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상처받은 인간다움…‘좋아요’만 누르지 말고 소통을
[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오늘의 인류는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생산하면서도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배고프고 소외되고 있다. 우리는 진실되게 행복한지, 우리의 인간성은 상처받지 않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수녀이자 학자인 저자는 미국 홀리네임즈대학의 영성학 교수로 재직하며 영성과 더불어 이주, 소외, 가난, 여성 문제에 천착한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고 했건만, 왜 이 시대는 사랑 없이 죽어가는지를 고찰한다. 책 ‘상처받은 인간다움에게’(한빛비즈)를 통해 가난과 소외, 폭력과 질병 시기 앞에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을 열두 가지로 정리했다. 질문의 큰 줄기는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이다.
저자는 ‘인간(人間)’이 개인과 개인 사이에 놓인 공간을 의미한다며 그 공간을 어찌 메워야 하는지에 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인문학 관점에서 질문을 건넨다. 그러면서 “어떤 꽃보다 아름답고 그 어떤 보물보다 귀한 것이 사람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면 저마다의 귀한 구석을 알아보고 (나와 남을) 소중히 대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라는 공동체를 강조하는 박정은 교수와 20일 대화를 나눴다.
- 인간다움에 관한 고찰이 책에 풍성하게 담겼다. 작가가 생각하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제게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누군가와 연결돼 살아가는 존재다. 시간과 공간 안에서 고유한 느낌과 결을 가지고 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들이 나를 형성해가는 거다. 오늘과 같은 글로벌한 세상에서 나와 마주한 사람들을 열린 눈으로 대할 때 내 인간의 경지는 더욱 넓어지고 또 깊어진다고 생각한다.
- 제목이 ‘상처받은 인간다움’이다. 현시대에 인간다움을 훼손하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신자유주의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본의 논리로 모든 것이 계산되고, 삶의 가치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품성이 가치의 척도가 되고, 이러한 거대 메커니즘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은 설 곳을 잃었다. 가장 가슴 아픈 건 서로를 보듬어주는 공동체의 상실이다. 종교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정부는 책임지지 않고, 고독과 소외 속에 사는 많은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 책에서 인문학의 시야로 문제를 통찰한다. 시대 문제와 갈등의 해답을 인문학에서 찾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나.
▲인문학자들을 살펴보면 시대를 통찰하며 우리 시대가 마땅히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누가 무슨 이야기를 했다거나, “나 이런 책 읽었다”는 중요하지 않다. 마주한 생의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비로소 보석 창고와 같은 인문학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일단 생각하고, 고민한 후에 다양한 저자와 소통해보라. 칸 마르크스가 됐든, 공자가 됐든...
- 미국 내 가톨릭은 성 소수자들의 신앙생활을 돕는 사제들이 따로 있다고 들었다. 가톨릭 내에서는 성 소수자를 어떻게 바라보나. 미국과 한국 가톨릭 사이에 대비되는 점이 있을까.
▲미국 내 성 소수자에 관한 입장은 매우 우호적이다. 가톨릭 공식문서에도 성 소수자를 교회의 형제자매로 받아들일 것을 권고하고 있다. 1980년대에는 성 소수자를 위한 본당이 따로 있었는데, 요즘은 그 단계를 뛰어넘었다. 미국에도 보수적인 지역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한국 가톨릭의 경우 상대적으로 배타적이지만, 조만간 변할 것이라 믿는다. 교리적 문제라기보다는 한국 사회가 지닌 불편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성(性)으로 불리길 원한다. 성 소수자라는 프레임 없이 사랑해야 하는 존재로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 페미니즘에 관해 언급한 대목이 있다. 수녀로서 지금의 페미니즘 물결을 어떻게 진단하나.
▲제게 페미니즘은 인간을 깊이 이해하고, 또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다만 페미니즘에 관한 사람들의 인상과 느낌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자기들의 주장만을 펴면서 양보하지 않을 것 같은 여성들에게 지친다고 하는 반면, 누군가는 여성이 성적인 대상으로 취급받거나, 도움이 필요한 부족한 존재로 인식되며 고통받고 있다고 말한다. 지금 시점에 필요한 건 대화다. 각자의 주장을 깊이 사고하고, 정직한 담론이 이어져야 한다. 젠더와 자본, 소외의 문제를 차분하게 이야기했으면 한다. 그걸 꼭 페미니즘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으니 대화가 이어졌으면 좋겠다.
- 사물을 긴 시선으로 보는 태도를 강조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미지 시대에서 모든 것은 찰나의 순간이다. 무엇이 진짜인지 구분이 잘 안 간다. 합성 사진처럼 아주 다른 느낌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렇게 잘리고 편집된 이미지 속에서 세상은 공감을 잃어버리고 있다. 편집된 이미지 뒤에는 얼굴을 잃어버린,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긴 시선이란 이런 이미지 뒤에 숨은 사람을 발견하는 일이다. 기도도 마찬가지다. 절대자의 눈으로 시선을 길고 오래 머무는 것이다. 소셜미디어에서 누군가가 힘들다고 하면 ‘좋아요’만 누르지 말고 직접 연락해보는 작은 행위가 사람을 ‘연결’ 시킨다.
- 공존을 위한 촘촘한 네트워크와 느슨한 하루를 강조했다.
▲아직까지 공존을 네트워크로 이해하기 때문에 많은 소외가 일어난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건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뿐이다. 네트워크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이어야 한다. 소셜미디어에서 과도하게 포장된 자아를 보여 주려 애쓰는 건 나와 타인을 소외시키는 일일 수 있다. 내 행위가 누군가의 비교의식을 자극해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창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제가 주장하는 ‘느슨한 하루’는 마음 방향을 ‘보여주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내가 먼저 보아줄 때 상대도 나를 바라보고 그럼 촘촘한 네트워크로 연결될 거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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