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한 22일 넘겨 통과된 638.7조 예산…예산도 세법도 ‘밀실 협상’

천금주 2022. 12. 24.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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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 2023년도 예산안이 의결 통과된 뒤 본회의장 문이 닫히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내년도 예산안이 여야의 긴 대치로 법정 처리 기한을 3주 이상 넘긴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밀실 협상’ ‘졸속 처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국회 심사에서 3000억원 줄었다…3년 만에 순감 전환

국회는 24일 새벽 열린 본회의에서 638조7276억원(총지출 기준) 규모의 2023년도 예산안을 의결했다. 이날 국회를 통과한 내년도 예산안은 건전재정 기조 속에 애초 정부안(639조419억원)보다 3142억원이 줄었다. 증액은 약 3조9000억원, 감액이 약 4조2000억원이었다.

총지출 규모가 국회 심사 과정에서 순감으로 전환한 것은 2020년도 예산안 이후 3년 만이다. 2차례 추경을 제외한 2022년도 본예산(607조7000억원)보다는 5.1% 증가했다. 국가채무 규모는 총지출 순감과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 규모 축소에 따라 정부안(1134조8000억원)보다 4000억원 감소했다.

2023년도 예산안은 헌법에 명시된 기한(12월 2일)을 22일 넘겨 처리됐다. 이는 법정 처리 시한이 지나면 정부 예산안 원안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도록 한 국회 선진화법이 시행된 2014년 이후 가장 늦게 처리된 기록이다.

여야는 예산 심사 단계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 및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 지역화폐 및 임대 주택 등 쟁점 예산을 두고 팽팽한 대치를 이어 간 끝에 지난 22일에서야 합의안을 도출할 수 있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고물가·고금리 등에 따른 서민 생계부담 완화 및 어르신·장애인·소상공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 지원을 위해 약 1조7000억원이 증액됐다. 9조7000억원 규모의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가 신설됐다. 또 반도체 산업 투자(1000억원), 3축 체계 관련 전력 증강(1000억원), 이태원 참사 관련 안전투자(213억원) 등도 예산에 반영됐다.

‘이태원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한 안전투자 강화 차원에서 사고예방을 위해 인파사고 위험도 분석·경보기술 개발 및 위치정보 기반 재난문자를 발송하는 ‘현장인파관리시스템’ 구축 예산, 119구급대·권역 DMAT(재난의료지원팀)의 신속한 현장 출동을 위한 노후 구급차 및 재난의료지원차량 교체 예산 등도 반영됐다.

여야 간 쟁점 사안이었던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3525억원과 공공 전세임대주택 예산 6630억원도 포함됐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본회의에서 “2023년도 예산안은 고물가·고금리·고환율과 경기침체가 우려되는 복합 위기 상황에서 재정 건전성을 강화하면서도 민생안정과 경제활력을 지원하기 위한 내용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추 부총리는 “어려운 재정 여건하에서도 역대 최대규모인 24조원의 지출구조 조정을 실행해 서민, 사회적 약자 보호와 역동적 경제 뒷받침, 국민 안전 보장 등 세 가지 방향에 중점 투자했다”고 부연했다.

예산도 세법도 ‘밀실 협상’…정의당 "도깨비처럼 등장"

내년 예산안 통과 과정이 예년과 다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치권 안팎에선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밀실에서 ‘주고받기식’으로 협상하는 관행을 끊어내지 못한 데다 여야 견해차가 큰 쟁점 법안을 국회 소관 상임 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하지 않은 채 한꺼번에 졸속 처리하는 모습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특히 교섭단체 간 협상에서 배제된 정의당은 “국회의 정상적인 의사결정을 건너뛰었다” “도깨비처럼 등장한 (예산) 수정안” 등으로 거세게 반발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 후 처음 편성해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 심사는 각 상임위에서부터 ‘윤석열표’ 예산과 ‘이재명표’ 예산을 둘러싸고 여야가 거세게 충돌하며 파행을 거듭했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와 운영위원회 등 일부 상임위에서 윤석열 정부의 대선 공약 및 국정 과제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쪽으로 ‘단독 의결’하기도 했다.

상임위서 의결된 예산안을 넘겨받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예산안조정소위를 가동해 감액·증액 심사에 착수했지만, 여야 대치는 계속됐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일부 상임위에서 예산안을 강행 처리한 점을 문제 삼아 아예 심사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 결과 예결특위는 법정 활동 기한인 11월 30일까지 감액 심사도 완료하지 못한 채 활동을 종료했고, 예산안은 이른바 ‘소(小)소위’ 단계로 넘어갔다.

