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며 헤어지자”… 해고직원 일자리 찾아주는 회사들
기업들, 외환위기 반면교사… 퇴직자, 배신이 배려로
채용 플랫폼 원티드랩은 지난달 30일에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았다. 이름하여 ‘전직 지원 프로그램’이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감축 대상인 직원이 빠르게 새 직장을 찾을 수 있다. 대상 직원에게 맞을 것 같은 기업을 인공지능(AI)이 찾아주거나, 사람을 뽑고 있는 회사의 인사담당자에게 더 빠르게 연결해 준다. 원티드랩이 이런 서비스를 시작한 배경에는 ‘비자발적 퇴사자’가 급증한다는 전망이 자리한다.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인력 감축을 진행 중이거나 앞둔 회사가 원티드랩 홈페이지에 신청하면 된다. 직원을 내보내는 회사가 떠나는 직원의 커리어를 챙긴다? 이율배반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요즘 기업에선 ‘아웃 플레이스먼트(outplacement·해고 근로자 재취업 알선)’에 관심이 높다.
아웃 플레이스먼트는 유연한 노동시장을 지닌 미국에서 먼저 발달했다. 구조조정을 앞둔 회사가 감축 대상자의 재취업을 돕는다. 노사 갈등의 완화를 목적으로 처음 도입됐다고 한다. 지난달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는 1만1000명을 감축하면서 전문업체를 통한 커리어 지원을 약속했다. 한국에서도 아웃 플레이스먼트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을 때가 있었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다. 일부 대기업이 아웃 플레이스먼트를 시작했다. 최근 들어 다시 아웃 플레이스먼트에 주목하는 건, 한국 경제가 긴 침체에 빠질 수 있어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달에 ‘2022년 하반기 경제전망’을 발표하면서 내년 경제성장률을 1.8%로 추산했다. 1980년 이후 경제성장률이 2.0%에 못 미친 적은 3번뿐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5.1%),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9년(0.8%), 코로나19 확산기인 2020년(-0.7%)이다. 한국은행은 KDI보다 더 낮은 1.7%로 예측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전망치는 1.5%에 그친다. 이처럼 경영 환경이 불확실해지자 기업은 그동안 불렸던 몸집을 줄이고 있다. 비핵심 부서를 폐지하는 등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KB증권은 지난 15일까지 희망퇴직을 받았다. 1982년생 이상의 정규직 직원을 대상으로 했다. 하이투자증권, 다올투자증권도 희망퇴직 절차를 밟았다. NH농협은행, SH수협은행, 우리은행 등도 차례로 희망퇴직에 들어갔다.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해운사 HMM도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해운 운임이 35주 연속 하락하고 하반기 물동량이 급감하면서 위기가 감지되자 선제적으로 몸집 줄이기에 나선 것이다. 인력감축은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롯데면세점은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롯데하이마트와 하이프라자도 최근 희망퇴직을 모집했다.
중소기업 상황은 더 나쁘다. 가파른 금리인상, 인플레이션 등 대외변수에 취약해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회원사 410곳을 설문조사했더니, 응답 기업의 87.8%는 내년 경영 상황이 올해와 비슷하거나 나빠진다고 내다봤다. 10곳 중 6곳은 위기 극복의 카드로 ‘구조조정’을 선택했다. 스타트업도 구조조정 칼바람을 피하지 못한다. 지난해 소프트뱅크에 2000억원을 투자받았던 인공지능(AI) 교육 스타트업 뤼이드는 지난 9월에 마케팅 부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대규모 투자 이후 비대해진 회사를 효율화하는 차원이라고 알려졌다.
구조조정 바람이 거셀수록 직원을 잘 떠나보내야 한다는 인식도 커진다. 원티드랩의 ‘전직 지원 프로그램’은 직원을 내보내는 기업에서 신청해야 한다. 원티드랩이 이런 서비스를 도입했다는 건 직원의 퇴사 이후를 책임지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방증이다.
원티드랩 관계자는 “서비스를 신청했다는 건 구조조정을 시작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기업이 공개를 꺼리고 있지만, 서비스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도 관련 문의가 많다. 신청한 회사의 감축 대상자는 일반 회원보다 구직회사와의 매칭이 2.4배가량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왜 ‘잘 헤어질 결심’을 하는 걸까. 외부요인으로 타격을 입어 긴축경영에 들어가지만, 상황이 좋아지면 언제든지 다시 인재를 영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원의 재취업을 끝까지 책임지는 모습은 기업 평판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경영사정이 나아지면 과거 함께 일했던 직원을 다시 부르는 ‘연어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회사도 있다. 이들과 다시 일할 미래를 기대하려면 헤어질 때 좋게 이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핵심 인력이 곧바로 경쟁사로 이직할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효과도 있다. 특히 인력이 핵심자산인 스타트업에선 퇴직자의 경쟁업체 이직이 비일비재하다. 대기업에서는 아웃 플레이스먼트가 고령 퇴직자 중심으로 이뤄진다. 고령자고용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2020년 5월부터 1000명 이상을 고용한 기업은 1년 이상 재직한 50세 이상 직원이 비자발적 사유로 이직하면, 이직일 직전 3년 이내에 직업훈련, 취업 알선 등을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아웃 플레이스먼트에 익숙하지 않다. 인식 부족이 가장 큰 이유다. 직원의 전직을 지원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아깝다고 생각하는 기업이 많다. 퇴사자의 재취업 지원을 노조에서 막는 경우도 있다. 기업이 이 제도를 구조조정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어서다. 재계 관계자는 “따로 직원의 전직을 지원하는 부서를 두는 미국 기업이 많다. 아웃 플레이스먼트는 퇴직 예정자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직원에게 안정감을 주는 효과도 있다. 전반적인 인적 자원관리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처음에 회사가 나를 버렸다는 배신감을 느끼다가도 퇴직자 커리어까지 챙기는 회사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기도 한다. 남은 직원이 회사 경영사정을 이해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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