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vs 러시아, 운명 건 ‘겨울전쟁’ 세계지형 바꾼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전선이 한 달째 큰 공방전 없이 요지부동이다. 러시아군의 미사일·드론 발전소 폭격과 이에 맞대응하는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본토 원거리 공격을 제외하면 소규모 전투조차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양측 군은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날씨를 이용해 ‘겨울전쟁’ 총력전을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는 형국이다.
국제정치·군사 전문가들은 이번 겨울전쟁에서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유럽을 넘어 전 세계의 정치·경제·군사 지형의 판도가 바뀔 것이라고 예측한다.
우크라이나가 승리하면 미국·서방 대 중국·러시아 구도의 신(新)냉전 체제가 ‘거대’ 서방 대 ‘단일’ 중국 구도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쟁 패배가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 붕괴로 이어지면 러시아 전체가 서방 진영에 장악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러시아가 승리할 경우 전 세계는 20세기 냉전 당시 공산 진영과 맞먹을 만큼 강력한 반(反)서방 진영을 보게 될 개연성이 높다.
비옥한 평원지대인 우크라이나는 13세기부터 세계 패권의 각축장이었다. 13세기 이곳을 침략한 몽골제국은 극동아시아에서 동유럽에 이르는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를 완성했다.
하지만 이후 우크라이나를 차지한 침략세력은 더 이상 없었다. 지독한 겨울전쟁의 악령 때문이다.
프랑스 10만 대군은 1812년 여름 이곳을 침략했다 6개월 만에 전체 병력의 90%를 잃고 패주했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프랑스 총통직에서 쫓겨나 망명길에 올랐고, 프랑스 시민혁명의 기운도 쇠퇴했다.
1941년 러시아를 침공한 독일 나치군은 이듬해 겨울 우크라이나 일대에서 전체 병력의 70%가 사상당하는 최악의 패배를 겪고 후퇴했다. 치명타를 맞은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자가 됐다.
겨울전쟁의 승패를 결정한 것은 ‘라스푸티차’와 보급작전이었다. 얼었다 녹아 진창이 된 땅은 침략군의 전진을 ‘올스톱’시켰다. 침략군이 장병들에게 보급조차 제대로 못 하는 동안 방어군은 도사린 채 방어와 기습을 준비한다. 길 것 같던 라스푸티차가 갑작스레 끝나고 빙판이 된 땅은 정반대로 방어군의 전격 기습 지름길이 된다. 원정군은 어디서 어떻게 공격받을지 모를 정도로 뻥 뚫린 대평원에서 최악의 혼란을 겪기 마련이다.
지금 러시아군은 19세기 프랑스군과 20세기 독일군 같은 ‘절멸의 위기’에 내몰려 있다. 처음부터 ‘전격 점령’을 목표로 삼은 것, 제대로 된 보급이 전무한 상황, 우크라이나군의 강력한 저항에 10개월 이상 연전연패하는 전황이 다 비슷하다.
지난 17일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군의 8가지 실패 요인’이라는 탐사보도 기사를 통해 러시아군의 현 상황을 자세히 점검했다.
처음부터 피복과 침상, 식량 등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던 러시아군은 침공 이후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다. 지출된 보급예산은 중간에 빼돌려져 최전선의 병사들은 총탄조차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군 지휘부는 1960년대 우크라이나 지도를 보고 작전을 짤 정도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결전 태세에도 패닉 상태다. 오합지졸일 줄 알았던 우크라이나군이 강력한 조국 수호 의지에다 서방의 무한 보급으로 자신들보다 훨씬 더 좋은 총, 좋은 군복과 장비를 갖고 싸우고 있어서다.
21세기 첨단 정보통신기술(IT)이 이용되는 정보전에서도 러시아군은 한심할 정도다. 아무렇지 않게 휴대폰으로 자신의 위치를 노출하는 병사와 장교, 포격 좌표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할 만큼 낡은 위치감시·통신망이 대표적이다.
러시아는 이제 공격보다 방어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겨울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NYT는 지난달 28일 남부 최대 전략거점 헤르손을 빼앗긴 러시아군이 드네프르강 동안에서 새로운 방어전략을 선보였다고 보도했다.
NYT가 확보한 위성사진 등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동부 루한스크~도네츠크~자포리자~드네프르강 동안에 이르기까지 750여㎞ 길이의 삼중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총력을 쏟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산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탱크와 장갑차를 엄호진지 속에 감추고 병참선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마지노선처럼 최대한 깊게 파고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이 공격하더라도 쉽게 방어할 수 있는 ‘삼각형 방어선’ 전술도 개발했다고 한다.
병력도 징집을 통해 지금까지보다 훨씬 많은 숫자를 투입할 전망이다. 가장 큰 변수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가 위치한 북부전선으로 벨라루스군이 참전하느냐 여부다. 푸틴 대통령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을 직접 찾아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착실하게 보급선을 다지고 새로운 서방제 첨단무기 원조를 받으며 러시아군의 ‘약한 고리’ 찾기에 혈안이 된 모습이다. 우크라이나군은 동부 돈바스 지역으로 돌격하는 지름길인 바흐무트와 원전이 위치한 남부 자포리자에서 러시아군을 끊임없이 자극하며 총공세의 통로를 찾고 있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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