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의견 경청한다고 집무실 옮겨놓고 집회는 금지한다?"

손가영 2022. 12. 23.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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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팟 인터뷰] 관저 집회 금지조항 '위헌' 결정 받아낸 참여연대 이지은 간사

[손가영 기자]

위헌적인 법에 가로막혔던 표현의 자유가 지난 22일 한 발짝 진보했다. 특정 건물 인근 100m 이내엔 집회를 못하게 하는 법 조항 '집시법 11조'에 또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왔다.

이번엔 대통령 생활공간과 집무실이 있는 '대통령 관저'다. 1962년 집회·시위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정 이래 60년 간 11조의 집회 금지 장소로 정해져, 관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경찰이 집회·시위를 금지해왔던 성역과 같은 곳이다.

이로써 남은 금지 장소는 3곳이다.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이다. 2003년 외교기관(대사관 등) 인근에 대한 집회 금지에 첫 헌법불합치 결정을 시작으로 국무총리 공관, 국회의사당, 법원, 헌법재판소, 그리고 대통령 관저까지 헌재의 위헌 판단이 차례로 나왔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아주 경악스러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용산 대통령 집무실을,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를 '지킨다'며 집무실과 사저 인근 100m 내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집회·시위법 개정안을 지난 1일 국회 상임위에서 통과시켰어요. 국회가 국민들 기본권을 빼앗고 범법자로 만드는 겁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이지은 간사는 23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국회는 부끄러운 줄 알라"며 이렇게 말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대통령 사저에 대한 집회 금지 조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낸 당사자다. 10년 전부터 이 싸움을 계속 해 온 센터는 위헌법률심판 신청으로 국회의사당과 법원의 집회 금지에 대한 위헌 판단도 받아냈다.

이 간사는 두 거대 정당이 제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국민 기본권을 희생양 삼고 있는 때라며 더욱 이번 헌재 결정이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간사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선임간사
ⓒ 이희훈
 
"집회시위는 허용이 원칙이고 금지는 예외여야"

- 용산 집무실 인근 집회 금지로 제기된 행정소송만 10건이 넘는다. 이제 경찰이 용산 집무실 인근 집회를 금지하지 못하게 될까?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관저'를 이유로 집회를 금지하지 못한다는 건 명확히 서술했다. 위헌 판단 논리가 정확히 나왔으니,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다만 집회를 금지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계속 시도할 것 같다. '대통령 집무실'을 집회 금지 장소로 정하고 소음을 이유로 집회를 통제하는 집시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경찰청은 10월과 11월 연이어 관련 토론회를 열었다. 보통 경찰청이 토론회를 열면 꼭 법안으로 올라오더라."

- 집무실과 사저를 집회 금지 장소로 넣은 집시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개악이다. 집회·시위 자유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허용이 원칙이고 금지가 예외여야 한다. 지금 집시법도 사실 전면 개정돼야 할 만큼 문제가 많다. 금지가 원칙인 방향으로 설계돼 있는데, 11조가 대표적인 문제였다. 20년에 걸쳐 11조를 하나씩 고치고 있는데 이 소중한 결과를 국회가 도로아미타불로 만든다. 금지 장소가 추가되는 사태는 절대 벌어져선 안 된다."

- 대통령, 국민의힘 모두 용산 집무실 이전의 이유로 경청과 소통을 들었었다.
"그러니까 한 입 갖고 두 말하는 결과다.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기는 이유로 국민들 가까이서 의견을 경청한다면서 백악관을 본땄다는 말까지 했다. 그것도 대통령이 그렇게 말을 뱉었는데, 국민의힘 의원들이 집무실 근처 집회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한다? 당장 중지해야 한다."

-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 심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법안 통과에 찬성했다.
"전직 대통령 사저를 금지 장소로 추가한다는 것인데, 똑같이 기본권 훼손이고 적극 반대한다. 전직 대통령은 사인으로 돌아간 사람인데다, 집시법엔 이미 전직 대통령 사저 근처 집회를 통제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충분하다. 집회를 가장한 괴롭힘이 문제인건데, 집회 금지·제한 통고 사유를 규정한 집시법 조항, 대통령 경호에 관한 법률 등이 있다. 이번에 헌재도 집회를 통제할 수단이 이미 충분하기에 집회 금지는 과도하다고 강조했다."
 
