의 위기, 선택의 어려움과 자승(自勝)을 당부하면서 유머 한 토막으로 마무리하였다. 

끝으로 오늘의 강연을 마치면서 보너스로 이야기 하나를 덧붙이겠다. 임종을 앞둔 신부님께서 누구의 문병도 허용치 않으셨는데, 한 변호사의 간청만은 받아들여서 병상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였다. 병상에 다가간 변호사가 감지덕지하며 말했다.

"신부님, 저에게만 이처럼 특별히 문병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자 신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뭐, 감사할 것까지는 없어요. 다른 사람들이야 이다음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겠지만, 당신 같은 변호사야 지금 만나지 않으면 다시 만날 기회가 영영 없을 터이니까."

여러분은 신부님 문병을 갔다가 이다음 천당에서 만나자며 거절당하는, 그런 법조
인이 되시기 바란다. (주석 10)

주석
7> 정지환, <권두인터뷰:감사원장 한승헌>, <말>, 1908년 4월호. 
8> 한승헌, <법치주의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20쪽, 삼인, 2018.
9> 앞의 책, 21쪽.
10> 앞의 책, 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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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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