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겨울에 맛있는 제주 '파'…파에서도 단맛이 납니다

강병욱 2022. 12. 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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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강병욱의 제주 식재료 이야기(5)


이번에 알아볼 식재료는 다양한 음식에 사용되는 ‘파’다. ‘파’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파’에 관련된 짧은 이야기를 먼저 소개해 보려고 한다. 오랜만에 시집간 딸의 집에 들렀는데 가난했던 딸은 보리밥에 파국뿐인 한상차림을 차려냈다. 모처럼 오신 친정아버지에게 간장 푼 물에 파만 썰어 넣은 파국을 낼 수밖에 없었던 딸은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하지만 딸의 형편을 눈치챈 아버지는 ‘파는 단전을 보하고 보리는 굶주림을 가시게 한다. 이 두 가지 모두가 자양에 좋은 것이니 고맙게 먹으마’라며 딸의 마음을 위로했다고 한다. 자식의 상황을 배려하기 위한 아버지의 마음을 담은 이야기인데, 아버지의 마음과 ‘파’라는 식재료가 합쳐져서 마음을 울린다. 우리에게 무한한 이로움을 주는 ‘파’는 튀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다양한 식재료의 조합을 이끌어 주는데 그 모습이 마치 아버지의 모습과 같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주재료 혹은 부재료로 빠지지 않는 식재료인 ‘파’. 파는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신기하게도 아직 파의 원종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파의 원산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현재 학계에서는 중국의 서부지역인 천산, 즉 파르마 고원 지역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3000년 전 중국 서북쪽에서 재배를 시작했고, 중국은 파를 총이라고 쓰는데 2200년 문헌인 『산해경』에는 파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있다. 또 중국 문헌에는 파 품종이나 재배 방법 기록이 있어 오래전부터 파의 재배 방법이 발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제주파는 11~12월에 수확하며 가장 맛있다. 지금 시기에 차를 끌고 농장 쪽으로 가다 보면 곧 수확을 준비하고 있는 대파를 볼 수 있다. [사진 강병욱]


한국에서는 신라시대 때 파를 재배한 기록이 있지만 훨씬 오래전 북방을 통해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역사의 기록에는 ‘마당은 갈라서 파, 마늘밭이 되었다’(『고려사절요』)라고 적혀있으며, 『향약구급방』에 파가 약재로 등장한다. 고려 때 이규보의 문집에도 파와 관련된 시가 나온다. 시를 잠깐 살펴보면 ‘술자리에 좋은 안주가 될 뿐 아니라, 고깃국에 파를 넣으면 맛이 배가하니 그 아니 좋은가’라는 구절이 있다. 파는 이미 오랜 시간 음식의 감초 역할을 하면서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잠시 이야기했듯 파는 음식의 감초뿐만 아니라 약재로도 사용됐다. 파의 비타민과 단백질은 소화를 돕고 땀을 잘 나게 하여 죽으로 끓여 먹으면 감기에 효과적이다. 특히 초기 감기 치료에 효과적인데, 잠자기 전에 흰 줄기를 끓여 마시면 감기가 낫고, 생강을 섞어 다려 마시면 감기로 인한 두통이 멎는다. 파가 몸을 따뜻하게 하고 혈액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기침이 심할 때는 파를 잘게 썰어서 헝겊에 싼 뒤 콧구멍에 대고 숨을 쉬면 좋다고 한다. 어린 시절 기침에 감기가 심할 때면 어머니께서 헝겊에 파를 싸주셨다. 당시에는 파가 냄새가 나고 어린 나이에 버티기 힘들었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감기에 걸리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가끔 냉장고에 파를 찾아 응급처방을 해본다.

오신 채의 하나이기도 한 파는 입춘 날이면 시식으로 먹는 음식에 포함된다. ‘자극이 강해 먹으면 음욕을 일으키고 화를 내게 하며 수행을 방해한다’ 하여 불교에서는 오신채를 금하지만 입춘오신반이라 하여 이른 봄에 나는 매콤한 파, 산갓, 당귀 싹, 미나리 싹, 무 다섯 가지 햇나물로 생채를 만들어 봄의 미각을 돋우었다. 오신채를 구하기 어려운 지방에서는 잎이 푸르고 대가 노랗고 뿌리가 희며 실뿌리가 검은 파를 붉은 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으로 오신채를 대신하기도 했다. 이는 파가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효과가 뛰어나서 겨우내 쌓인 피로와 독소를 제거하고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 때문이다.

