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원과 신명의 공존에서 새로운 전통을 찾다

안치용 2022. 12. 23. 14:0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안치용의 춤과 몸] 국립무용단 '홀춤Ⅲ: 홀춤과 겹춤'

[안치용 기자]

작법무(作法舞)는 불교에서 절제된 동작으로 종교적 의미를 표현하는 춤으로, 수행의 의미가 담겼다. 악기를 다루는 가운데 일정한 몸짓으로 불법을 표현하면서 점차 춤으로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바라춤은 대표적인 작법무로 불법을 찬양하면서 동시에 나쁜 기운을 물리쳐 도량을 수호하고 의식에 참여한 사람들의 내면을 정화하는 목적으로 추는 춤이다.

국립무용단(예술감독 손인영)이 지난 2일부터 3일까지 양일간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 올린 '홀춤Ⅲ: 홀춤과 겹춤'의 여섯 작품 중 가장 눈길을 것은 바람춤을 새롭게 해석한 홀춤 '바라거리'였다. 이날 공연은 국립무용단의 '홀춤' 시리즈 세 번째 공연으로 국내 정상급 기량의 국립무용단 단원 6팀이 각자 자신의 사유와 춤사위로 전통춤을 재해석해 인상적인 공연을 보여주었다.
 
  바라거리
ⓒ 국립극장
 
'홀춤Ⅲ'는 '홀춤과 겹춤'이라는 부제가 달린 것에서 알 수 있듯, '홀춤' 시리즈를 '독무(홀춤)'에 그치지 않고 '2인무(겹춤)'로 확장했다. 국립무용단원 김은이·김회정·박기환·박지은·정관영·정소연·황태인이 안무를 맡아 전통춤을 현대의 감각으로 해석한 결과물을 내어놓았다. 이들은 살풀이춤·바라춤·검무·진쇠춤·태평무·한량무의 구성과 동작을 각자의 시선으로 새롭게 번역하여 관객에 선보였다. 레퍼토리는 2021년 '홀춤Ⅱ'의 공연작 3개의 업그레이드, 올해 극단 내부 공모를 통해 선정한 신작 3개 등 모두 6개이다.
'바라거리'는 아마 속과 성의 교차 가운데서 어렵사리 포착될 법한 염원과 신명의 공존을 그렸지 싶다. 바라라는 오브제가 포괄적으로 끌어가는 무대를 무용수는 조용히 지배한다. 움직임이 뚜렷하지만 괴괴함이 유지된다. 양극단, 혹은 이질적인 것들 사이의 공존이 이 춤의 핵심이었을 것이고 무용수는 이 점을 의식하며 춤을 췄다. 의상을 단순화하여 사위를 더 드러나게 했다.
 
  바라거리
ⓒ 국립극장
 
바라와 무용수의 작위는 불법과 승려 사이의 소통을 연상시킨다. 현대인의 삶에서 영향이 희미해진 작법무를 대중적인 춤으로 바꾸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떻게 추어야 할지 모르겠으나 조금 더 속과 성의 대비와 갈등을 우려내는 무대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일련탁생(一蓮托生)의 무대 같은 것이 현실적으로 산사가 아닌 공연장에 가능할 리 없는 것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공연이었다.
바람춤을 더 연구하여 '바라거리'를 발전시키면, 세계무대에서 통하는 컨템포러리 전통 댄스가 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무용수를 늘리면서 완전한 장악 가운데서 오브제의 비중을 확대하는 방향이란 막연한 생각이 든다.
 
  바라거리
ⓒ 국립극장
 
정소연의 '다시살춤'은 살풀이에 소고(小鼓)를 결합했다. 소고를 치는 움직임으로 도처에 널린 아픔이 마음을 내리치는 것과 그 반복을 드러내고 어깨에 늘어뜨린 살풀이 천으로 미욱하지만 넘어서려는 삶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두 편의 홀춤 외엔 모두 겹춤이다. 검무를 창의적으로 풀어낸 김회정의 '단심_둘'은 기존 공연에 이 제목을 붙여 겹춤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진주 지역에 전해오는 민속무용인 진주검무를 변형한 구음검무를 바탕으로 한삼·맨손·칼을 활용해 다양한 무대를 보여준다.
 
  월하정인
ⓒ 국립극장
 
박기환과 박지은이 공동안무하고 출연한 '월하정인'은 신윤복의 같은 제목의 그림을 보고 춤으로 만든 작품이다. 달빛 아래 남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겹춤으로 표현했다. 여인 역할을 맡은 박지은의 춤은 달빛처럼 매력과 끼로 무대를 도저하게 지배했다.
황태인이 안무한 '산수놀음'은 관객에게 익숙한 남성 독무 한량무를 이도윤과 2인무로 재창작했다. 자연 속을 노니는 두 선비의 모습을 MZ세대 안무가의 감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너설풀이
ⓒ 국립극장
마지막은 정관영의 '너설풀이'. 경기·충청지역 농악에 쓰이는 칠채와 짝쇠(휘모리장단에서 두 사람이 연주를 주고받는 연주 형태) 기법에서 착안한 혼성 겹춤이다. 꽹과리채에 달린 기다란 천을 지칭하는 '너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부드러우면서 강한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전체 공연의 구성상 하이라이트를 맡은 두 무용수는 무대를 휘어잡으며 관객을 신명으로 이끌었다. '너설풀이'가 가장 흥겨운 무대였지만, 전체적으로 관객의 호응이 좋은 공연이었다.

국립무용단 손인영 예술감독은 "지난 '홀춤'의 성공을 바탕으로 탄생한 '겹춤'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며 "그 노력의 결실이 '신 전통'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로 나갈 수 있을지 기대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글 안치용, 사진 국립극장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