 11월8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부근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주최 ‘밥 한 공기 쌀값 300원 쟁취, 농민생존권 보장 전국농민결의대회’가 열린 가운데, 바리케이드를 설치한 경찰 뒤로 대통령실 청사가 보인다.
ⓒ 권우성
 
국회·경찰 위헌적 법 개정 시도 수면 위로... "막아야"

- 헌재 결정 요지는?
"'광범위하게 집회 금지 장소를 설정해 집회가 금지될 필요가 없는 장소까지도 과도하게 금지하고 있다. 집시법은 다양한 규제 수단을 두고 폭력행위는 형법으로 처벌될 수 있으며 대통령 경호법으로 대처할 수 있는 상황도 있다. 보호 수단이 충분하므로 위험 우려만을 근거로 관저 인근 모든 집회를 금지할 수 없다. 또 관저 인근은 국민들이 의견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장소로, 이곳의 집회를 금지하는 건 집회 자유의 핵심 부분을 제한한다.' 이런 이유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했다."

- 헌재 결정은 바로 적용되나?
 "아니다. 입법 공백의 우려가 초래될 수 있다며 2024년 5월 31일을 시한으로 법 개정이 이뤄질 때까지 잠정 유지한다고 정했다. 위헌적이라고 했으면 바로 위헌 결정을 해야지, 2년 정도 시한을 남겨뒀다. 국민 기본권이 무시되는 건데, 이것도 헌법불합치가 아닌가."

- 이번 헌재 결정은 어떻게 나왔나?
"2018년 1월, 기획 소송으로 준비했다. 참여연대는 11조를 바꾸기 위해 2013년부터 헌법소원 등에 돌입해왔다. 2013년 당시 이태호 사무처장이 국회 인근 100m 내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했다가 벌금형을 받았고 이에 헌법소원을 내 2018년에야 위헌 판단이 나왔다. 2018년엔 대법원에 인접한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시민이 체포돼 집시법 위반 유죄 선고를 받자, 참여연대가 헌법소원을 제기해 '법원 등 인근 집회 금지' 조항이 위헌이란 판단을 받았다.

대통령 관저에 대한 조항도 바꾸기 위해 2016년 청와대 인근에 일부러 집회를 신고했다. 금지 통보를 받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관련 법조항이 위헌이니 헌법재판소에 판단을 구해보자고 재판부에 요청했는데, 법원에선 다 기각됐다. 그래서 다시 헌법소원을 신청했고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거의 4년 만에 결과가 나왔다."

- 현재 한국 집시법의 자유권 보장 수준에 점수를 매긴다면?
"매길 수 없다. 그만큼 엉망이라는 뜻이다. 1961년 박정희 군사정권이 제정한 '집회에 관한 임시 조치법'의 영향이 남아있어 뿌리부터 문제가 있다. 집회를 사실상 허가제로 만드는 6조의 신고 규정, 집회 금지 이유로 남용되는 8조, '교통 소통'을 위해 필요하다면 집회를 금지할 수 있게 하는 12조가 대표적이다. 1조 목적에서부터 '적법한 집회'를 보장한다고 적고 있다. 집시법은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

- 남은 과제는?
"전면개정도 계속 주장하면서 11조, 12조 개혁에 계속 목소리 낼 것이다. 12조는 11조만큼 많이 남용된다. 최근 경찰이 대통령 집무실 앞 도로에 교통량이 많으면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시행령 입법을 추진하려다 제지된 적이 있다. 곧 '소음'을 이유로 집회를 규제하려는 흐름도 가시화될 것 같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서로의 '거래'로 집무실과 사저 인근 집회를 금지하려는 법률 개정도 시급한 문제다. 너무 교과서적이지만, 최소한의 예외적인 통제만 가능케 해 최대한의 기본권을 지킬 수 있도록 문제에 대응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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