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 예산은 들어가고"…거야 힘에 밀린 예산안에 용산 분통
“힘에 밀려 민생 예산이 퇴색됐다.”
여야 간 예산안 합의 뒤 침묵을 지켜왔던 대통령실이 만 하루가 지난 23일 오후에 밝힌 입장 중 일부다.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이날 오후 4시 브리핑을 열고 “윤석열 정부 예산안과 관련해 야당과 합의할 수밖에 없었지만, 아쉬움이 있다”며 “일자리를 더 만들고 경제 활성화를 위해 재정을 투입하려 했으나 힘에 밀려 민생 예산이 퇴색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대로 경제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지 우려되지만, 윤석열 정부는 묵묵히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실 핵심관계자는 “힘에 밀렸다”는 발언 배경에 대해 “첫 예산안엔 윤석열 정부의 철학이 반영돼 있었다”며 “그런 부분이 퇴색되고 민생 예산 상당 부분이 수적 우위에 앞서는 야당의 예산으로 활용됐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은 여야 간 합의를 존중해 예산안에 대한 공개적 입장 표명은 자제하려 했다. 하지만 본회의 심사를 앞두고 최소한의 문제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내부 의견에 브리핑을 열게 됐다고 한다. 실제 대통령실 참모진 사이에선 “그분의 예산은 들어가고 민생 예산은 빠졌다”는 자조섞인 말들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그분’이라 가리키며 거야(巨野)가 밀어붙인 예산이 대거 반영됐다는 의미다.
이번 합의엔 대통령실이 주장해왔던 법인세 3% 인하(25%→22%) 대신 구간별 세율 1% 인하로 합의됐다. 경찰국과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예산도 반토막이 났다. 반면 ‘이재명표 예산’이라 불린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은 3525억원이 편성됐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법인세는 몇몇 대주주를 위한 것이 아니다”며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경제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고 했다. 또한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를 면제하는 건 오히려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예산안 세법 개정안도 많이 부족하다”고 했다.
또다른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최소한의 예산이었다”며 “야당의 무차별적인 감액은 두 기관(경찰국, 인사정보관리단)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부족한 경비는 예비비 등으로 충당하겠다는 입장이다.
◇尹, 3개월만에 자립준비청년 만나=한편 윤 대통령은 이날 김건희 여사와 함께 자립준비청년과 아동복지시설 보호아동 100여명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해 크리스마스 행사를 열었다. 윤 대통령은 청년 등에게 빨간 목도리를 걸어주며 “예수님은 말 구유에서 태어났지만, 인류를 위해 사랑을 전파했다”며 “어떻게 태어났느냐보다 내가 어떤 생각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 격려했다. 자립준비청년이란 양육시설에서 보호를 받다 일정 연령이 되면 자립을 해야 하는 청년을 뜻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월에도 충남에서 자립준비청년을 만나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방치한 것은 아닌지 부모 세대로서 부끄러웠다”며 지원을 약속했다. 이후 정부는 지난 11월 자립청년을 위한 자립수당(월 35만원→월 40만원)과 자립정착금(800만원 이상→1000만원 이상)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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