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하려다 집 보고 탄식…'라면 장발장'에 되레 라면 안겨줬다
무인점포에서 상습적으로 식료품을 훔친 여성을 검거한 경찰이 오히려 컵라면 등 생필품을 안겨줬다. 난방도 되지 않는 3.3㎡(1평) 남짓한 쪽방에서 남편과 함께 생활하는 피의자 처지를 딱하게 생각해서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며 이 부부를 돕고 싶다는 시민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라면, 생수… 16번 이어진 좀도둑질
23일 부산 부산진경찰서에 따르면 이달 초 부산진구 범천동 한 무인점포에서 물건이 없어지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무인점포여서 따로 계산원 등이 없고, 손님이 물건을 고른 뒤 스스로 바코드를 찍어 계산한다. 그런데 라면과 생수 등 계산되지 않은 식료품이 사라지는 사건이 2주 동안 16차례 발생했다.
경찰은 비교적 쉽게 범인을 특정했다. 폐쇄회로(CC)TV에는 망설이는 듯하면서도 매번 이 같은 식료품을 든 채 계산하지 않고 가게를 떠나는 여성 모습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검거하러 갔다 탄식한 경찰, 되려 라면 안겨줬다
경찰은 50대로 추정되는 CCTV 속 여성을 체포하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피의자 집에 들어선 순간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피의자가 거주하는 곳은 낡은 여관을 개조해 만든 고시원이었다. 난방도 되지 않아 차디찬 냉골 같은 방안에서 웅크리고 앉자있는 피의자 A씨와 남편(60대)을 발견했다. 변변한 살림 도구도 없는 방에는 컵라면과 생수통이 나뒹굴었다. A씨는 경찰을 보자 ”너무 배가 고파 그랬다.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부산진경찰서 관계자는 “두 사람 모두 원활한 사회생활이 어려운 지병을 앓고 있었다. 여러 사건을 접해봤지만, 이들은 손꼽힐 정도로 딱한 처지였다”며 “행정기관에 알리고 직원들이 십시일반으로 이들에게 컵라면과 마스크 등 생활용품을 지원했다”고 했다. 이어 “가벼운 범죄 처벌을 덜어주는 경미범죄심사 등도 검토했지만, 범행 횟수가 많다. 안타깝지만 입건 등 절차는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소액후원부터 경찰 ‘응원 커피’까지 나비효과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며 A씨 부부를 돕고 싶다는 문의가 쇄도하고있다. 이날까지 경찰과 관할 행정복지센터엔 “도와줄 방법이 없겠느냐”고 묻는 전화가 20여통 걸려왔다. 행정복지센터에 직접 돈을 전달한 시민도 있다. 센터 측에 따르면 4명이 각각 10만~50만원을 전달했다.
부산진경찰서 인근에 있는 카페에 직원 수십명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돈을 맡겨둔 시민도 있다. 이 시민은 카페에 결제해둔 뒤 경찰에 전화를 걸어 “힘들고 각박한 일만 생기는데 경찰의 선행에 위로를 받았다. 직원들이 커피를 사드시면 좋겠다”고 했다. 경찰은 다만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위반 소지가 크다고 판단해 이 돈을 주인에게 돌려줄 방법을 찾고 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지난 22일 사건을 담당한 부산진경찰서 강력9팀에 격려금 100만원을 전달했다. 김재형 강력9팀장은 “A씨 사정이 딱해 작은 도움이나마 주고 싶었다. A씨 부부 후원을 문의하거나 경찰을 격려해줘 고맙다”며 “부산시장 격려금은 전액 기부하기로 했다. A씨 부부 이외에도 어려운 처지에 놓인 분들이 힘을 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민주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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