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잘라버린 그녀들…이란 각성시킨 22세 여성의 죽음 [2022 후후월드⑥]

김서원 2022. 12. 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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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마흐사 아미니


유족이 공개한 마흐사 아미니(22)의 생전 모습. 트위터 캡처
너는 영원히 죽지 않고, 너의 이름은 '상징'(code)으로 남으리. 지난 9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의문사한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22)의 묘비에 새겨진 글이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아미니의 죽음은 이란 여성들의 자유, 평등, 정의를 향한 불씨로 타올랐다.

이란 북서부 쿠르드족 거주지 쿠르디스탄주(州) 사케즈 출신인 아미니는 대학 개강을 앞둔 지난 9월 13일 가족 휴가차 수도 테헤란을 찾았다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로 불리는 지도순찰대에 끌려갔다. 도덕경찰은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풍속·복장을 단속한다. 체포 당시 아미니는 검정 차도르(전신 베일)로 전신을 가렸으나, 히잡 사이로 앞머리가 조금 드러난 상태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사흘 후 아미니는 폭행 흔적과 함께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이란 현지 언론은 마흐사 아미니의 안타까운 죽음을 대서특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 당국은 심장마비를 일으켜 실신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이 머리를 곤봉으로 내려치는 등 심한 구타가 있었고 이에 따른 뇌 손상으로 숨졌다는 증언이 제기됐다.

아미니의 의문사는 그간 과도한 히잡 단속에 억눌려 있던 여성들의 불만에 불을 댕기는 도화선이 됐다. 정부의 폭압과 진상 은폐 의혹에 분노한 이란 여성들은 아미니의 장례식에서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히잡을 벗어 던졌다.

지난 10월 26일 한 이란 여성이 아미니의 고향인 쿠르디스탄주 사케즈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추모 시위는 삽시간에 이란 전역으로 퍼져 1979년 혁명으로 들어선 이란 이슬람공화국의 신정일치 정권에 맞서는 대규모 반(反)정부 시위로 확산됐다.

테헤란을 비롯해 이란 전역의 대도시는 물론 작은 시골 마을에서도 '여성, 삶, 자유'를 외치는 반정부 시위 구호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시위에 나선 여성들은 히잡을 불태우고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기도 했다. 지난달 21일 이란 축구대표팀은 카타르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국가(國歌) 제창을 거부하며 시위에 나선 자국 여성들에 대한 연대를 드러내기도 했다.

전 세계에서 이란 시위를 지지하는 연대의 물결이 일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월 21일 터키에 사는 한 이란 여성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내며 아미니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이란 당국은 강경 진압으로 대응했다. 이란 경찰이 테헤란의 한 지하철역에서 시민을 향해 총기를 발포하고 마구잡이로 구타하는 영상이 소셜미디어(SNS)에 퍼지며 국제사회에 충격을 줬다. 이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히잡 시위'에 대한 지지와 연대 표명이 계속되고 있다. 이란의 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지난 20일까지 1만8400명 이상이 시위와 관련돼 체포됐고 506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했다.

폭력 진압에도 시위가 오히려 확산되자 이란 정부는 지난 4일 도덕경찰 폐지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한발 물러선 태도를 보인 것이지만, 이후에도 시위대를 탄압하는 유혈 공포정치는 여전하다. 이란 사법부는 반정부 시위 관련자 10여명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는데, 지난 8일 첫 사형을 집행한 데 이어 나흘 만인 지난 12일 또 다른 시위 참가자를 도심 한복판에서 크레인에 매단 채 공개 처형해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지난 9월 21일 이란 테헤란에서 마흐사 아미니를 추모하는 이란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금까지 석 달째 계속되고 있는 '히잡 시위'는 이슬람공화국 수립 이후 최장기 시위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시위의 선봉에 선 이란 여성들을 미국 타임지는 "사회 전체의 다양한 고충을 짊어진 여성의 반란"이라며 '2022 올해의 영웅들'로 선정했다. 미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이란 전문가인 카림 사드자드푸르 선임연구원은 "이슬람 율법을 지키려는 신정정권과 이들의 권위주의에 대항해 변화를 갈망하는 젊은 세대 간의 기념비적인 대결"이라고 평가했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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