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학위 부가 있어도 비어있던 마음을 채운 것은...”
어느 광복절 휴일, 마침 남편 생일이라 자녀들과 식사 중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세례받고자 하는 환자가 있다는 가족의 연락이었습니다. 이 환자는 전부터 세례받을 것을 권하였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거절했던 분이었습니다.
82세 되신 이 분은 서울대 법대를 나오고 미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셨으며 세상에서 부족함 없이 사셨던 분이었습니다. 서울대에서 불교 관련 칼럼도 쓰시고 불교계에서 열심히 활동하신 독실한 불교 신자셨습니다. 인생의 끝에 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고 다른 병원을 거쳐 마지막으로 제가 사역하는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아마도 오래 살지 못할 정도로 병이 깊어져 있는 듯했습니다.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 속에 저는 그분을 만나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환자는 병도 병이지만 외로움이 그 병보다 더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최고의 학벌과 명예, 부를 누리고 살았지만 죽음을 앞에 둔 그분에게는 찾아오는 이가 없었습니다. 자세한 사연은 몰랐지만, 자존심이 그를 지탱하고 있는 유일한 힘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께 사생활은 묻지도 말하지도 않았고 그저 주위에서 빙빙 돌며 그분의 마음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다가갔습니다. 그때까지도 그분은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분에게 급한 것은 자신의 신분과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라한 자신의 모습이 받아들여 지지 않는다고 하셨고 누구에게도, 심지어는 청소하시는 분들께도 자신을 보이고 싶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병실 밖으로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인내하며 두 달여를 그분과 만나면서 복음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복음을 받아들였고 싹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고 같이 기도할 때마다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저는 그의 말을 들어주며 매일같이 곁에 있어 주는 유일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이야기도 들려주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자존심을 걷어내고 마음속의 아픔이 하나둘 벗겨지면서 그분은 마음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행동의 자유도 얻게 되어 병실을 나와 저와 같이 산책하기도 하였고, 예배실을 가보고 싶다며 혼자서 예배실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분이 주일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날 그분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맨 앞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실에 들어와 앉자마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찬양을 부를 때도, 기도할 때도, 예배드리는 시간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맨 앞 의자에 앉아서 아버지 품에 안겨 눈물로써 고백하는 예배를 드리는 것 같았습니다. 세례를 받자고 했을 때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었는데 그분의 가족이 광복절 휴일, 제게 전화를 한 것이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저는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세례식 준비를 하여 환자가 있는 8층, 안정실을 찾아갔습니다. 도착해서 보니 전화를 주신 분은 환자의 조카였습니다. 당시 환자분은 희미하게나마 의식을 유지하고 계셨고 긴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저는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양을 부르고 세례를 집례했습니다. 세례식 마지막 선포로 “이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오늘 세례를 받은 환자 000은 일산병원교회 성도가 됨을 선포하노라”하고 축도하며 “아멘” 하고 손을 내리는 순간 환자분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혈압기에서 ‘뚜우~~’ 하는 소리와 함께 그래프가 일자를 나타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셨습니다. 믿기로 작정된 자였던 것입니다. 조카분도 놀라워했습니다. 병실에서 저와 가족들이 함께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지지 없이는 오늘까지 병원 선교를 이어올 수 없는 부족하기만 한 저입니다. 제가 오늘 감사하고 감격하는 보람찬 모든 사역은 제가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신 것임을 고백합니다. 코로나19가 시작되고 확산하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약속의 말씀대로 저와 함께하시면서 주님의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심미자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원목)
박용미 기자 m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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