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1월에 쓴 새해 목표 얼마나 이루셨나요?

최창연 2022. 12. 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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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최창연의 원룸일기(12)

12월이 되면 신중하게 다이어리를 고른다. 다이어리가 모두 비슷해 보여도, 디자인과 크기부터, 종이의 질감과 구성까지 각양각색이다. 개인적으로는 하드커버로 튼튼하게 제본된 디자인을 좋아한다. 가름끈도 꼭 있어야 하고, 속지는 광택이 없고, 도톰해야 한다. 만년형 다이어리에 날짜를 쓰다가 틀린 이후로는 무조건 날짜가 적혀있는 것으로 고른다. 마음에 쏙 드는 다이어리를 위해 온라인 문구점과 대형 서점에 있는 문구 코너를 들락날락하며 오래 고민한다.

다이어리를 고르다 보면, 새해의 기대감이 조금씩 차오른다. 365일의 새로운 하루가 단단하게 내 손에 잡힌다. 새로운 다이어리를 펼치면 분주한 연말의 마음도 차분해진다. ‘올해도 이렇게 가버렸네’라는 의기소침한 마음에서, ‘앞으로는 이곳으로 가보자’라는 씩씩한 마음으로 옮겨간다. 새해엔 어떻게 살아볼까?

매년 다이어리의 첫 장에 그해의 목표를 10개 정도 적어왔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며 카페에 앉아 거창한 목표를 적다 보면 모두 이룰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문제는 목표를 세우고는, 12월까지 까맣게 잊고 지낸다는 사실이다. 1월에 써둔 목표를 읽으며 깨달았다. 나는 목표를 세우는 것만 좋아하고 달성하는 건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는걸.

[그림 최창연]


한다면 하는 사람들, 목표를 세우면 몰입해서 이뤄내는 사람들이 늘 부러웠다. 반면 나는 뒤가 무른 사람이라서 새해 단골 목표가 다이어트인데, 어젯밤에도 떡볶이를 먹었다. 10㎏ 감량이라는 목표를 10년째 첫 줄에 쓰고 있다. 목표가 10년 동안 그대로일 수 있다니. 한결같은 것일까, 한심한 것일까.

연초에 세운 커다란 목표들을 이루지 못해 괴로운 마음이 들 때 지난해의 다이어리를 읽어본다. 다이어리에는 주로 할 일을 적어두는 편이지만, 빼곡히 적어둔 할 일들 사이로 간혹 짧은 메모도 적혀있다.

지난 3월의 나는 동료와 이야기를 하고 돌아와 교만함이나 편견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었다. 5월의 나는 10년 장기근속 상여금을 받고 기분이 이상하다고 썼다. 7월 달리기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을 무렵, 더 오래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썼다. 9월부터 영어 10문장 외우기를 시작했다. 10월의 나는 부모님과 함께 소백산으로 여행을 다녀와서 행복하다고 썼다.

다이어리를 넘기다 보면 한심한 마음이 사라지고, 스스로에게 조금 너그러워진다. 사랑하는 이들과의 대화, 올해 갔던 여행지, 새롭게 시작한 달리기… 반복되는 업무와 매번의 다짐, 계속되는 실망 속에도 중간중간 마음을 다잡은 내가 있다. 애를 쓰는 내가 있다.

지난해가 아쉽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계획에도 없던 러닝을 시작한 것은 잘한 일이다. 우연히 시작한 달리기로 체지방 3㎏을 감량했다. 붓기가 많이 줄어서 보는 사람마다 살이 빠졌냐고 물어본다. 무엇보다 체력이 정말 좋아졌다. 체력이 좋아지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되었고, 일어난 김에 영어 공부까지 시작했다.

말하자면 나는 커다란 목표를 세우고 달려가는 것보다 조금씩 새로운 습관을 쌓아 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커다란 목표 10개보다 삶을 이루는 작은 습관 하나가 훨씬 힘이 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좋은 습관은 연쇄작용을 일으키며 예상치 못한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습관을 지속하다 보면 조금씩 내가 바뀌어 간다.

올해의 다이어리에는 커다란 목표 대신 유지하고 싶은 습관을 적었다. 첫째. 출근할 때 지하철에서는 SNS를 하지 않고, 그날의 영어 문장을 외운다. 둘째. 일주일에 2번 이상은 달리기를 한다. 만들고 싶은 새로운 습관도 적는다. 셋째. 점심을 먹을 때엔 천천히 씹어 먹는다. 적어도 15분 이상!

이 작고 평범한 목표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줄까? 작고 좋은 습관을 오래 지속하고 싶다.

“일상의 습관들이 아주 조금만 바뀌어도 우리의 인생은 전혀 다른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 1퍼센트 나아지거나 나빠지는 건 그 순간에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그런 순간들이 평생 쌓여 모인다면 이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지의 차이를 결정하게 된다. 성공은 일상적인 습관의 결과다. 우리의 삶은 한순간의 변화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임스 클리어,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최창연 그림작가·물리치료사 puzzlet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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