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그날엔…]'박근혜 시대' 만든 여론조사 전대

류정민 2022. 12. 2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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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전대의 기원, 2004년 3월 한나라당 전당대회
박근혜 여론조사 49.8%…野, 39년 만에 여성 당수시대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편집자주 - ‘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한나라당은 오늘부터 부패 정당, 기득권 정당에서 벗어나 새롭게 출발했음을 선언한다.”

2004년 3월23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임시 전당대회. 한나라당은 39년 만에 여성 야당 당수 시대를 열었다. 1965년 박순천 여사가 민중당 대표가 된 이후 2004년이 돼서야 새로운 여성 당 대표가 탄생한 셈이다.

전당대회의 역사적인 의미는 그것 하나가 아니었다. 한나라당은 체육관 선거로 대표되는 정당의 당 대표 경선에 여론조사 경선을 도입했다. 국민의 의견을 당 대표 경선에 반영한다는 것은 당시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박근혜 대표는 부패와의 절연을 선언하면서 국민의 뜻을 받드는 새로운 정당을 표방했다.

18년 전, 국민의힘이 여론조사를 전대 결과에 반영한 것은 4월에 열리는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절박했던 당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적 초강수를 둔 뒤로 혼돈의 시간을 경험했다.

탄핵 반대 열기를 외면한 국회의 선택은 엄청난 저항에 부딪혔다. 신생 정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압승을 기대할 정도로 여론의 무게 추는 한쪽으로 기울였다. 한나라당은 새로운 당 대표 선출이라는 대형 이벤트를 토대로 여론을 반전시키고자 애를 썼다.

한나라당 특유의 체육관 선거가 반복돼서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 어려웠다. 변화라는 기치에 맞는 상징적인 무엇이 필요했다. 한나라당은 여론조사와 선거인단 투표를 병행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당 대표 선출의 밑그림을 그렸다.

여론조사 경선은 일반 국민의 여론을 한나라당 대표를 뽑는 데 반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보수성향의 정당 역사를 고려할 때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이른바 보스 정치가 위력을 떨치던 시절, 정치 지도자 휘하에는 수많은 정치인이 있었다. 그들은 국회의원과 각종 선출직, 비 선출직 자리에 올랐다.

보스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표심을 행사했다. 결국 정치 보스의 판단이 선거 결과를 좌우했다. 하지만 여론조사 경선을 실시하면 대중의 인기가 높은 정치인이 유리하다. 때로는 보스의 판단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한나라당이 여론조사 경선을 실시한다는 것은 보스 중심의 정치가 아닌 대중 속으로 파고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당시 여론조사 경선 결과는 박근혜 후보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박근혜 후보는 49.8%라는 절반에 가까운 국민 여론조사 득표율을 올렸다. 상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일방적인 1위였다. 2위와 3위는 각각 22%와 19.8%를 기록한 홍사덕 후보와 김문수 후보가 차지했다.

박근혜 후보는 선거인단 투표와 여론조사 경선을 합산한 결과 51.8%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1위를 기록했다.

탄핵 역풍과 차떼기 오명에서 벗어나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한나라당은 여성 당수 박근혜를 통해 위기 돌파의 승부수를 띄웠다. 여론조사 상으로는 열린우리당이 180~200석까지 의석을 획득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온 상황.

한나라당은 완패를 되돌리는 게 지상 과제였다. 애초 당 대표 경선이 접전이 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박근혜 후보에게 일방적으로 힘을 몰아준 것도 당의 위기 상황을 반영한 결과였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가 19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윤동주 기자 doso7@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 체제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제17대 총선을 준비했다.

한나라당은 2004년 4·15 총선에서 지역구 100석, 비례대표 21석 등 121석을 얻으면서 예상 밖으로 선전했다. 열린우리당이 152석으로 과반 의석을 획득했지만, 한나라당 역시 여론조사의 일방적인 열세 예상과는 달리 제1야당으로서 충분히 활동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했다.

한나라당 변화와 개혁의 상징과도 같았던 여론조사 전대는 과거의 얘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2023년 3월로 예상되는 전대에서 책임당원 100% 투표로 신임 당 대표를 선출할 예정이다.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수단으로 인식되던 여론조사 결과를 당 대표 선출 과정에 포함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친윤(친윤석열) 대표 만들기를 위한 선거제도 변화라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18년 전 한나라당이 도입했던 여론조사 전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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