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과 '결혼지옥'의 최대 위기

이준목 2022. 12. 2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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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목 기자]

 MBC <결혼지옥-오은영 리포트> 오은영 박사
ⓒ MBC
 
최근 '아동 성추행 논란'으로 도마에 오른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문제의 방송은 지난 12월 19일 방송된 '고스톱(GO, STOP) 부부' 편으로, 서로 전혀 다른 성격과 자녀 양육관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부부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당시 출연자들은 이혼한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7살짜리 딸을 둔 아내, 초혼인 남편과 세 사람이 가족을 이룬 재혼 가정이었다. 방송에서 부부는 그동안 아이 문제로 자주 충돌했고 아내는 남편을 '아동학대'로 신고한 일까지 있다고 밝혀 충격을 자아냈다.

아내는 남편이 종종 감정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이 있다고 폭로했다. 아내의 의도는 남편의 처벌이 아니라, 아동학대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교육을 받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남편은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려고 훈육했을 뿐이라며 해명했다.

그런데 방송 후 남편의 행동은 생각지 못한 또다른 논란을 불러왔다. 문제는 남편이 의붓딸과 놀아주는 장면에서 껴안고 뒹굴고 간지럼을 태우는가하면, 엉덩이를 아프게 꼬집고 찌르는 등 과도한 스킨십과 장난을 치는 모습이 담긴 것이다. 아이가 "하지 마세요", "싫어요"라고 여러 번 강하게 거부 의사를 내비쳤고 아내까지 만류했음에도 남편의 행동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아내는 "너무 괴롭다. 아이의 '도와달라'는 호소가 괴롭게 들린다"고 안타까워했지만, 정작 남편은 아내에게 "왜 아이와 친해질 기회를 박탈하냐"고 항변하거나 "아이가 싫다고 해도 그게 정말 싫은 것인지 모르겠다"며 둔감한 반응을 보였다.

시청자들은 남편의 도를 넘은 행동이 아동 성추행에 해당한다며 분노했다. 영상을 지켜본 오은영과 패널들도 남편의 행동에 우려를 드러내기는 했지만, 정확한 지적을 하는 모습은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

다만 오은영은 방송에서 "아이들한테 '팬티 속은 남의 것을 만져서도 안 되고 내 것을 남에게 보여줘서도 안 된다'고 항상 이야기한다. 아이가 다섯 살이 넘으면 부모라도 아이의 생식기를 직접 만지지 말라고 한다.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의 선을 지키는 것이 아이에 대한 존중이기 때문"이라며 우회적으로 남편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한바 있다. 하지만 오은영이 방송 후반부에 남편의 과거를 언급하면서 "외롭고 가여운 분"이라고 언급한 것을 두고, 오히려 잘못된 행동을 한 출연자를 감싸고 미화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결혼지옥> 제작진과, 전문가로서 오은영의 태도에 대하여 큰 실망감을 드러냈다. 방송에 대한 징계와 폐지를 요청하는 민원만 벌써 3000건 가까이 속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거세지자 <결혼지옥> 제작진은 결국 지난 21일 입장문을 내고 공식 사과했다. 제작진은 "지난 방송을 보고 해당 부부의 딸을 걱정하셨을 모든 분에게 깊이 사과드린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이어 제작진은 "고스톱 부부'편은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은 아내와 그 상처까지 사랑하기로 결심한 남편이 만나 아내의 전혼 자녀인 딸아이와 함께 가정을 이뤄나가는 과정에서 생긴 갈등의 원인을 찾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됐다. 제작진은 해당 가정의 생활 모습을 면밀히 관찰하고 전문가 분석을 통해 '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부부의 문제점 분석에만 집중한 나머지, 시청자분들이 우려할 수 있는 장면이 방영되는 것을 세심히 살피지 못했다. "방송 후 이어진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을 접하며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해당 아동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지 못하고 많은 분께 심려를 끼친 점, 다시 한번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거듭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틀후인 지난 23일에는 오은영도 이례적으로 입장문을 발표했다. 오은영은 "저 역시 이 사안이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특히 아이의 복지나 안전 등이 굉장히 중요한 주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해당 방송분에 제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저의 의도와는 다르게 전달된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오은영은 "저는 오래전부터 체벌, 아동학대, 폭력, 성추행과 성폭력 등을 단호하게 반대해왔다. 그것들이 사람의 영혼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입히는 줄 알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며 "그 장면에 대하여 저 또한 많은 우려를 했다. 당연히 출연자에게도 '어떠한 좋은 의도라도 아이의 몸을 함부로 만지거나 아이의 의사에 반하는 문제 행동들을 하는 것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라고 강하게 지적했고, 이후 실제로 출연자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5시간이 넘는 녹화 분량을 80분에 맞춰 편집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이런 많은 내용들이 포함되지 못했다"면서 "제가 마치 아동 성추행을 방임하는 사람처럼 비춰진 것에 대해 대단히 참담한 심정"이라고 해명했다.

방송 시간은 1시간 30분 남짓이지만 실제 상담과 녹화진행시간은 4~5시간에 이른다. 출연자의 입장차이나 그동안 살아온 인생사까지, 광범위한 내용이 다루어지는 상담에서 미처 방송에 제대로 담기지 못하고 편집되는 부분도 많다는 것.

오은영은 문제의 장면을 두고 "출연자 자녀의 탓이라거나 남편의 행동을 옹호한다는 설명은 아니었다"고 해명하며 "'남편이 가엾다'라고 말한 부분도 과거 어린 시절의 불행한 경험을 언급했을뿐, 현재의 문제 행동을 연결하며 과거에 있었던 남편의 불행을 연결시켜서 정당화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부모의 역할의 중요성을 다시 강하게 느끼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게 오은영의 입장이다. 오은영이 방송 내용을 두고 공식 입장문을 내고 해명한 것은 이례적으로, 그만큼 이 사안의 심각성을 짐작케한다.

사실 <결혼지옥>이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결혼지옥>은 그동안 다양한 고민부부들이 출연하면서 경제문제-육아와 산후우울증-성격차이-황혼갈등-부부관계 등 가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이슈들이 다루어졌다. 결혼 7년 차 부부의 성관계 문제를 다룬 에피소드에서는 성적 행동을 암시하는 각종 선정적인 표현들이 방송에 여과 없이 등장하기도 했다. 또한 외도, 폭언, 성차별, 부부간 성추행 등이 우려되는 장면들도 종종 등장했다.

실제 부부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해결책을 모색하자는 취지는 좋았지만, 갈수록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갈등 그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지며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불편하다는 반응이 커졌다.

이번 사건에 있어서 가장 큰 책임은 <결혼지옥> 제작진에게 있지만, 한편으로는 '오은영표 솔루션' 프로그램의 한계와 부작용을 보여줬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은영은 정신의학자로서의 전문성을 살려서 방송가에 '상담형 토크쇼' 열풍을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최근 여러 방송에서 비슷한 상담 프로그램에 겹치기 출연을 하면서 지나친 다작과 돌려막기식 솔루션 패턴, 논란성 출연자의 변명이나 미화 창구로 변질된 프로그램의 성격, 오은영 본인의 전문영역을 넘어선 섣부른 조언이나 개입 등으로 오히려 역풍을 맞는 경우가 점점 잦아지고 있다. 이번 사건이 더 큰 논란이 된 것은, 그만큼 '올바른 조언자'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오은영에 대한 대중의 실망감이 컸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혼지옥>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민원이 접수되고 폐지 요구까지 받으면서 방송 이후 최대위기에 직면했다. 시청자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방송 강행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결혼지옥>과 오은영이 과연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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