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급한 소망 찾아내 희망의 선물 후원 잇는 사랑을 꽃피우는 나무
김선아(가명·당시 15세)양은 재중동포 출신인 친어머니가 집을 나가면서 한국인 새아버지와 살았다. 그러다 새아버지의 성추행으로 집을 떠나 청소년 쉼터에서 지내고 있었다. 김양이 다니던 이주민선교센터 소속 전도사는 김양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엔젤트리(Angel Tree)’를 운영하는 온누리교회(이재훈 목사)에 편지를 썼다.
“선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느낄 수 있도록 아래 글귀와 함께 ‘30일 사랑의 키트’를 만들어 주세요.” 편지에는 핸드크림 손난로 장갑 양말 껌 등 30가지 선물과 이 선물에 어울리는 메시지 ‘너의 손은 소중하니깐^^’ ‘앗 뜨거워! 주님의 사랑♥’ ‘따뜻한 겨울 되길~’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온누리교회에 다니는 이예은(30)씨는 김양의 이야기를 본 뒤 목록대로 선물과 메시지를 준비해 보냈다. 이씨는 최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그때 선아가 매일 아침 작은 선물과 카드를 보면서 행복하게 하루를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간절히 기도했다”며 “선아가 지금도 하나님 안에서 잘 지내고 있길 바란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2015년 이재훈 목사의 제안으로 온누리교회가 엔젤트리 사역을 시작했을 때 있었던 일이다. 1979년 미국에서 시작된 엔젤트리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기 어려운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사역이다. 엔젤트리는 교도소 재소자 자녀 등에게 선물을 보내는 데서 시작한 것으로 구세군 연말 모금만큼 널리 퍼져 있다고 한다.
미국 구세군에서 일하던 메이저스 찰스와 셜리 화이트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줄 옷과 장난감을 기부받아 나눠줬다. 천사 모양이 그려진 카드에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소원을 적도록 했다. 이 카드를 크리스마스트리에 걸어 둔 것이 유래가 돼 엔젤트리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온누리교회도 비슷한 방식으로 꾸리고 있다. 첫해엔 교도소와 소년원 등을 포함해 지역아동센터, 다문화선교센터, 노숙인 시설 등에서 추천을 받아 2000여명에게 선물을 보냈다. 재소자가 자녀 등에게 보내주고 싶은 선물을 온누리교회 엔젤트리팀으로 제출하면 엔젤트리팀이 이 사연을 교회에 비치해, 사연을 본 성도들이 선물을 대신 보내는 방식이다.
이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이웃의 사연을 접수할 수 있다. 기자도 이달 초 서울 용산구 온누리교회 서빙고 캠퍼스 로비에서 한 사연을 뽑았다. 연필깎이가 필요한 다문화 가정 9세 남자아이 사연이었다. ‘아이는 언어 발달장애로 치료를 받고 있는데 부모가 경제적으로 어렵습니다. 성탄 선물을 통해 아이가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좋겠습니다.’
기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를 트리 앞 상자에 넣고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쓰인 엔젤 카드를 트리에 걸었다. 그런데 바로 당일 저녁 아이의 이름과 주소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도착했다. 어떻게 그날 바로 주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 사회선교본부 최혜옥 권사는 “천사가 되기로 한 분들의 연락처가 적힌 쪽지를 오후 5시쯤 가져와 선물을 받을 사람 이름과 주소를 보낸다”고 했다.
엔젤트리가 완성되는 데는 많은 봉사자가 필요했다. 사연을 접수하는 사람, 사연을 정리하는 사람, 접수된 사연을 출력해 비치하는 사람, 이 사연의 선물을 보내는 사람…. 교회 사무실에서 다양한 봉사자를 만났다. 한 60대 집사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며 항암치료 중에도 사연에 고리를 묶는 봉사를 했다.
매년 접수된 사연을 정리해 온 박인숙(50) 집사. 그는 이번에 지난해 8월 ‘미라클 작전’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으로 입국한 이들의 사연을 수십 건 정리했다. 그는 “법적 제한 때문에 성년이 된 자녀는 아프간에 두고 미성년 자녀만 한국에 온 경우가 많더라”며 “탈레반이 지배하는 모국에 있는 자녀들을 걱정하는 사연에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교지가 해외가 아니라 국내에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박 집사는 “사연을 정리하면서 이들의 가족이 무사하길 기도하고 복음을 전할 기회를 달라는 기도를 간절히 기도했다”고 했다. 한국 정부는 당시 미라클 작전을 통해 우리나라 아프간 재건팀을 도운 이들과 그 가족 390명을 입국시켰다.
박 집사는 엔젤트리 봉사로 아프간에서 온 이주민들과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엔젤트리는 이렇게 선물 받는 이, 선물을 해주고 싶은 이, 선물을 줄 사람을 연결해주는 이, 선물을 하는 이를 연결한다. 온누리교회는 사연지를 통해 사연자를 위한 기도를 요청한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선물을 전하면서, 보이지 않지만 하나로 연결되는 것이다.
엔젤트리는 교회가 사연을 접수한 뒤 신청자를 연결하기 때문에 선물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직접 소통하지 않는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누군지 모르는 ‘천사’로부터 선물을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받는 사람은 누가 보냈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엔젤트리 사무실로 감사 카드나 편지를 보낸다.
엔젤트리팀에는 이런 전화도 걸려왔다. “선물이 왔는데 누가 보냈는지 알고 싶다”고. 해당 번호는 교도소에 있는 아들이 부모에게 선물을 신청한 것이었다. 최 권사는 “아드님이 부모님에게 선물을 보낸 거라고 설명을 했는데 그 어머니가 ‘아들이 신청해서 선물을 보냈다니 믿을 수 없다, 고맙다’며 우시더라”고 했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사무실로 현금 2만원이 든 봉투와 함께 편지를 보낸 적도 있다. 그 엄마는 편지에서 “아이들 선물 너무 고맙습니다. …매번 (결혼) 실패와 임신만 하게 돼서 현재 아이 넷의 엄마가 됐습니다. …아이들이 잘 자라고 좋은 신앙을 갖도록 늘 기도합니다. 현금은 더 힘든 아이들에게 써주세요”라고 했다.
다문화가정사역을 하는 프래밀리 김성은 사무국장은 23일 “아이들이 올해도 엔젤트리를 통해 성탄절 선물을 받고 기뻐했다”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기쁨을 나눠주는 엔젤트리에 감사하다”고 했다.
온누리교회 성도들은 엔젤트리를 통해 매년 누군가의 천사가 되고 있다. 첫해 2000여건이던 엔젤트리 선물 건수는 올해 교도소 640건을 포함해 온누리교회 11개 캠퍼스에서 5700여건이 접수됐다(표 참조). 온누리교회는 지금까지 약 3만명에게 선물을 나눴다. 이 목사는 “성탄절을 맞아 이주민, 난민 자녀 등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작은 사랑을 나누는 일이기에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교회도 엔젤트리 사역을 각기 상황에 맞게 할 수 있다. 사회선교본부장인 이기훈 목사는 “교회가 인근 지역아동센터 등 복지시설과 연계해 엔젤트리 사역을 한다면 모두 더 따듯한 성탄절을 맞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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