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권의 감성골프] 영하 20도에 와서 골프를 치라고?

2022. 12. 23.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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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그날 골프 그대로 진행했는지요? 저는 춥고 눈도 약간 내려 취소했는데???.”

골프 선약이 있어 초청에 응하지 못했던 직장 후배가 물었다. 강추위 예보와는 달리 당일 전반 두 홀 정도만 추웠을 뿐 지장이 없었다고 답하자 놀라는 표정이었다.

필자는 횡성 부근 골프장, 후배는 수도권 골프장이었다. 횡성 골프장에는 눈도 없고 기온도 영상을 웃돌았다. 무엇보다 바람이 불지 않아 진행하는 데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그린피 부담도 없어 이 쪽으로 붙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후배는 못내 아쉬워했다. 10월부터 골프에 발동이 걸렸는데 부킹 취소가 너무 뼈 아팠다고 한다.

좋아하는 골프를 취소했는데 같은 날 다른 골프장에선 전혀 지장이 없었다니 억울한 마음마저 든다. 골프는 날씨에 민감하다.

오죽하면 골프 삼락(三樂)에 날씨도 들어 있다. 골프를 끝내고 따뜻한 욕조에 몸을 녹이고(一樂) 생맥주를 마시는(二樂) 즐거움이다.

차를 몰고 골프장을 빠져나올 때 비가 내리면 삼락이다. 골프장으로 들어오는 차 행렬을 보고 혼자 미소 짓는다. 잔인한 미소다.

어떤 날씨에 골프 예약을 취소할 수 있을까. 날씨를 이유로 한 부킹 취소는 복합적이어서 사례별로 다르다.

한파가 몰아치는 요즘엔 정말 골프장에 가고 싶지 않다. 결론적으로 날씨가 춥거나 덥다는 이유로 예약을 취소하지 못한다.

추위와 더위는 주관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영하 20도에 냉기가 발바닥을 감싸고 손이 얼어도 클럽을 휘둘러야 한다.

물론 당일 카트 도로가 얼어 사고위험이 명백하면 현장에서 골프장에 얘기하면 취소할 수 있다. 바람마저 강하게 불고 한파특보까지 내려졌다면 골프장에 따라 취소를 받아주기도 한다.

눈이 왔다면 골프장에서 보통 문자로 알려준다. 취소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폭설 예보만으로는 미리 취소하지 못한다.

골프 도중 눈이 와서 중도 포기하면 보통 홀별 혹은 전후반 기준으로 정산한다. 물론 4명 가운데 한 명이 중도 포기해도 4명 값을 모두 치른다.

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폭우라도 예보만으론 취소 불가다. 당일 골프장 기상여건이 기준이다. 서울에는 장대비가 내리는데 용인 골프장에는 먹구름만 잔뜩 끼었다면 가방을 싸들고 가야 한다.

거꾸로 서울에는 햇볕이 나도 골프장에 비가 내리면 전화로도 취소 가능하다. 단 골프 예약 시간 1~2시간 전 기준이다.

간혹 골프장이 골퍼들을 불러들이려고 현장 기상여건을 실제보다 좋게 말해 주의가 요망된다. 골프장에 와서 밥이라도 먹고 가도록 유인하는 상술이다.

무리하게 골프장으로 오게 하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언젠가 서울에 엄청난 폭우가 새벽에 쏟아지는데 골프장엔 비가 내리지 않는다며 취소를 불허했다.

한 골퍼가 폭우가 내리는 어둠 속에 운전하다가 차가 물에 잠겨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 고급 외제차를 폐차할 정도로 손실을 입었는데 민사소송을 고민했다고 한다.

골프를 가장 방해하는 요소는 바람이다. 춥거나 가랑비가 내려도 골프는 가능하지만 바람이 불면 골프 자체가 어렵다.

비거리와 방향을 종잡지 못하고 특히 바람에 맞서면 멘털은 흐트러지고 심신이 지친다. 프로선수들도 바람 부는 날 경기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바람도 웬만해서 골프 취소 조건이 안된다. 티에 올려놓은 공이 떨어지고 모자가 날아가지 않는 한 그대로 진행해야 한다. 간혹 악천후에 따른 내부 운영 방침을 마련한 골프장도 있어 전날이나 당일 전화로 문의할 필요도 있다.

안개는 아예 취소 요건이 아니다. 옷이 젖는 것도 아니고 언제 걷힐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교차가 심한 날 자욱한 안개 속에 헤드 업 없이 스윙한 적이 있다.

새벽부터 18홀 내내 안개가 걷히지 않아 앞을 볼 수가 없었다. 희한하게 스코어는 평소보다 2타 정도 잘 나왔다.

20년전 골프 입문 당시 가평에서 하루 140㎜ 폭우를 뚫고 골프를 한 적도 있다. 결국 그린에 흐르는 빗물 때문에 공을 세울 수 없어 두 홀을 남기고 철수했다. 골프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연일 한파와 눈비로 예약 취소가 늘지만 골프장들이 수십 만원 위약금을 물고 있어 빈축을 산다. 대다수 골프장은 7일 전까지 취소하면 정상 처리하고 6일 전부터는 위약금을 물린다.

골프장별로 다르지만 위약금은 그린피와 카트피 포함한 이용료의 10% 또는 2일 간격으로 당일 취소까지 10만원씩 추가 위약금을 붙인다. 골퍼들은 위약금이 한두 푼도 아닌 데다 기습적으로 추워질 줄 어떻게 알았느냐고 반발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과도한 위약금에 따른 분쟁해결 기준을 마련한 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내년 5월부터 시행된다.

이에 따르면 예약을 취소해도 주말은 4일 전까지 위약금(배상금)을 내지 않는다. 2일 전까지 취소하면 이용료의 10%, 하루 전 20%, 당일 취소는 30%를 배상한다.

초보 때와 달리 요즘은 △낮 최고 3도 이상 △맑고 △약한 바람 이 세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겨울 골프는 더 이상 나에겐 없다. 물론 부담 없는 초청 골프는 예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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