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천만 감독의 흥행공식 따른 '영웅', 성공할까?

김성호 2022. 12. 2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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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421] <영웅>

[김성호 기자]

2022년은 특별한 해다. 한국에서 안티가 없다시피 해도 좋을 역사 속 두 인물이 영화로 찾아온 것이다. 하나는 한여름을 뜨겁게 달군 <한산: 용의 출현>이었고 다른 하나가 이달 개봉한 <영웅>이다. 주지하다시피 앞의 영화는 이순신의 한산대첩을 그렸고, 뒤의 작품은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다룬다.

두 작품엔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다. 첫째는 흔들리는 조국을 지탱하려는 군인의 서사란 점, 둘째는 이지적 면모가 두드러지는 남성의 이야기란 점, 셋째는 도모한 일의 성취를 이룬 빛나는 순간을 다뤘단 점, 넷째는 두 이야기 모두 상대가 이웃한 나라 일본이란 점, 마지막은 두 작품이 각각 한국 최고의 흥행감독이라 해도 좋을 김한민과 윤제균에 의해 만들어졌단 점이다.

앞의 것은 세 편으로 기획된 이순신 시리즈의 가운데 작품으로 전작과 달리 해상액션을 실제 촬영으로 찍어내는 성취를 이뤘고, 뒤의 것은 흥행하는 뮤지컬을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겼단 차이가 있지만 차이보다는 공통점이 두드러지는 두 영화라고 하겠다.
  
▲ 영웅 포스터
ⓒ CJ ENM
 
안티 없는 독립운동가, 안중근의 서사

<영웅>은 도마 안중근(정성화 분)의 이야기다. 김구, 유관순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독립운동가인 안중근은 1879년 태어나 1909년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일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이 일로 사형선고를 받아 1910년 교수형을 당한다. 그의 나이 불과 서른이었다.

일본에선 테러로, 한국에선 대한의군 참모중장 신분으로 명령을 받아 감행한 암살로 보는 하얼빈 의거는 안중근 삶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35년에 이르는 일제강점기 동안 독립운동가가 일본제국 우두머리를 처단한 역사가 이 사건 뿐이기에 한국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영화 역시 이 사건을 정점으로 놓고 전개된다.

한 차례 독립전쟁에서 실패를 겪은 안중근과 동료들이 러시아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겠다 뜻을 세운 뒤 목표달성을 위해 나아가는 과정이 영화의 얼개를 이룬다. 이토 히로부미의 곁에선 명성황후를 모셨던 사연 있는 여인 설희(김고은 분)가 신분을 감추고 정보를 흘려 거사에 도움을 준다. 마침내 역사가 그러하듯 거사는 성공하고 안중근은 체포돼 법정에 선다.
  
▲ 영웅 스틸컷
ⓒ CJ ENM
 
역사를 영화화하는 JK필름의 자세

<영웅>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안중근의 지성과 인품이 일본인 변호사를 감동시킬 만큼 출중하였고 1심 법정에서 좌중을 놀라게 할 만큼 논리가 정연하였기에 이 역시 빠뜨리려 하지 않는 것이다.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하는 모습이나 법정에서 당당히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을 나열하는 모습이 영화에 제법 인상적으로 담겼다.

또한 영화는 한국인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 하는 당대의 치우친 법을 안중근의 아내를 내세워 비판한다. 역사적으론 안중근에 감화된 일본인 변호사가 해낼 수 있는 최선의 변호를 함으로써 둘 사이에 굳은 신뢰가 생겼음에도 영화는 이를 선택적으로 배제한다. 애국심을 도취시키는 뮤지컬로써 일본을 절대악으로 상정해 한민족의 애환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영화의 오프닝시퀀스, 하얀 눈밭에서 안중근과 동료들이 결의를 다지며 손가락을 자르는 장면이다. 왼손 약지를 자르고 흰 붕대를 칭칭 감은 이들은 자작나무 사이로 매단 태극기를 보며 경례를 한다. 이때 올리는 손은 오른손이 아닌 흰 천에 피가 배어나오는 왼손이다.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리는 것이 바른 자세임에도 시각적 효과를 위해 왼손을 올리게끔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영화를 관통하는 제작자의 자세라 할 것이다.
 
▲ 영웅 스틸컷
ⓒ CJ ENM
 
뮤지컬을 그대로 영화로, 장단은?

여러모로 보아 <영웅>은 안중근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풀어내는 데 집중한다. 안중근의 이름은 잘 알지만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과정과 그 이유, 법정이며 감옥에서 보인 태도와 발언 등을 깊이 아는 이가 드물기에 영화가 승부하는 지점이 틀리지 않았다 하겠다.

한국 영화계에서 흥행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윤제균 감독은 13년째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영웅>을 영화로 옮겨왔다. 2009년 초연돼 13년을 이어온 뮤지컬이기에 큰 무리 없이 영화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안중근 역으로 뮤지컬에서도 그를 연기했던 정성화를 캐스팅한 것도 작품의 색채를 그대로 내고 싶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뚜껑을 연 영화는 절반의 성공으로 보인다. 감상을 극대화하는 뮤지컬의 장르적 특성이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데 집중하는 윤제균 감독의 연출 스타일과 제법 어울렸단 점이 성공적이라 하겠다. 다만 무대에서 펼쳐지는 뮤지컬과 달리 음악이 스크린을 넘어 전해지는 과정에서 생생한 감동을 동반하지 못 한단 점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듯 보인다.
 
▲ 영웅 스틸컷
ⓒ CJ ENM
 
윤제균의 흥행공식, 이번에도 통할까?

음악 역시 여타 성공한 뮤지컬 영화들에 비해 강렬하지 않아 아쉽다. 안중근의 이야기라면 무조건 성공한다는 안이한 접근법을 넘어서 관객에게 새로운 감동을 전하려는 도전의식을 영화 내내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단 건 치명적인 단점이라 할 만하다.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을 위해 숨죽인 독립운동가들이 분투한다는 단선적인 전개를 감독은 전혀 보완할 생각이 없었던 듯하다. 영화를 기존 뮤지컬보다 더 낫게 만드는 음악이나 영상의 차별점 역시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무얼 하러 뮤지컬 대신 영화를 본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다.

물론 예상되는 거의 모든 관객이 지지할 만한 인물을 내세워 그의 행적을 감동적으로 꾸미는 데만 집중한 선택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윤제균 감독은 이미 같은 방식으로 몇 번이나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는 흥행을 이룩했고 어쩌면 <영웅>이 그 뒤를 따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최대한 많은 세대를 아우르고 대중의 감정을 고취시키는 영화를 찍어내는 그의 스타일이 오늘의 한국에서 여전히 통할 것인지, 나는 그것이 몹시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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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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