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헬스장에서 만난 빌런들

신재호 2022. 12. 2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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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문이 붙어있는데 왜 지키지를 못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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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호 기자]

올가을부터 본격적으로 사내 헬스장을 이용했다. 여름 때까진 코로나로 인하여 샤워장이 문을 닫았다. 운동하면 땀이 많이 날 텐데 씻을 순 없으니 감히 할 엄두를 못 냈다.

9월 초 사내 게시판에 헬스장 샤워실을 개방한다는 글을 보았다. 점심이나 저녁 때는 사람이 몰릴 것 같아서 덜 붐비는 아침 운동을 선택했다. 예상대로 5~6명 남짓 되는 소수의 인원만 있었다. 쾌적한 분위기에서 꾸준히 3달 정도 운동했다. 덕분에 체력이 많이 좋아졌다. 만족하면서 다니던 중 불편한 상황을 만났다.  

근육 운동하기 위해서 벤치프레스 의자에 누우려는 순간 머리 부분에 흥건한 물기를 발견했다. 비가 새는 것도 아니고 무언지 생각하다가 그 정체가 바로 땀임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 유산소 운동을 먼저 한 것이 분명했다. 운동 기구 곳곳에서 그 흔적을 발견했다. 땀을 식히든 아니면 수건이라도 놓지. 휴지로 닦긴 했지만 찝찝함에 금방 마무리했다. 앞으로 계속 운동하려면 비위부터 단련시켜야 하는 것일까. 

벽에 '주의사항'이 붙어있는데 
 
 마블 영화 역사상 최고의 빌런 티노스
ⓒ 월트디즈니픽쳐스
그 밖에도 무거운 중량의 바벨을 바에 그대로 놓고 가버려 원위치시키느라 진을 빼고, 운동 기구에 전세를 냈는지 수건 하나 놓아두고 당최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마스크도 쓰지 않고 돌아다녀서 위화감을 조성하는 등 곳곳에 다양한 빌런이 있었다.  

심지어 탈의실에도 사용한 수건을 아무렇게나 놓아두거나 드라이기를 머리 말리는 용도 외에 사용해서 불쾌감을 주었다. 분명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임에도 기본 예의가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자세히 살펴보니 A4 용지로 크게 주의 사항을 알리는 문구들이 벽에 붙어 있었다. 운동 중 흘린 땀은 꼭 닦아주길 당부하고, 사용한 덤벨이나 원판도 제자리에 놓고, 마스크 벗고 대화를 금지한다는 글이 진한 글씨체로 눈에 띄는 곳에 붙어 있었다. 내 눈에만 보이는 것일까.  
 
▲ 헬스장 에티겟 헬스장에 붙여 있는 에티켓
ⓒ 신재호
 
▲ 헬스장 에티켓 헬스장 곳곳에 붙어있는 에티겟
ⓒ 신재호
 
조금의 배려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든다 

조금만 타인을 배려하면 눈살 찌푸리는 일은 생기지 않으리라. 공공질서란 국가나 사회구성원 전체에게 두루 관계되는 질서를 뜻한다. 결국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주변에 미치는 영향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비단 헬스장뿐 아니라 생활 곳곳에서 기본예절이 지켜지지 않아서 불편하게 만들거나 혹은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를 보아왔다. 나 하나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행동이 관계된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파급은 상상 이상이다. 

어릴 때 부모님께서는 귀에 딱지가 박히듯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늘 다른 사람을 배려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전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보다 내가 가장 중요하지'라며 삐딱하게 보기도 했지만 살아보니 알겠다. 그렇게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하나둘 모이면, 살기 좋은 세상이 만들어지고 그 혜택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한동안 날이 춥다는 이유로 헬스장에 가지 못했다. 계속 늘어나는 살에 위기감을 느끼고 다시 아침 운동을 시작했다. 다시 가보니 쌀쌀한 날씨에 사람들이 더 줄었다. 열심히 뛰며 녹슨 다리에 기름칠했다. 운동을 마치고 탈의실로 향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녹이고 샤워장 밖으로 나갔다.  

거울 앞에 섰는데, 한쪽 구석에 붙어 있던 종이가 사라졌음을 발견했다. 드라이기를 제발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말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머리를 말리며 여러 생각이 스쳤다. 누가 치웠을까. 그 문구를 보면서 불편했던 사람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 행동을 그만두지 굳이 종이를 뗄 필요까지 있었을까.  

확인할 수 없는 가정에도 씁쓸했다. '윙'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유난히도 주변보다 깨끗한, 종이가 떨어져 나간 자국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 헬스장 에티켓 헬스장 곳곳에 붙여 있는 에티켓
ⓒ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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