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기적, 저는 찾은 것 같습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유미 기자]
▲ 크리스마스의 기적 |
ⓒ 픽사베이 |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없는 줄 알았다
나는 일찍이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나와 두 동생들은 작은 나무에 갖가지 장식들을 달며 들떠있었다. 반짝이는 오색전구를 화룡점정으로 얹으며 불을 켜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 문을 통해 외할머니를 마주했는데, 그녀가 엄마아빠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오시는 낯선 광경에 우리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할머니는 힘없이 눈을 꿈뻑이며 반짝이는 전구를 한참 응시하신 채 방으로 들어가셨다.
할머니는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어김없이 양손 가득 과일과 과자를 들고 "우리 강생이들"이라고 하시며 산타할머니처럼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외벌이에 애 셋을 건사하는 막내딸인 엄마가 늘 마음의 짐이었던 할머니는, 시골에서 나물을 뜯어 차가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번 돈을 오롯이 우리를 위해 쓰셨다. 우린 늘 오일장이 서는 날엔 현관문만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었다.
그런 할머니가 그때와 다른 모습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선, 우리집 가장 작은 방에서 힘없이 누워만 계셨다. 물도 제대로 못드시고, 엄마의 도움 없이는 용변도 보지 못하셨다. 어린 마음에도 그 모습은 심장을 콕콕 찔린 것처럼 아팠다. 크리스마스 전날, 나는 두 손을 그러모아 간절히 기도했다. "할머니의 병이 씻은듯이 나아 예전으로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나게 해주세요."
크리스마스 당일, 우리 삼남매는 전날 아빠가 사온 과일케이크에 초를 꽂고 할머니의 방으로 들어갔다. 초에 불을 피우자 누워계시던 할머니의 주름진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 미소에 내가 바란 기적처럼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실 줄 알았다. 하지만 몇 시간 뒤 할머니는 먹은 것을 토해내셨고 끙끙 신음소리까지 내셨다. 엄마아빠는 그런 할머니를 다시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며칠 후, 외로이 병마와 싸우던 할머니는 영영 우리집 문을 열고 들어오시지 않았다.
나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악을 쓰며 울었고, 기적을 이뤄주지 않은 실체가 없는 대상을 향해 있는 힘껏 원망의 화살을 쏘아댔다. 그 후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내게 헛된 꿈으로 가슴 한 편에 자리잡았다.
내가 경험했던, 작지만 분명한 크리스마스 기적들
그럼에도 크리스마스만 다가오면 이상하게 가슴이 부풀었다. 아무리 그래도 크리스마슨데,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늘 기적을 바랐지만 일어나지 않은 기적에 거듭 실망하면서도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기다렸다. 기적이 일어날 거라는 희망이 주는 달콤함 때문일까.
대학생 때 우연히 교생실습에서 만난 옆자리의 그가 내 마음을 가득 채우던 시절이 있었다. 검은 뿔테의 안경을 쓰고 호리호리한 체격에 다정한 말투인 그를 생각하면 괜스레 뺨이 붉어지고 가슴이 콩닥거렸다. 혼자서 마음을 키우다 그 아이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찾았고, 용기를 내어 일촌신청을 했다. 그와 일촌이 된 날, 내 마음에 갑작스레 봄이 찾아왔다.
마침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다시 기적을 바랐다. "크리스마스 날, 그가 내게 고백을 하게 해주세요." 하지만 당일,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보며 들숨날숨보다 한숨을 더 많이 쉬었다. 역시나 바라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 밤, 일촌평에 '메리크리스마스'라는 상투적인 인사만 남겨졌을 뿐.
▲ 크리스마스가 되면 늘 사는 케이크. |
ⓒ 이유미 |
생각해보면 나는 크리스마스 날 늘 커다란 기적을 바랐던 것 같다. 기적이라는 이름이 주는 거대함 때문에 뭔가 대단한 것이라야 했다. 하지만 큰 기적들은 코웃음치듯 나를 비껴갔다. 그것들이 내게 오지 않음에 실망해, 거기에 가려진 작은 기적들을 간과해왔다.
꼬박꼬박 찾아오는 크리스마스 날마다, 기적이 내 곁을 슬며시 찾아왔지만 나는 그것을 찾지 못했다. 그 작은 기적들을 찾지 못한 채 원망 가득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던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깨달았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란 가만히 앉아 큰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 소소한 그것들을 내가 찾아내야만 비로소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크리스마스라는 날에 기대어
다시 또 크리스마스. 그 어느 때보다 다사다난했던 우리의 한 해였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큰 기적을 바라는 요행 대신, 내게 찾아온 작은 기적들을 보물찾기 하듯 찾아내며 행복한 날을 보내려 한다.
슬픔이 잔뜩 내려앉은 누군가의 집에도, 특별할 것 없이 찬바람을 맞으며 묵묵히 제 일을 하고 있을 누군가에게도, 크리스마스가 작은 기적들을 선물해주길 바란다. 그날 하루만큼은 크리스마스가 선사한 작은 기적들을 찾아내어 그것을 통해 기쁨을 맛보고, 크리스마스라는 날에 기대어 맘껏 웃고, 맘껏 행복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올 크리스마스엔 당신에게 소소한 기적들이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재벌 소유 YTN은 재앙... 대통령실 '돌발영상' 대응은 오버"
-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용산구청 답변, 유가족의 거센 반발
- 안전운임제 폐지... 도로 위 모든 국민이 위험해진다
- "참담한 심정" 오은영 해명, 마음에 걸리는 한 가지
- 점심 한 끼, 연료가 필요했을 뿐인 처지가 서글펐다
- "윤 노동개혁은 국민에 행운" 매일경제의 낯뜨거운 찬양
- "할 사람 정해져 있다" 노인일자리 접수 거절한 강릉시노인회
- "국민 의견 경청한다고 집무실 옮겨놓고 집회는 금지한다?"
- [사진으로 보는 일주일] 우리가 더 고화질이라는 정부, 유치해서 살 수가 없다
- 조희연 최후진술 "해직교사 특채 재판받지만 전혀 후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