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권 지폐 뒷면에 있는 이 나무는 풀이다 [한의사와 함께 떠나는 옛그림 여행]
한의사로 일하면서 우리 조상들이 남긴 다양한 옛그림과 한의학과의 연관성을 들여다봅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해 온 문화와 생활, 건강 정보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기자말>
[윤소정 기자]
대나무는 마디가 있고, 속이 비어 있다. 이는 다른 나무들과 구분되는 특징으로, 나무들이 나이테를 늘려가며 줄기가 굵어지는 것과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이것은 애초에 대나무가 나무가 아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시 말해 대나무는 이름은 나무지만 여러해살이 풀이다.
대나무는 화본과 대나무아과(아과: 생물 분류에서 과와 속의 사이)에 속하는 상록성 식물을 총칭한다. 화본과에 속하는 곡물인 벼나 밀, 옥수수를 생각하면 나무가 아닌 풀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나무는 관다발에 있는 형성층이 분열하여 부피 생장을 하면서 나이테가 생긴다. 반면 풀은 형성층이 있지만 1년만 기능하고 발달하지 않아 나이테가 생기지 않는다. 대나무는 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약 20~50일이면 다 자란다. 하루에 1m까지 자랄 수 있으며, 대나무가 1시간에 크는 만큼 소나무의 키가 크려면 무려 30년이 걸린다고 한다.
▲ 묵죽도 이정, 비단에 수묵, 131.8x60.6cm |
ⓒ 국립중앙박물관 |
탄은 이정(1554~1626)이 그린 묵죽도이다. 이정은 세종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의 증손으로, 현손(고손자, 손자의 손자)이다. 난초를 그린 묵란, 매화를 그린 묵매에도 뛰어났으며, 시와 글씨도 잘 썼다. 임진왜란 때 팔에 부상을 입었으나 이겨내고 더욱 그림에 매진했다.
▲ 5만 원권 지폐 뒷면에 있는 탄은 이정(1554~1626)의 풍죽도. |
ⓒ 최은경 |
5만 원권 지폐 뒷면에 있는 풍죽도 역시 그의 그림이다. 다만 어몽룡의 월매도 뒤쪽의 배경처럼 흐리게 인쇄되어 있어 금방 눈에 띄진 않는다. 위의 묵죽도에서 뒤편에 보이는 흐린 대나무와 비슷한 정도이다.
▲ 죽 강세황, 18세기, 종이에 담채, 42x28.5cm, 개인 소장 |
ⓒ 공유마당(CC BY) |
푸릇한 대나무의 색을 산뜻하게 표현한 강세황(1713~1791)의 대나무 그림이다. 강세황은 만년에 묵죽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노죽(露竹)이라는 호를 즐겨 쓸 정도로 묵죽에 열정을 쏟으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대나무는 매화, 난초, 국화와 더불어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사군자의 하나이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에게 그 무엇보다 사랑받은 식물이기도 하다.
▲ 기명절지도 가리개 19세기~20세기 초, 비단에 채색, 병풍 각 폭 204.7x63cm, 화면 각 폭 138.5x53.5cm |
ⓒ 국립고궁박물관(www.gogung.go.kr) |
기명절지도 맨 아래에 두 개의 죽순이 놓여있다. 죽순은 대나무의 땅속줄기 마디에서 돋아나는 어린순으로, 식용으로 이용한다. 약재로 쓰는 대나무는 죽엽(잎), 죽여(속껍질), 천축황(진)과 죽력(즙액) 등 더욱 다양하다.
죽엽은 솜대의 잎으로, 열을 내려주는 효과가 있다. 가슴이 답답하고 갈증이 날 때, 입안과 혀가 헐 때, 소변이 찔끔거리며 양이 적고 붉을 때 좋다. 죽여는 솜대나 왕대 줄기의 겉껍질을 제거한 중간층으로, 푸른빛이 도는 하얀 속껍질이다. 죽력은 솜대의 줄기를 불에 구울 때 흘러나오는 즙액으로, 죽즙이라고도 한다.
천축황(죽황)은 조금 복잡하다. 청피죽과 화사노죽 등의 대나무에 기생하는 벌레인 죽황봉이 대나무를 물면 마디 사이에 분비액이 고인다. 이것이 고여 응결된 물질이 천축황인데, 대나무의 진(수지, 수액)이라 할 수 있다.
죽여와 천축황, 죽력은 모두 맛이 달다. 열을 내리고 가래를 삭이는 효능도 비슷하다. 천축황은 아이들이 잘 놀라고 경련이 있을 때 사용하고, 죽력은 좀 더 효과가 강력하여 중풍으로 팔 다리의 감각이 무디고 뻣뻣할 때 활용한다. 죽여는 구토를 멈추는 효과가 있다.
조선시대의 시인 고산 윤선도(1587~1671)는 시조 <오우가>에서 대나무를 벗으로 이야기했다.
나무도 아닌 거시 풀도 아닌 거시
곧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는다
뎌러코 사시(四時)에 프르니 그를 됴하 하노라.
현대사회에도 대나무는 사철 푸르른 아름다움 뿐 아니라 식용으로, 약으로 인간에게 여전히 유익한 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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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윤소정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nurilton7 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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