소소위는 교섭단체 원내 지도부와 예결위 간사 등 소수 인원만 참여하는 협의체로, 국회법상 근거 조항이 없어 속기록도 남지 않고 비공개로 회의가 이뤄져 ‘깜깜이 심사’ ‘밀실 심사’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여야는 ‘소소위’에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예산안은 법정 처리시한(12월 2일)을 넘긴 데 이어 정기국회 기한(12월 9일) 내에도 처리되지 못했다. 결국 양당 원내대표들의 협상이 이어졌고 이들의 ‘담판’을 통해 지난 22일에야 합의가 이뤄졌다. 이는 2014년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최악의 예산안 처리 지연 사태로 기록됐다.

정의당 배진교 의원은 24일 본회의에 상정된 내년도 예산안 반대 토론에서 “특히 올해는 예산안 심사와 합의 과정이 더욱더 비공개로, 더 은밀하게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체 무슨 내용이 심사되고 있는 것인지 국회 예결특위 위원인 저를 포함한 예결특위 위원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계신 대다수 의원님 모두 예산심사 상황을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잘못된 절차로 제대로 된 예산안 내용이 만들어질 리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된 19건의 세법 관련 예산 부수 법안 역시 제대로 된 심사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법인세,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등 쟁점 법안에 대한 심사는 상임위에서부터 여야가 큰 견해차를 보였다.

소관 상임위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21대 하반기 국회 개원 이후 소위원회조차 구성하지 못하다가 지난달 16일에서야 조세소위를 구성했다. 뒤늦게 출발한 조세소위는 총 6번의 회의를 열었으나 여야 이견 탓에 주요 쟁점 법안들을 처리하지 못했다.

여야가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을 넘기자 결국 이들 법안은 여야 정책위의장과 예결위 간사가 구성한 ‘2+2 협의체’로 넘어갔다. 여야는 줄다리기를 거듭하다 22일 새해 예산안과 예산 부수 법안을 한꺼번에 합의했고 이들 법안은 본회의에서 일괄 처리됐다.

본회의에서는 이를 두고 ‘깜깜이’ 법안 심사가 반복됐다는 지적이 터져 나왔다. 당 안팎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고 밀실 협의인 만큼 법안이 여야 흥정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모든 과표구간에서 법인세율을 1%포인트 인하하는 내용의 법인세법 개정안은 정의당과 민주당에서 반대표가 37표나 나왔다. 기권표도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가세하며 34표나 됐다.

정의당 이은주 원내대표는 법인세법 개정안 반대토론에서 “국회의 정상적인 의사결정을 모두 건너뛰고, 세수가 줄어 어떤 영향을 미칠지 반나절도 논의하지 않고 법을 통과시키려 한다”면서 “수정안이 도깨비처럼 등장해 국회를 모독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여야 “지각 예산 아쉽…합의 처리에 의의”

여당인 국민의힘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법정 기한을 넘겨 처리된 예산안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양당의 합의로 처리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예산안 처리 후 기자들과 만나 “여야 간 몇 가지 쟁점에 대해 (처리) 시간이 늦어진 건 대단히 아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어 “법정기한은 지났지만, 여야가 합의로 내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켰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경제위기에 재정이 적기에 투입돼서 위기를 극복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새 정부가 정책과 경제 목표에 따라 힘차게 출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수 차례 야당과의 협상을 진행하고 어렵게 합의에 이르렀지만,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내년도 예산이 한 푼도 허투루 쓰이지 않고 ‘민생’과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적재적소에 사용될 수 있도록 최선의 준비를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도 본회의 종료 후 기자들과 만나 “여야가 대승적으로 한 발씩 물러나 타협하고 합의안으로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예산안 처리가 헌법이 정한 기간이나 정기국회 안에 처리하지 못한 점에 있어 국민들께 송구하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국회 삭감 중심의 심의권마저 행정부가 관여하고 개입하면서 불필요하게 지체되고 논란이 확산된 측면이 있다”며 “대통령실에서는 다수의 힘에 굴복해 민생 예산이 어려워진 것처럼 얘기하지만, 오히려 국민에 근심을 끼치도록 예산안 처리를 지연시킨 것은 정부·여당임을 돌아보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그는 “앞으로 국회가 형해화된 예산 심의권을 어떻게 회복할지 돌아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오영환 원내대변인은 예산안 처리 직후 서면브리핑을 통해 “초부자들만 보호하려는 윤석열 정부 폭주를 저지하고, 어려운 서민의 삶을 보호하고 민생 경제를 살리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면서 화물차 안전운임제를 비롯한 일몰조항 법안 처리,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등 남은 과제들에 대한 노력을 다짐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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