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그리워지는 그녀의 첫 주연작

양형석 2022. 12. 2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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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12월 24일에 태어난 고 최진실의 주연 데뷔작 <꼭지딴>

[양형석 기자]

매년 5월 셋째 주 월요일은 한국의 법정기념일 중 하나인 '성년의 날'이다. 하지만 내년 성년을 맞는 2004년생들은 성년의 날을 온전히 즐기기 힘들 수도 있다. 2023년 5월 셋째 주 월요일은 바로 5월 15일 '스승의 날'과 겹치기 때문이다. 2004년생들은 과연 내년 5월 15일 은사님을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자신이 어른이 된 것을 자축해야 할지 쉽지 않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성년의 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일이 삼일절이나 현충일, 6.25 전쟁일처럼 경건해야 하거나 비극적인 날과 겹치는 사람들도 있다. 마음껏 웃고 축하를 받아야 할 생일이 경건해야 하는 날과 겹치면서 생일을 제대로 즐기지 못 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경건한 국가의 기념일과 자신의 생일이 겹치는 사람들 중에는 매년 찾아오는 난감한 상황들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생일을 음력으로 지내기도 한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비교할 상대가 없을 만큼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다가 지난 2008년 향년 39세의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배우 고 최진실의 생일은 12월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행복을 찾는 날이다. 하지만 생전 그녀를 좋아했던 팬들은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너무나 일찍 세상과 등진 '불세출의 스타' 최진실이 그리워진다.
 
 <꼭지딴>은 최진실의 첫 주연작이자 그녀의 필모그라피에 있는 유일한 액션장르의 영화다.
ⓒ 태흥영화(주)
 
너무 일찍 세상과 등진 '불세출의 스타'

최진실은 20살이 갓 넘은 1988년, VTR 광고를 통해 "남편 퇴근시간은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카피를 유행시키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1989년 <조선왕조 오백년-한중록>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한 최진실은 1990년 영화 <남부군>에 출연하며 영화로 활동범위를 넓혔다. 1990년 불치병에 걸린 가짜 대학생으로 출연했던 <우리들의 천국>은 '최진실 신드롬'이 안방극장으로 번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이다.

최진실은 <남부군> 이후 귀여운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액션 장르의 영화 <꼭지딴>에 출연했다. <꼭지딴>에서 쉽지 않은 액션연기를 소화한 최진실은 같은 해 겨울 박중훈과 함께 이명세 감독의 멜로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출연해 대종상 신인 여우상을 수상했다. 1991년 하이틴 영화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2>에 출연한 최진실은 입양문제를 다룬 <수잔브링크의 아리랑>을 통해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1990년대 초·중반은 그야말로 최진실의 독주시대였다. 최진실은 1992년 최수종과 함께 드라마 <질투>에 출연해 50%가 넘는 시청률을 견인하며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고 같은 해 최민수와 호흡을 맞춘 로맨틱 코미디 <미스터 맘마>도 서울관객 20만을 돌파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1994년에는 양귀자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을 통해 백상예술대상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했다.

1994년 박중훈과 4년 만에 재회한 <마누라 죽이기>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코믹연기를 선보인 최진실은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95년에는 드라마 <아스팔트 사나이>와 <째즈>, 영화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1996년 김승우를 일약 흥행배우로 만들어준 영화 <고스트 맘마>역시 최진실의 대표작 중 하나.

1990년대 후반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와 <그대 그리고 나>, 영화 <편지>로 건재를 과시하던 최진실은 2000년 영화 <단적비연수>가 다소 실망스런 성적을 기록했다. 2000년대 초반 고 조성민과의 결혼과 이혼 문제로 슬럼프에 빠진 최진실은 2005년 드라마 <장밋빛 인생>을 통해 화려하게 복귀했고 2008년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로 '줌마델라 신드롬'을 일으켰다. 하지만 최진실은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을 유작으로 남기고 2008년 10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어설픈 매력으로 즐길 수 있는 최진실의 액션물
 
 '도깨비' 세민 역의 정보석은 20대 시절 잘 나가는 홍콩의 미남배우들 못지 않은 '꽃미모'를 자랑했다.
ⓒ 태흥영화(주)
 
사실 최진실의 필모그라피에서 <꼭지딴>은 크게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다. 흥행성적으로 보면 1997년 청룡화상 최다관객상을 수상한 <편지>나 서울에서만 34만 관객을 동원한 <마누라 죽이기>가 있다. 최진실의 커리어에서 의미가 있는 선택을 한 영화로는 입양문제를 다룬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이나 여성문제와 성범죄에 대한 영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도 있었다.