파에는 칼슘, 염분, 비타민 등의 영양소도 풍부하지만 특이한 향취가 있어 생식하거나 요리에 많이 쓴다. 하지만 양념으로 많이 이용하는 만큼 파를 주재료로 한 음식은 그리 많지 않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파강회, 살짝 데쳐 무친 파무침, 코끝이 톡 쏘는 파김치, 고기에 꿰어 지진 파산적 정도다. 음식의 감초로도 많이 사용한다. 생선회와 생선찌개에 파를 넣거나 같이 먹으면 파가 생선 비린내를 중화하고 해독해 준다. 요리의 간단한 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을 대표하는 조미채소 중의 하나인 파는 냉과 열에 강해 연중 재배하며 주로 봄과 가을에 재배한다. 겨울에 동사하며 휴면한 파를 여름 파형이라 부르고, 겨울에 생육을 계속하는 파가 겨울형이다. 겨울형 대파는 저장성이 여름 파형보다 더 좋다. 전남 진도군이 파의 최대 산지지만 전국에서 재배하며 제주도에서도 재배되고 있다. 제주산 파는 제주어로 대파는 ‘큰 파’, 실파와 파마늘은 ‘패마농’으로 부른다. 제주파는 11~12월에 수확하며 가장 맛있다. 지금 시기에 차를 끌고 농장 쪽으로 가다 보면 곧 수확을 준비하고 있는 대파를 볼 수 있다.

가장 맛있다는 제철 제주파를 가지고 간단한 음식을 한번 만들어 보았다. 겨울 시즌에는 많은 파 요리를 만들어 먹는다고 하는데 파무침, 제주말로는 큰 파무침을 추천받았다. 레시피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대파와 양념만 준비하면 90%는 끝이다. 대파는 먹기 좋게 잘라주고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준비하며 찬물에 넣어 색과 영양소가 날아가는 것을 방지해 준다. 양념장은 기호에 따라 변경이 가능하다. 약간의 간장과 참기름, 깨소금을 넣어주면 가장 기본 장인 양념장이 완성된다. 데친 대파와 양념장을 잘 섞어주면 큰 파무침이 완성된다.

생파를 먹으면 매운맛과 약간 씁쓸한 맛이 나지만 살짝 데치면 그 향이 사라진다. 양념장 맛이 처음 입에 넣었을 때 많이 올라오지만 계속 씹으면 제주파만의 단맛이 조금씩 올라온다. 대파에서 단맛이 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진 강병욱]


생파를 먹으면 매운맛과 약간 씁쓸한 맛이 나지만 살짝 데치면 그 향이 사라진다. 양념장 맛이 처음 입에 넣었을 때 많이 올라오지만 계속 씹으면 제주파만의 단맛이 조금씩 올라온다. 대파에서 단맛이 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육지와 같이 다양한 양념을 입혀서 먹을 수 있지만, 제주에서는 한정된 식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해야 했기 때문에 이런 간단하면서도 담백한 요리가 많이 발달했다.

제주파의 또 다른 특징이 하나 있는데 육지의 파보다 조금 더 진한 색깔의 오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레스토랑에서는 다양한 오일을 만들어서 사용하는데, 그중 대파를 활용한 오일도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육지에서 생산된 대파를 활용한 오일을 생각하며, 제조한 대파로 오일을 만들어 봤다. 육안으로도 확실하게 차이가 날 만큼 진한 초록색의 오일을 만들 수 있었다. 그 향만으로도 군침을 돋게 하는 파는 어떤 식재료보다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뿜어낸다. 코끝이 간질간질 해지는 초겨울을 이겨낸 파를 먹으며 건강도 챙기고 우리의 식재료도 챙겨 보자.

넘은봄 셰프 puzzlet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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