하지만 <꼭지딴>은 <남부군>의 조연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최진실이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영화였고 드라마와 영화를 모두 합쳐 최진실의 필모그라피에서 유일한 액션 장르의 작품이다. 실제로 <꼭지딴>에서는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없는 최진실의 진지한 액션 연기를 마음껏 볼 수 있다. 물론 몇몇 장면에서는 대역 사용이 티 나게 보이기도 하지만 <꼭지딴>이 개봉한 1990년 열악한 한국영화 제작환경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도깨비'로 불리는 도둑 세민을 연기한 정보석은 <지붕 뚫고 하이킥>의 주얼리 정과 <자이언트>의 조필연, <내 마음이 들리니?>의 봉영규 등 허당 연기부터 악랄한 악역, 7살 지능의 지적 장애인 등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만능배우다. 하지만 1990년대까지 정보석은 여러 작품에서 반듯한 외모와 지적인 이미지를 가진 젠틀한 캐릭터를 도맡아 연기했다. <꼭지딴>에서도 정보석은 부자들의 물건을 훔쳐 가난한 이들을 돕는 잘생긴 의적을 연기했다.

사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충무로에는 정통 액션영화가 흔치 않았던 시절이기 때문에 <꼭지딴>에서도 액션영화로서 미숙한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최진실이 연기한 여주인공 혜지는 부잣집 규수로 나오다가 영화 중반부터 뜬금없이 칼을 든 건달들을 때려잡는 화려한 액션연기를 선보인다. 물론 영화에서는 혜지가 어떤 식으로 무술을 수련했다거나 어떤 계기로 강해졌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에서 '도깨비'라고 불릴 정도로 악명 높은 도둑 세민은 평소 값비싼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 세민이 납치된 혜지를 구하겠다고 마음 먹은 후에는 세민의 차가 갑자기 국산 중형차로 변한다. 국산차를 끌고 악당들의 소굴로 쳐들어간 세민은 악당들에 의해 창문이 깨지고 보닛이 도끼에 찍히며 차량이 반파된다. 아마도 비싼 외제차를 손상시키기엔 '제작비의 압박'이 있었던 모양이다.

<장군의 아들> 배우들, <꼭지딴> 겹치기 출연
 
 <장군의 아들>에서 하야시를 연기했던 신현준(왼쪽)은 <꼭지딴>에서 단역으로 출연했다.
ⓒ 태흥영화(주)
 
<꼭지딴>에서 가장 화려한 액션연기를 선보이는 캐릭터는 세민이었지만 여주인공 혜지의 사랑을 얻는 실질적인 남자 주인공은 영석 역의 박진성이었다. 1980년대에 데뷔한 박진성은 1990년대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2006년 드라마 <연개소문>을 끝으로 개인사업을 시작하면서 연기활동을 접었다. 박진성은 <한명회>의 성종, <용의 눈물>의 황희 등 주로 사극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영화 <남자의 향기>에서 권혁수(김승우 분)의 오른팔 장승화,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안재모 분)의 오른팔 문영철 등 '주인공 오른팔 전문배우' 장세진은 <꼭지딴>에서도 세민의 오른팔 칠성을 연기했다. 칠성은 당초 세민과 마지막으로 비싼 물건을 훔치고 프랑스령의 관광섬 타이티로 떠나 잠적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형님이 혜지를 구하기 위해 엉뚱한 선택을 하는 바람에 세민을 따라 갔다가 괜히 총에 맞고 아까운 목숨을 잃는다.

<꼭지딴>은 한 달 정도 일찍 개봉해 서울 67만 관객을 동원하며 당시 한국영화 최고흥행기록을 세운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과 같은 태흥영화사에서 만든 작품이다. 따라서 <장군의 아들>에 출연했던 젊은 배우들이 대거 <꼭지딴>에도 '겹치기 출연'했다. <장군의 아들>에서 김동회를 연기했던 고 이일재는 <꼭지딴>에서 건달두목으로 출연해 최종보스의 포스를 뽐내다가 세민과 칠성의 협공에 최후를 맞는다.

이 밖에 <장군의 아들>에서 최종보스 하야시를 연기했던 신현준은 개미굴에서 납치한 수연에게 마약을 투여하는 에로배우로 출연해 <장군의 아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다소 경박한 연기를 선보였다. <장군의 아들>에서 쌍칼 역을 맡았던 김승우는 <꼭지딴>에서 초반 파티장 장면에서 혜지에게 추파를 던지는 청년 사업가로 출연했고 정두홍 무술감독 역시 액션배우로 <꼭지딴>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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